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하우스, 단순하게 흐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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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하우스, 단순하게 흐르는 시간
  • 주은경
  • 승인 2024.01.22 14:3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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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경의 순례여행 - 마돈나하우스 2 : 첫 만남

마돈나하우스 메인하우스에서 한국인 주은을 만났다. 4년 전 게스트로 처음 와서 수련생을 거쳐 몇 달 전 정식 스탭이 된 30대 여성. 잠시 후 5시 15분에 저녁미사가 시작된다며 나를 약 200미터 떨어진 채플로 안내했다. 단풍나무숲 평지에 목조 건물 몇 채가 보인다.

함께 걸어가는 수십 명의 남자 여자들. 모두 작업장에서 일하다 오는 듯 편한 차림이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어쩜 목소리가 저토록 맑고 선량하지? 주은은 그가 키에렌 신부라고 일러준다. 또 다른 60대 남자도 환영인사를 하더니 성가대 연습한다며 서둘러 간다.

동화 속 오두막 같은 채플. 안에서 70여명의 사람들이 미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을 따라 무릎 끓고 성호를 그으려 하니 주은이 속삭인다. 가톨릭신자가 아니면 안 해도 된다고. 미사가 시작되니 모두 함께 성가를 부른다. 조금 전에 인사했던 키에렌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면 성가대 10여명이 합창을 하는데, 버스에서 내렸던 나를 마중 나왔던 여자가 지휘자다. 이 아름다운 화음에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미사가 끝나고 메인하우스로 가는 길. 6시도 안 되었는데 춥고 깜깜하다. 토론토에서 이곳으로 올 때 버스 안이 후끈할까봐 내복을 입지 않았더니 피부에 닿는 청바지가 얼음가죽 같다.

메인 하우스 현관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고 계단을 올라 2층 다이닝홀로 들어섰다. 약 50-60평의 실내. 20여개의 나무 테이블에 포크, 나이프, 스푼이 세팅되어 있다. 자세히 보니 테이블마다 통로 쪽에 앉는 사람이 주방에서 음식을 가져온다. 식사하는 사람은 대략 70여명. 삶은 호박, 감자, 오이와 마늘피클, 여기에 우리나라 갈비찜에 간장만 안 넣은 것 같은 고기 스프까지 맛있게 식사를 했다.

 

숲속에 있는 마돈나하우스의 채플. 이곳에서 매일 아침 저녁 미사를 드린다.
숲속에 있는 마돈나하우스의 채플. 이곳에서 매일 아침 저녁 미사를 드린다.
마돈나하우스 채플 내부 (사진출처=madonnahouse.org)
마돈나하우스 채플 내부 (사진출처=madonnahouse.org)

 

“원한다면 하느님이 도와줄 거야”

식사와 설거지가 끝나고 나서 주은이 걸어서 3분 거리의 게스트 숙소(Saint Germain's)로 나를 안내했다. 잠시 후 짧고 검은 곱슬머리의 아담하고 통통한 40대 여자가 들어온다. 하우스 마더 쟌. 우리로 치면 사감 같은 역할인데 정감있고 귀여운 인상이다. 그가 동그란 안경 너머 똘똘한 눈을 반짝이며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대부분 세면, 취침, 화장실 사용 등에 대한 일상적인 규칙. 휴대폰과 개인노트북은 사용할 수 없다. 남자와 여자가 단 둘이 있는 것은 금지돼 있다. 몸의 곡선이 드러나는 옷은 안 된다. 그중에 영어가 짧은 내게 꽂히는 말이 있다.

“은경, 이곳에서 행복하길 원한다면 하느님이 도와주실 거야.”

게스트 숙소는 2층 목조건물. 1층에 5명, 2층에 약 10명. 내가 배정된 2층엔 세 줄로 침대가 놓여 있다. 10시 30분이 되면 이들 표현대로 Quiet Time, 침묵 시간이다. 모두 자리에 누워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잠을 자야 한다. 소리 내서 말하거나 돌아다니면 안 된다. 11시 에 불을 끄기 전, 하우스 마더 쟌이 한 사람씩 미소로 눈을 맞추며 축복기도를 한다. 성수도 뿌려주고. 처음 경험하는 잠자리의 축복기도. 따뜻하다. 저절로 잠이 올 것 같다.

