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단, 예수운동의 전략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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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단, 예수운동의 전략집단
  • 김진호
  • 승인 2019.07.29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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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사이와 적대한 뒤, 갈릴래아 촌락 ‘밖’에서―떠돌이 예언자들-4

장소적 전환과 ‘제자’/‘떠돌이 예언자’

예수는 안식일 논쟁 이후 촌락회당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아래 도표는 〈마가복음〉에서 회당의 사용 빈도를 예수운동의 장소적 변화와 연관하여 정리한 것이다.

[표] 마르코복음에서 '회당'의 빈도
[표] 마르코복음에서 '회당'의 빈도

1,14~3,6 사이에는 ‘회당’이 자주 나올 뿐 아니라, 1,39(“예수께서 온 갈릴래아와 여러 회당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처럼 집약적 표현도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를 ‘갈릴래아 회당 활동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 이후 예수는 고향인 나사렛의 회당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회당을 활동지로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마르코복음〉의 예수 이야기를 전승한 대중은 예수가 촌락회당 안에서 바리사이와 다툰 뒤 다시는 회당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 개연성이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마르 3,7-8)

다시 반복하여 인용한 이 구절처럼 이제 예수와 제자들이 마을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장 두드러진 활동장소는 ‘호숫가’였다.

[표] 마르코복음에서 '호수'의 빈도

이를 조금 더 넓은 지평에서 살피면 이렇다. 예수운동은 공개적 활동의 차원과 비공개적 차원으로 나뉜다. 비공개의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적대자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다.

‘갈릴래아1’의 시기에 적대자는 안티파스의 공권력이다. 한데 ‘갈릴래아2’의 시기에 적대자는 마을의 지도자들인 바리사이가 추가되었다. 그들의 감시를 피해 활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공개적 활동의 장소들이 선택되었다. 아래 도표는 예수의 공개적 활동과 비공개적 활동을 보여주는 장소들이다.

 

즉 예수와 제자들의 하느님나라의 대중운동적 차원은 (I)요한을 추종하던 때엔 ‘베레아의 광야’, (II)그가 잡힌 뒤 갈릴래아에서 활동하던 초기엔 ‘촌락회당 안’, 그리고 (III)후기엔 ‘마을밖 공터인 호숫가’, 마지막으로 (IV)예루살렘에 상경했을 때엔 ‘성전’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하고 펼쳐졌다.

한편 그밖에도 어떤 ‘집’이나 ‘거리’에서 대중들에게 하느님나라를 설파하는 얘기가 간혹 나오는데, ‘집’과 ‘거리’는 촌락회당 안에서 밖으로의 전환과 무관하다. 하여 마을 안과 밖이라는 장소성의 전환이 갖는 의미에 주목한다면 ‘촌락회당’과 ‘마을 밖 호숫가’라는 장소성에 주목하게 된다. 여기서 ‘마을 밖 호숫가’라는 장소성에 대하여는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활동 양식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 3,14-15)

여기서 ‘말씀 전파’와 ‘축귀’, 이 두 가지가 예수운동의 활동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 두 요소에 대하여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말씀 전파’란 하느님나라가 도래했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것에 관한 메시지를 말하고, ‘축귀’란 악령 들린 이를 치유하는 행위다. 이것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바리사이적 안식일법의 밖으로 내몰린 병자의 치유라는 점에서 바리사이적 질서와 대립하고 있다.

규모와 조직체계

흔히 ‘제자’의 규모를 12명이라고 이해한다. 실제로 복음서들도 그런 전승을 갖고 있다. 〈마르코복음〉 3,16-19와 〈마태오복음〉 10,2-4, 그리고 〈루카복음〉 6,13-16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12명으로 제한된 제자의 명단이 열거되어 있다. 그 명단이 대체로 일치하지만 조금 다르다는 것은 그 열두 명의 명단을 만들려는 시도가 여러 곳에서 있었고 폭넓게 합의되었지만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음을 알려준다. 

한데 더 문제는 ‘열둘’(δωδεκα)의 명단에는 없지만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던 때까지 함께 했던 이들이 시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티매오의 아들’(ὁ υἱος Τιμαιου, Βαρτιμαιος)이라는 익명의 인물은 예수에 의해 고침받은 뒤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를 ‘따랐다’는, 전형적인 제자부름 양식을 지닌다는 점에서 어쩌면 예수제자단의 일원이 된 인물일 수 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15,40-41의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는 표현이다. 예수의 죽음을 목격한 여성들, 그들은 부활의 목격자이기도 한데, 〈마르코복음〉은 이제까지 이들 여성들이 예수를 갈릴래아에서부터 따르던 측근들이었다는 시실에 대해 침묵하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대목에서 그이들이 예수 제자단의 일원이었음을 마지못해 드러내고 있다.

