성 니콜라스 축일, 기도선물로 만난 미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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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콜라스 축일, 기도선물로 만난 미리암
  • 주은경
  • 승인 2024.06.1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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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경의 순례여행 - 마돈나하우스 12화

마돈나하우스에서 12월은 특별한 달이다. 크리스마스뿐 아니라 다양한 축일과 기념일이 있다. 가톨릭 공동체이기 때문에 의례 즉 리추얼이 중요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나에게 이곳의 리추얼은 종교성 너머의 특별한 무엇이 있었다.

신부, 스탭, 게스트들의 연극과 기도선물 뽑기

12월 6일. 이곳에 와서 꼭 한 달을 채운 날. 뿌스띠니아에서 돌아온 나를 성 니콜라스 축일의 저녁 파티가 기다리고 있었다. 산타클로스의 모태가 된 성 니콜라스. 그 진정한 의미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아낌없이 나누는 것이며, 나아가 신과 인간의 소통과 합일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마돈나하우스에서는 그 의미를 새기는 특별한 행사, 리추얼이 진행되었다.

식사가 끝나자 메인하우스의 다이닝 홀은 연극무대로 변했다. 내가 좋아하는 키 작고 뚱뚱한 신부님이 뒤뚱뒤뚱 걸어 나오며 연극을 시작했다. 70대 백발노인이 저토록 귀여울 수가. 평소에 늘 표정이 없이 뚱해 보였던 통통한 여자 스탭도 무대에 오르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생기가 넘쳤다. 이어서 젊은 남자 여자 게스트들이 등장했다. 감옥에 있는 죄수에게 위안을 주는 성 니콜라스, 거친 파도로 난파의 위기에 있는 선원들을 구하는 성 니콜라스, 어린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성 니콜라스. 이 몇 개의 장면을 위해 신부님, 스탭, 게스트들이 모여 며칠 동안 연습을 했던 것이다.

 

성 니콜라스
성 니콜라스

평소 나를 이래라 저래라 구박하던 A는 세상에, 성모마리아 역할을 맡았다. 20대의 예쁜 게스트 베스는 마치 스파이더 맨처럼 아래위 검은 옷에 검은 가면을 썼다. 선원 역할은 턱수염 있는 유대인 청년 코디가 맡았고, 성 니콜라스로 분장한 닉은 완전히 ‘성스러운’ 표정이었다. 놀라웠다. 다들 어쩜 이토록 자연스럽지?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며 연극이 끝났다.

다음엔 특별한 이벤트가 이어졌다. 며칠 전 남녀 게스트들이 모여 동그란 초록색 은박지에 회색 은박지를 붙였는데, 그게 오늘 행사 준비였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이 동그란 카드 하나하나에 마돈나하우스의 스탭과 게스트 모두의 이름이 적혀 있고, 모두 한 장씩 제비뽑기를 했다. 다음엔 한 사람 한 사람 자기가 선택한 카드에 적힌 이름을 큰소리로 말했다. “Jeanne has Paul." ”Paul has Eunsoo." “Eunsoo has Joco." 일종의 릴레이 선물교환인데 선물이 ‘기도’다. 마돈나하우스 본부의 100여명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신이 뽑은 사람을 위해 1년 동안 기도해주는 것. 나는 60대의 스탭 린다를 뽑았다. 키가 나보다 작고 짧은 머리에 순해 보이는 사람. 인사를 나눴다. 스무 살에 이곳에 들어와 40년 전 출판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줄곧 편집자로 일해 왔다는데. 마돈나하우스에서 지내는 장소가 달라 이 릴레이 기도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누구도 (   ) has Eunkyoung이라고 말하는 걸 듣지 못했다. ‘뭐지? 이것도 못 알아들었나?’ ‘제비뽑기 운이 없어 이런 것도 안 걸렸나?’ 이벤트가 끝나고 하우스 마더에게 말하니 “아마 데이빗 신부님일 거예요. 다른 일 때문에 이 자리에 오지 못했거든요”하며 나를 위로했다.

조금 실망하여 주방에서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 일요일 미사를 보는 세인트 메리(Saint Mary)에서 언제나 지팡이에 기대어 힘들게 걸어 들어오던 60대 초반의 여자, 그의 이름은 미리암이었다. 자신이 내 이름을 뽑았는데, 은경(EunKyoung)을 한국인 스탭 주은(JooEun)과 착각했다는 것이다. 아하. 그랬구나. 마음이 놓였다.