첫날 아침 그리고 하루 일과

밤새 침대 매트리스에서 찬 기운이 올라와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폴라텍 점퍼를 끼어 입고 다시 잠을 재촉했다. 한국에서 친구가 준비해준 전기이불은 화재위험 때문에 사용불가라 했는데. 앞으로 잘 견딜 수 있을까?

6시 45분 기상시간. 침대 머리맡의 작은 창으로 내다보니 온통 하얀 세상이다. 침대를 정리하고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8시 아침기도에 늦지 않게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소복하게 눈 덮인 하얀 숲속 오솔길에 뽀드득 뽀드득, 저벅 저벅 마돈나하우스 남자, 여자 수십 명의 발자국 소리가 아름다운 혼성합창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걸어서 2분 거리의 메인하우스 건물을 지나 3분 정도 더 걸어가면 어제의 그 아담한 채플이 있다. 여기서 기도와 성가 합창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단조로운 음조가 마음을 단순하고 평화롭게 해준다.

기도가 끝나면 8시 30분 메인하우스 다이닝홀에서 다 함께 아침식사. 영어소설에서 많이 봤지만 처음 먹어본 오트밀에 사과와 요구르트를 섞어 먹는데. 이곳에서 만든 플레인 요구르트는 맛이 정말 깔끔하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9시에 각자 작업장으로 향한다. 게스트들은 사무실 옆 업무배치표를 보고 그날의 작업장을 찾아간다. 첫날은 부엌에서 완두콩 골라내는 일, 다음날은 성 라파엘(Saint Raphael) 건물에서 일했다. 양초 만들고, 옷감 짜고, 목공예를 하고, 도자기 만드는 작은 공방들이 모여 있는 2층 목조건물이다. 나에겐 미사에 사용하는 양초를 넣었던 병을 깨끗이 닦는 일이 맡겨졌다. 난로 위 큰 대야에 물을 끓이고, 병을 거꾸로 넣어 수증기를 넣는다. 그 다음 병 안에 수건으로 감은 작은 막대를 넣고 닦아낸다. 왼손으로 병을 거꾸로 잡고 오른손으로 닦아내려면 어깨와 손목에 힘을 주어야 한다. 오래된 목조건물 귀퉁이에 앉아 병을 닦고 있으니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다.

10시30분 티타임. 작업장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마돈나 하우스의 설립자 캐서린 도허티의 책을 낭독한다. 오늘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짧은 글. 마돈나하우스의 각 작업실에서 언제나 진행하는 오전의 영적 독서 시간(spiritual reading time)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간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 그것이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다.” 대략 알아들은 것이다.

11시에 다시 일을 시작하고 12시 점심식사. 사과, 삶은 팥, 토마토와 콩 요리. 놀랍게도 김치가 나오네? 이곳에 있던 한국인 스탭이 레시피를 전수해 이곳 사람들이 즐기는 메뉴가 되었다고 한다.

설거지 끝나고 스푼, 나이프, 포크 등 다음 식사를 위해 테이블 세팅을 한 다음 다시 작업장에서 일한다. 오후 3시가 되니 30분 동안 티타임이라며 이번엔 메인하우스로 가라 한다. 메인하우스 다이닝홀 옆의 작은 방. 창밖엔 하얀 눈이 쌓인 푸른 강이 펼쳐지고 빨갛고 파란 작은 새들이 지저귄다. 아름답다. 이 방에서 10여명이 함께 차를 마신다. 누구는 신문을 보고, 누구는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 60대 남자 셔면이 나에게 지낼 만 하냐고 묻는다. 그는 45년 전 이곳 마돈나하우스에 왔다고. 놀랍다.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가 일을 하다 5시 일이 끝난다. 5시 15분에 다시 채플에서 저녁미사, 그리고 6시 저녁식사. 얇고 넓적하게 자른 무를 말려 버터에 볶은 요리. 양파, 붉은 양배추, 마늘을 잘게 다진 샐러드. 고기스프. 모두 입에 잘 맞는다. 여기 오기 전 세 달 동안 몬트리올에서 방 얻어 살 때 아침 점심은 밥을 먹었고 점심도 가급적 집에서 만들어 나간 주먹밥으로 해결했던 나. 김치와 밥 없이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마음이 놓인다. 한국이나 몬트리올에서 먹던 밥상보다 훌륭하다.