사실 예수 제자단의 숫자를 12명으로 고정하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작위적이다. 그 숫자가 12명 이상인지 이하인지 알 수 없지만, 거기에는 15,40-41에 언급된 여성들 몇 명을 포함한 일단의 여자들과 남자들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한데 ‘열둘’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열둘’이라는 단어의 어법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사실 이스라엘 부족동맹을 가리키는 ‘열둘’도, 그 명단을 확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보다 오래된 전승들을 보면 자연수 '12'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부족 모두’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제자를 ‘열둘’로 표기하면서 그 명단을 자연수 12명으로 한정하려는 것은 점더 후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열둘’은 ‘모든 이스라엘’이라는 함의를 갖는 용법으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도 무리한 추정이 아니다. 아니 숫자보다는 ‘이스라엘 전체’라는 의미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말한, ‘제자’라는 용어의 함의를 다시 주목해보자. 이 단어는 ‘버리고 따른’ 이들을 가리키는 〈마르코복음〉의 용어였다고 하자. 그리고 이들 속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목격자들이 여성들을 포함한 남녀 여럿이 있다.

한편 예수는 간간이 제자들 중 몇만을 데리고 특별한 곳에 가거나 활동을 한다. 가령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사망한 이후 그 소녀를 부활케 하는 기적 장면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만이 그 장면의 목격을 허락받았다.(5,37) 또 필립보의 가리사리아에 있는 한 산에서 예수가 모세와 엘리야와 만나 함께 이야기하는 신비한 사건이 벌어지는 장면에서도 몇 명의 제자만이 그 장면의 목격자가 되는 걸 허락받았다.(9,2) 그 외에 예수가 대제사장의 사병들에게 체포되기 직전 올리브산의 게세마네 언덕에서 눈물이 피가 될 만큼 격렬하게 기도하는 장면에도 몇 명의 제자만이 함께 하는 걸 허락받았다.(14,33)

그밖에 많은 곳에서 예수는 중요한 사실이 폭로되거나 보다 은밀한 장소로 이동할 때 제자단 중 특화된 일부만이 참여하게 했다. 이것은 제자단 중 몇은 좀더 내밀한 측근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런 추정도 가능하다. 제자단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여자들과 남자들인데, 그들이 12명에 한정된 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때로는 보다 큰 규모의 제자집단이 함께 했고 또 때로는 좀더 작은 규모로 이동했다. 여기서 ‘보다 작은 규모’라는 말 속에는 ‘제자 중의 제자’라는 함의를 갖는 ‘최측근집단’(inner circle)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어쩌면 이 최측근 집단의 이름이 ‘열둘’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제자단의 규모는 특정한 숫자에 맞추었던 것이 아니라 비공개활동과 공개활동을 병행하며 벌여야 했던 상황에서 적절한 숫자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집단의 변동적인 규모는 그 조직의 구조를 추정할 수 있게 한다. 보다 내밀한 집단은 예수운동의 가장 내밀한 비밀에 접할 수 있는 이들의 범주였을 것이고, 보다 확대된 집단은 예수운동의 활동이 보다 규모 있게 전개될 수 있는 범주였겠다.

정리하자면 예수운동의 제자단은 ‘버리고 따름’이라는 윤리적 강령을 가지고 예수와 더불어 떠돌이 예언자로 살아간 이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들의 윤리는 무시간적 윤리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각각 다른 시간에 적용하면서 재해석된 윤리로 예수를 해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보다는 그러한 윤리가 형성되기 이전의 예수운동의 사건적 전개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고, 그중 예수운동의 운동전략을 주도하는 전략집단(stratigic group)으로서 제자단이 예수와 더불어 예수운동을 추동한 주역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운동에서 그들을 예수와 구별하는 것은 무모하다. 그들도 예수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나라 운동에 투신한 이들’이었고, 그들도 예수처럼 하느님나라가 도래했음을 설파하고 악령 들린이에게서 악귀를 추방하는 사역을 벌였다. 하여 후에 예루살렘에서 그가 체포되는 장면에서 대제사장의 사병들은 주모자가 누구인지 몰라 밀고자의 지적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역사의 예수를 조명하는 작업에서 예수와 제자를 구별하고 제자의 시각과 해석을 제거함으로써 예수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예수운동에서 예수와 제자는 서로 긴밀히 연결된 집합적 인격으로서 대중과 만났고 대중에게 기억되었다. 단 대중은 그런 집합적 주체로서의 예수운동의 전략집단의 활동에 관한 기억을 예수라는 한 인물에 관한 것으로 기억했다. 그리하여 예수와 제자들은 주와 객의 관계가 아니라 ‘더불어 하나’로서의 주체였다.

 

김진호
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소 연구실장, 한백교회 담임목사, 계간 《당대비평》 주간.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서울신문》 《주간경향》 《한겨레21》 등의 객원컬럼리스트. 《예수역사학》 《예수의 독설》 《리부팅 바울―권리 없는 자들의 신학을 위하여》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요한복음》 《권력과 교회》 《시민K, 교회를 나가다》 《반신학의 미소》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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