이 기도 릴레이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1년 동안 내가 기도해 줄 린다,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 줄 미리암. 누가 누구를 위해 1년 동안 기도해준다는 것은 강력한 연결감을 주었다. 마돈나하우스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전 여자 디렉터 캐시에게 몸이 약하니 나가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들어서였을까? 언제 이곳을 떠날지 모르는데 용기를 내보자. 사람들을 깊게 만나보자. 영어는 못해도 나는 인터뷰에 능숙한 방송작가 아닌가. 중요한 맥락은 이해할 수 있으니 대화는 가능했다. 질문은 짧고, 대답은 길다. 나에겐 녹음이 가능한 엠피쓰리도 있었다.

“나의 질병은 주님의 선물이에요”

며칠 후 메인하우스의 다이닝홀에서 미리암을 만났다. (그가 생활하는 곳은 내가 머무는 곳과 떨어져 있었고, 몸이 불편한 그는 활동가능한 시간이 짧아 미팅 시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 출신의 유대인인 그는 빠리, 아비뇽 등 프랑스의 마돈나하우스의 필드하우스에서 일했다. 구소련이 붕괴한 후 러시아 북동부 오호츠크해의 항구 도시 ‘마가단’에 새로운 필드하우스가 문을 열면서 1993년부터 2005년까지 12년 동안 그곳에 파견되기도 했다. 아마도 러시아정교회의 전통과 관련이 깊은 마돈나하우스였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 더 묻지는 못했다. 그는 먼저 자신의 병을 설명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깊은 눈빛, 따뜻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미리암 과거와 현재
미리암의 과거와 현재

“나는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어요. 이 병은 중추 신경계에 생기는데, 완치가 불가능하고 점점 악화되기만 하죠. 환자마다 어떤 형태의 증상이 나타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해요. 처음 걷는 데 문제가 생겼던 건 18년 전이예요. 하지만 원인을 몰랐고 그저 허리 쪽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죠. 그러다가 1998년에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어요. 아버지도 같은 병을 앓았어요. 다리가 점점 악화됐고 지난 3년 동안 더욱 심해졌죠. 통증 완화를 위해 약물을 복용하지만 불치병이라 상태가 좋아지진 않아요.”

그러나 내가 볼 때마다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걸으면서도 언제나 밝게 웃고 있던 사람. 나는 골골하며 이곳 생활을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데, 그는 이렇듯 심각한 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궁금했다.

“나는 이 병을 진단받았을 때, 주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사형 선고가 아니라 초대였어요. ‘앞으로 걷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일도 못하게 될 거야’ 같은 게 아니었어요. 주님께선 이렇게 말했죠. ‘이 병을 통해 너는 앞으로 살아가는 데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은총’이라고 해요. 은총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내가 살아갈 힘을 주죠. 사실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졌어요. 여행을 거의 못해요. 쉽게 피곤해지죠. 몸 상태가 계속 바뀌거든요. 최근엔 미사에도 나가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차를 타기 힘들어서 갈수록 더 제한된 생활을 해요. 그러나 내면은 더 자유로워졌어요.”

아파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데 내면은 더 자유로워졌다니. 알 듯 말 듯했다.

“고통을 받아들이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being)를 알고 있어요.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doing)이 무엇인지와 상관없어요. 서양 사람들은 인간의 가치를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로 판단하죠. 한국도 마찬가지일거예요.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누구인지에서 나와요. 우리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주님으로부터 창조되었죠. 이건 기독교 사상의 핵심이에요.”

주님이 주신 삶을 받아들이고 나약함과 질병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강한 힘을 갖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것은 우리가 고통 받고 시련을 겪는 다른 모든 이들과 하나가 되게 하는 힘이죠. 누구나 고통과 시련을 겪어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고통 받을 때 우리는 선택할 수 있어요. 고통을 통해 우리는 쓰라림, 절망, 고독, 엄청난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어요. ‘아무도 나를 이해 못해, 이 세상에서 난 혼자야’라고요. 하지만 고통으로 우리는 다른 모든 이들과 하나가 되는 길을 택할 수도 있어요.”

암이나 큰 병에 걸려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사람들의 종교적 신앙 간증이 이런 건가?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걸까?

“이해와 연민을 통해서요. 사람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죠. 두려움 때문에. ‘걷지 못하면 정말 끔찍할 거야.’ 하지만 내가 걷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나는 아직 살아있고 내 삶이 존재함을 깨닫게 되죠. 그러면 두렵지 않아요. 만일 누군가가 ‘너는 이제 하던 일을 못하게 될지도 몰라’라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답할 거예요. ‘그래 나도 알아. 하지만 여전히 내 삶이 존재해. 그래서 두렵지 않아.’ 그러면 우리 둘 사이에는 장벽이 사라지는 거죠.”