식사를 마치면 모두 함께 하는 묵주기도. 같은 문장의 성모송을 50번 이상 반복해서 낭독한다. 단순함의 극치. 마치 절에서 반야심경을 수십 번 반복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끔 졸리기도 하지만 왜 이렇게 편안한지.

단순노동 4시간, 조화로운 삶

하루의 대부분이 기도, 영적 독서(spiritual reading), 티타임, 식사시간. 순수하게 일하는 시간은 다 합쳐야 네 시간이 안 된다. 겨우 이틀 지났지만 이곳의 ‘시간’은 이전 나의 시간과 완전 그 질이 다르다. 더 없이 단조롭고 단순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언제나 복잡한 도시에서 살았던 나. 버스나 전철을 타지 않는 일상은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먹고 일하고 잠자고 기도하고 산책하고 모든 것이 걸어서 2-10분. 집과 일터를 오고 갈 때 자동차를 타지 않는 것만도 대단한 경험일 텐데, 하루의 모든 시간을 이 단풍나무 숲속에서 지낼 수 있다니. 휴대폰과 노트북을 사용 못하는 것도 뜻밖의 해방감이 있다.

무엇보다 기도와 휴식이 함께 하는 이곳의 단순노동이 나를 편하게 해준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한다 계획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너무 좋다. 안식년을 선언하고 캐나다에 와서도 나는 늘 스케줄을 짜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아니 내 평생 두뇌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 있었나?

2006년 무렵 내가 방송작가로 참여했던 KBS 다큐멘터리 <니어링 부부의 후예들>이 떠올랐다. 자연 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통해 자본주의에 저항했던 스콧 니어링, 헬렌 니어링.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정신을 이어 살아가는 미국인들의 삶을 담은 작품이었다. 내 눈에는 종교에 대한 관점이 다를 뿐 마돈나하우스 사람들도 니어링 부부의 삶을 닮아 있다. 기도와 함께 노동, 음식, 독서, 예술로 단순하고 조화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의문이 생긴다. 이 공동체 생활이 그들만의 자족적인 삶은 아닐까. 가난과 함께 단순한 삶을 추구한다지만, 세상의 가난한 삶에 비하면 과연 이들의 삶이 가난한가? 마돈나하우스는 어떤 곳인가?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고 있을까? 다큐멘터리 작가의 호기심이 고개를 든다. 천천히 알아보자.

<다음 이야기가 격주로 이어집니다.>

 

주은경
1980년대 인천에서 노동자교육활동을 했다.
1994년부터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KBS <추적60분> <인물현대사> <역사스페셜> 등을 집필했다.
1999년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 기획실장으로
노동대학 첫 5년의 기반을 닦았다.
2008년부터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민주주의학교, 인문학교, 시민예술학교를 기획 운영하다
2020년 말 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현재 시민교육연구소 ‘또랑’ 소장.
지은 책으로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함께 쓴 책으로 <독일 정치교육현장을 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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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 2024-02-01 03:58:30
읽는 동안 저도 마치 그 숲 속에 가 있는 듯 하네요.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간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 그것이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 문장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덕분에 시간을 잘 사용한다는 것의 의미를 곰곰히 헤아려 봅니다. 살만한 나의 목표, 내가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게 첫 단계라는 생각이 드네요.
편안하면서도 뭔가 일깨움을 주는 글 고맙습니다.

민경 2024-01-28 15:17:47
덕분에 마돈나하우스에서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새록새록 살아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