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어루만지는 뜨거운 손, 김사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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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어루만지는 뜨거운 손, 김사인 시인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4.07.0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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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지금은 네가 가는 길에 모진 삭풍 불어도, 옥동의 한 아이처럼 걸어라. 발등 위에 촛불을 세운 듯 조심히 걸어가거라. 불이 휘어져도 네 마음의 심지를 오똑하게 세워라. 영혼의 맑은 눈빛이 흐려지지 않게 하여라. 네 마음의 화(火)가 번져 다른 이를 태우지 않게 하여라. 너 또한 어둠 속에 웅크렸던 때를 생각하며, 다른 이의 발등을 밝게 비추며 살거라.”

김사인 시인이 지은 ‘옥동의 한 아이에게’라는 시입니다.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음조차 편히 둘 곳이 없는 신산한 시절에 마음에 새겨 마땅한 언어입니다. 김사인 시인이 전북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직에서 물러나면서 이종민 등 지인들이 엮어낸 <김사인 함께 읽기>(모악, 2024)라는 책을 읽으며 한 시인의 삶의 궤적을 시와 더불어 생각하는 호사를 잠시 누렸습니다.

1977년 서울대 국문과 학생이었던 김사인은 이른바 ‘서울대 반정부 유인물 배포 미수 사건’에 걸려 첫 번째 징역을 살았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에 잠시 해방감을 맛보았으나 광주항쟁이 터졌고, 그는 다시 요주의 인물이 되어 수배령에 밀려다니다 이듬해 다시 잡혀 들어갔습니다. 1987년 이후로는 노동문학에 관심을 보이며 조정환, 박노해와 더불어 1989년 3월에 <노동해방문학>을 창간해 발행인을 맡았습니다.

본인은 얼굴마담을 했다고 하는데, 지나치게 정치적인 문학론을 선뜻 반기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 때문에 다시 옥고를 치렀습니다. 어눌한 말씨와 사람 좋은 얼굴 뒤에 그런 고난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출감 이후에 한동안 떠돌면서 지은 시가 ‘노숙’이라고 합니다.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 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하였는데, 김사인은 마치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누운 이 노숙인에게 빙의(憑依)된 사람처럼 보입니다. 내가 내 몸에게 “미안하다” 전하는 아프고 살뜰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김사인은 첫 번째 시집 <밤에 쓰는 편지>(청사, 1987)를 내고 19년 만에 내놓은 시집이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입니다. 여기서 시인은 “시쓰기는 생을 연금(鍊金)하는, 영혼을 단련하는 오래고 유력한 형식”이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가장 귀한 관심은 “노동과 사랑”이라 합니다. 일하는 자의 든든한 팔목과 서글픔, 이 때문에 빚어지는 모든 목숨 가진 것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길은 “지렁이 같은 낮은 배밀이로만 그 자리에 이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의 시선은 낮고 보이지 않는 목숨에게로 떨리는 손길처럼 가서 닿습니다.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 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이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풍경의 깊이’, 부분)

김사인은 시선집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의 책머리에 시인이란 “자신이 처한 시대와 뭇 목숨들의 열망에 깊이 사무쳐, 뜨겁게 때로 섧게 울고 부르짖는 자, 요컨대 시대의 온전치 못함을 ‘잘’ 우는 것으로 본분을 삼는 자”라고 말합니다.

시인이 따라 우는 것은 “누구도 핍박해본 적이 없는 자”의 슬픔 때문입니다. 누군들 행복을 희망하지 않겠느냐마는, 세상에서 행복을 독차지하고 있는 자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동안, 숨죽여 어두운 성당 구석에 앉아 있을 인생을 생각하며 시인은 시를 쓰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이의 기도는 슬픔 없는 나라를 향해 발원하는 것입니다. 때로 그날이 생애의 마지막 언어가 될지라도 말입니다.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중략)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이인 듯 살아가거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화양연화 일부)

<시를 어루만지다>(도서출판b, 2013)라는 시집이 출간되었을 때, 김사인 시인이 직접 제게 책을 보내셨더군요. 2000년 초반 제가 격월간 잡지 <공동선> 편집장으로 일하던 끝물에 기획위원으로 초빙된 분이 김사인 시인이었고, 김성동 작가와 더불어 사무실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두 분 모두 이승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고, 선하고 맑은 눈매를 기억합니다. 그분이 십수 년이 지나고서도 저를 기억하였다니요. “2013.10. 김사인 절”이라니요! 그분께서 지금은 전주에 사신다는데, 한번 뵈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장만호 시인은 김사인을 두고 “우리를 어루만지는 뜨거운 손”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어루만짐’은 “잘 살펴 만지는 것이고, 두루 만지는 것이며, 때론 깊이 만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2006년에 김사인 시인이 대산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제 시쓰기가, 적으나마 세상의 목숨들을 섬기는 한 노릇에 해당하기를 조심스러이 빌고 있습니다. ‘섬김’의 따뜻하고 순결한 수동성 속에서 비로소 가능할 어떤 간곡함이 제 시쓰기의 내용이자 형식이기를 소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신앙이 아니어도 시(詩)만으로도 복음의 정수를 살아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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