우리가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면 고통 받는 모든 이들과 하나 되는 길, 사랑과 연민의 문이 열린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큰 병을 안고 살아가는 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당연히 쉽지 않아요. 힘든 일이죠. 그러나 이 병이 주님의 뜻이라면, 주님은 그걸 헤쳐 나갈 삶도 함께 준답니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중 하나예요. 나는 이 길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어요. 영적인 힘으로요. 우리 인간의 힘보다 더 큰 힘이죠.”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나에게 ‘주님의 뜻’은 솔직히 말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새로운 문이 열린다, 그것을 헤쳐 나갈 영적인 힘이 생긴다는 것은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이 그랬으니까.

미리암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방송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다 섬유근육통이라는 병을 얻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캐나다와 마돈나하우스에 오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몸이 약해 마돈나하우스에서 힘든 것도 있지만, 단순노동과 명상, 기도를 통해 충만감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어쩌면 나에게도 고통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문이 열린 것일까?

 

by Martin Erspamer
by Martin Erspamer

Being is more important than doing

“당신을 위해서 기도할게요. 은경, 당신이 겪은 고통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해줄 거예요. 주님은 나에게 다른 이들을 도울 뭔가를 주셨어요. 물론 다시 걸을 수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나는 고통을 통해 배운 것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만일 주님께서 ‘네 병을 낫게 해 주겠다. 그 대신 그동안 배운 것들을 모두 잊게 될 것이다’ 하신다면 저는 거절할 거예요. 이게 진정한 삶이고 나에게 사랑을 알게 해 줘요. 당신이나 타인들과 가까워질 수 있게. 이건 걷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예요.”

병을 주님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아픔을 받아들이니, 고통 받는 모든 이들과 하나가 되는 길이 열렸다는 미리암. 그는 자신의 아픔을 에너지 삼아 사랑과 연민으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며 덧붙였다.

“캐서린 도허티는 늘 말했죠.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다. 은경,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해낸 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Being is more important than doing.” 그는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 역시 내가 해낸 ‘일의 성과’로 나 자신을 평가해온 것은 아닌가? 학생운동, 노동운동, 방송작가, 시민교육기획자로서 목표했던 결과를 성취했을 때 뿌듯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 특히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두었을 때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대했던가?

몇 년 전 매슬로우의 <존재의 심리학>을 읽으며 being(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선지 미리암의 말이 마음에 꽂혔다. 인생에서 일과 사랑, 자아의 실현과 성장의 과정을 “자신의 두려움과 결핍에서 출발하는 태도”와 “존재의 기쁨과 충만함으로 출발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이야기. 나를 돌아보며 ‘아하’ 하는 것이 있었다. 일, 사랑, 영성 모두 자신을 깊이 존중하는 삶, 존재의 충만감이 내가 무엇을 이루고 성취하는가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성 니콜라스 축일에 만났던 미리암과 린다. 뿌스띠니아에서 나 자신과의 깊은 연결을 통해 충만감을 느꼈다면, 성 니콜라스 축일의 파티와 기도선물은 뜻밖의 만남을 경험한 공동체 리추얼의 시간이었다.

인생에는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만남의 기쁨이 있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깨닫는 것. 이것이 어쩌면 축제와 놀이의 핵심이 아닐까? 기념일이 특히 많다는 마돈나하우스의 12월이 더욱 기대되었다.

 

미리암이 쓴 책 표지

미리암 그리고 린다, 그 후

한국에 돌아온 후 3년 동안 미리암과 나는 이메일과 카드를 주고받았다. 자신의 경험을 쓴 책을 출간했으며, 캐나다 북부 애드먼튼의 필드하우스에서 마돈나하우스의 역사를 업데이트해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2024년 지금도 외부에 강의도 나가고 있을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내가 1년 동안 기도해주었던 린다도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여전히 출판사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이 글을 쓰며 그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늦었지만 린다의 명복을 기원한다.

ps. 마돈나하우스에서의 인터뷰는 통역 없이 일 대 일 대화로 진행했다. 대략의 의미를 이해하며 인터뷰했고, 동의를 받아 녹음했다. 이번 연재를 위해 친구의 도움을 받아 번역했다.

*미리암 녹취 번역 ; 김민경

주은경
1980년대 인천에서 노동자교육활동을 했다.
1994년부터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KBS <추적60분> <인물현대사> <역사스페셜> 등을 집필했다.
1999년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 기획실장으로
노동대학 첫 5년의 기반을 닦았다.
2008년부터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민주주의학교, 인문학교, 시민예술학교를 기획 운영하다
2020년 말 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현재 시민교육연구소 ‘또랑’ 소장.
지은 책으로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함께 쓴 책으로 <독일 정치교육현장을 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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