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구의 매일신문, 대구지역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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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구의 매일신문, 대구지역 조선일보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04.1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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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이데올로기적 선택과 대구교구의 보수성-1

<기쁨과 희망>(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제5호, 2010년 5월호에 실렸던  한상봉의 [한국교회의 이데올로기적 선택과 지역정치-대구대교구의 보수성을 중심으로]라는 글의 전문을 게재합니다.-편집자

사진출처=미디어스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인 허미옥 씨는 대구를 “이효상의 후예들의 도시”라고 불렀다(월간 <인물과 사상> 2003년 10월호). 도대체 이효상이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단박에 의문이 들 것이다. 허미옥 씨는 <시민의 신문>에 정지환 취재부장이 쓴 ‘현대사 추적: 가톨릭대구대교구의 보수성 뿌리-지역감정 발언 원조 이효상의 후예들’(2003년 3월호)의 말법을 이어간 것이다. 문제의 글을 다소 길지만 전문 인용한다.

“대구교구는 가톨릭교구 중에서 보수적 성향이 가장 강한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영남지역에 정치적 기반을 둔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권력층과 깊은 유착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것은 당시 가톨릭교계의 일반적 분위기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유신정권에 비판적이었던 김수환 추기경과 정의구현사제단이 상징하듯 한국 가톨릭은 독재정권에 맞서거나 적어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이러한 대구교구의 보수성과 권력유착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두 명의 인물이 있다. 박정희 정권 당시 8개월의 의원경력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에 임명됐던 이효상 씨와 전두환 정권 당시 가톨릭 사제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위입법위원으로 활동했던 전달출 신부가 바로 장본인이다. 1980년 국가보위입법위원으로 참여한 신부는 두 명이었는데 모두 대구교구 소속이다.

아니러니한 것은 이효상 씨가 현 대구교구장인 이문희 주교의 부친이라는 점이다. 역사적 우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효상 씨에게 박정희의 공화당에 입당하라고 권유한 인물은 당시 대교구장인 서정길 대주교였다. 전달출 신부에게 골프장 사업을 승인했다는 이문희 대주교의 확인서에 등장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실제로 경향신문 정치부장 출신인 이상우 씨가 1985년에 발간한 <비록 박정희 시대(2)>(중원문화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5.18후 이효상이 여야 정당의 선택을 놓고 망설이고 있을 때 당시 서정길 대주교의 권고가 크게 작용했다. 서 대주교의 이왕 정당에 들어가려면 새로 창당한 당을 택하시라는 권유를 받고 공화당을 택했다는 것이다.

한국가톨릭의 정치적 성향은 장면 정권이 이끌던 민주당에 가까웠지만, 서정길 대주교와 이효상 씨는 지역적 기반이 같은 공화당을 선택함으로써 대구교구만의 독특한 전통을 수립한 셈이 된다. 특히 이효상 씨는 지역감정 조장의 원조로 불리는데, 1963년 5대 대선 당시 대구 수성천변 유세에서 이런 망언을 남겼다.

‘이 고장은 신라 천년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장이지만 그 긍지를 잇는 이 고장의 임금님은 없었다. 박정희 후보는 신라 임금님의 자랑스런 후손이며,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으로 천년만의 임금님을 모시자’

이효상 씨의 지역감정 선동 연설은 커다란 효과를 발휘했다. 이상우 씨의 기록에 따르면, ‘연설이 끝난 뒤 청중들의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던 것은 물론이고 선거 결과 경북에서는 박정희 후보의 압도적인 지지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가 정치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장에 임명된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1968년 박 대통령의 영구집권의 길을 닦아준 삼선개헌 날치기 통과 당시 의사봉을 두드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인맥과 언론으로 이어지는 대구-대구교구의 보수성

이 글은 결국 대구교구의 서정길 대주교와 이효상, 그리고 둘째 아들인 이문희 주교로 이어지는 대구지역 가톨릭교회가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정권과 맺은 인연을 밝히는 대목이다. 덧붙이자면, 천주교 대구교구는 한국교회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매체를 소유하고 있었다. 한국교회의 기관지라고 말할 수 있는 <가톨릭시보>(가톨릭신문의 전신)와 대구지역의 가장 유력한 일간지인 <대구매일신문>(매일신문의 전신)의 사주였던 것이다.

전두환 시절에도 대구교구와 군사정권의 인연은 각별해서 1980년 11월 언론기관 통폐합 때에 <대구매일신문>은 대구에서 발행되는 <영남일보>를 통합 흡수해서 대구에서 발행되는 유일한 일간신문이 되기도 했다. 앞서 정지환 취재부장도 지적한 바와 같이 5공화국이 낳은 악법을 쏟아낸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참여한 천주교측 인사들은 전달출, 이종흥 신부 등 두 명 모두 대구교구 출신이다. 비록 2007년에 이문희 대주교가 은퇴하였다지만, 대구교구에 뿌린 보수성은, 서정길 대주교와 이효상 및 이문희 대주교로 이어지는 인맥과 그들이 교회와 언론을 통해 대구에 끼친 영향력만큼이나 끈질기다.

대구교구가 소유한 <매일신문>을 두고 대구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대구의 <조선일보>라고 평한다. ‘한국사회의 변화와 대구, 그리고 지역언론’이란 글에서 김진국 씨는 한나라당을 향한 대구 경북의 올인에 대해서 “그 누구도 상대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대구의 문제요, 대구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이를 두고 김진국 씨는 “대구의 문제는 군부독재가 30여년간 이어져 오는 동안 권력의 온갖 특혜와 특권 속에 안주해 오면서 사회전체가 자생력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고 진단한다.

대구사회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엘리트 그룹은 대구사회가 안고 있는 내부 모순에는 절대 눈을 돌리지 않고, 여전히 ‘잃어버린 10년’을 이명박 정권 아래서 신속히 되찾기 위해서만 애쓴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언론이 대구를 더욱 절망적인 도시로 몰아간다고 일갈한다. 그 중심에 있는 가톨릭교회의 <매일신문>이 과녁이 되고 있다.(대구사회비평, 2004년 여름호 참조)

이 때문에 ‘매일신문 바로세우기 운동본부’까지 만들어졌는데, 대표를 맡고 있는 조현무 씨는 “누가 뭐래도 매일신문은 지역패권주의자요 종교재벌 교육재벌인 사주(대구교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패막이 저널리즘, 주민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는 시장 및 권력지향적 저널리즘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대구의 매일신문은 정치권력, 경제권력과 손잡고 그들의 사적인 이해관계를 공적인 것으로 뒤바꿔 대중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를 두고 조현무 씨는 한마디로 <매일신문>과 대구지역이 “박정희의 유령을 붙들고 늘어진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대구지역의 섬과 같은 보수적 고립은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대구교구의 고립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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