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의무와 사회정의 통합한 성인, 도로시 데이
상태바
자비의 의무와 사회정의 통합한 성인, 도로시 데이
  • 한상봉
  • 승인 2016.06.01 14: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인으로 가는 길, 로버트 엘스버그를 만나다-1

가톨릭일꾼운동은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이 1933년 5월 <가톨릭일꾼(Catholic Worker)> 신문을 발행하면서 미국 뉴욕에서 시작되었다. 일꾼운동은 지난 80년 동안 줄곧 노숙인들을 위한 환대의 집을 열고, 시대의 징표를 공동으로 식별하기 위해 원탁토론회를 진행하고, 농경공동체를 만들고, 그리스도교 평화운동을 전개해 온 현재진행형인 ‘자발적인’ 평신도운동이다.

도로시 데이는 일꾼운동이 성과주의에 매몰되지 않도록 조심했으며, 인간이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존엄한 인격임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인에게 삶의 목적은 성인됨에 있다.”고 여겼다. 결국 일꾼운동은 순례하는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여정 속에서 ‘관상과 실천’을 통해 거룩함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었다.

한국에 이러한 운동을 소개하기 위해 2016년 2월 뉴욕을 찾아가 메리하우스와 성요셉하우스 등을 방문하고, 도로시 데이 말년에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을 맡았던 로버트 엘스버그(Robert Ellsburg)를 만나 인터뷰를 청했다.

로버트 엘스버그는 하버드 대학교 재학 중인 1975년 도로시 데이 를 만나 <가톨릭일꾼> 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다 1980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 후 하버드 대학교로 돌아가 종교와 문학을 공부하고,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변화된 모습을 경험했다. 1987년 같은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메리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오르비스(Orbis) 출판사 편집장을 28년째 맡고 있다. 그동안 <모든 성인들>과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등을 썼다. 도로시 데이 시성 추진위원회와 헨리 나웬 재단 위원이며, 현재 세 자녀와 함께 미국 뉴욕주 오시닝에 살고 있다.

로버트 엘스버그는 "도로시 데이는 평신도였고, 여자였고 ‘결혼하지 않은 엄마’였고, 교회에서 허락을 받거나 교회의 어떤 요청도 없이 자발적으로 평신도운동을 시작한 분"이라는 점에서 우리 시대에 아주 특별한 성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봉

-최근에 로메로 대주교가 시복되면서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했던 성인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없던 성인의 유형인데, 이러한 시성운동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0년 전에 뉴욕교구에서 도로시 데이에 대한 시복식 문제가 나왔을 때 저는 처음부터 동의했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늘 우리 모두가 성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식적인 과정과 절차를 거쳐 정식으로 시성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습니다.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일을 용감하게 행하는 성인이 필요하고, 우리는 모두 그런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볼 때 도로시 데이는 특별히 우리 세대를 반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로시 데이는 평신도였고, 여자였고 ‘결혼하지 않은 엄마’였고, 교회에서 허락을 받거나 교회의 어떤 요청도 없이 자발적으로 평신도운동을 시작한 분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성인이 될 것입니다. 성인이라면 으레 사제나 수도자였다고 생각하는데, 도로시가 평신도라는 점이 대단합니다. 더구나 다른 성인들은 대부분 자비의 활동에 머무는 데, 도로시 데이는 하느님의 자비를 사회정의를 위한 투신과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우리 세대에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가 복음서에서 전한 ‘비폭력적인 평화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개혁에 대해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때, 도로시 데이는 평화에 대해 말하고 실천했습니다. 그분은 언제 성인이 되어도 좋을 테지만, 특히 이번 프란치스코 교종 시기에 성인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지금은 화해와 정의가 절실한 시대라서, 도로시 데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적합한 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로시 데이는 소외된 사람과 사회적 약자에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미국의회에서 연설하실 때,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네 분을 거명하면서, 링컨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 토머스 머튼과 더불어 도로시 데이를 꼽은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교종이 지목한 네 분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신 분들이고, 우리의 시야를 넓게 해 주신 분들입니다.

개인의 성화 뿐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 것일 텐데, 이것은 가톨릭교회와 교황청이 나아갈 방향 가운데 하나이겠죠. 그걸 도로시 데이가 이미 해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교종이 특별히 복음 때문에 기득권을 거부하려는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는 점에서 도로시 데이의 시성이 갖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도로시 데이는 사회정의와 평화, 인권에 대한 관심 등 가톨릭교회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고 미국역사 전체에 반영될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인물입니다.

뉴욕 맨하튼에 있는 성 패트릭대성당 안팎에 성조기가 걸려 있다. ⓒ한상봉

-미국 가톨릭교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미국 주교회의는 아주 보수적인 공화당과 선이 맞닿아 있어요. 교회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게 프로라이프운동인데, 겉으로는 생명운동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는 낙태 반대운동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 출신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 개혁을 포괄적인 복지 차원에서 보지 않고 낙태와 피임 관련해서만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미국교회가 공동선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최근에 프란치스코 교종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 트럼프와 벌인 공방에서도 이런 모습이 보였습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인데요, 난민들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차단벽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 교종이 “벽을 세우는 사람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다.”라고 응수 했어요. 그러자 트럼프가 제 말을 안 들으면 나중에 IS 등의 공격을 받으면서 후회할 것이라고 윽박질렀죠.

이런 기사들이 신문방송에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데도 당시 미국 주교회의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교종이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트럼프의 생각을 문제 삼았으면 미국 주교회의에서도 입장을 표명해야 마땅한 거지요. 그런데 교회가 조용히 넘어가는 것을 본 거죠. 만약 도로시 데이가 살아 있었다면 전혀 다르게 대응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국경 없이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국경을 따지면 안 되겠죠. 우리는 미국시민이든 아니든 똑같은 사람이고,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숨을 쉬면서 지상에 살고 있어요.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내려 본다면 당연히 국경선은 보이지 않을 겁니다. 강과 산맥이 있을 뿐이죠. 그렇지만 현실은 특정 엘리트 그룹과 가진 자들이 자기가 다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지구든 환경이든 평화든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사는 것은 잘못이죠. 도로시 데이라면 당연히 ‘국경 없는 사랑’을 역설했을 겁니다.

트럼프는 미국을 번영된 나라로 다시 재건하겠다고 선언했는데, 미국을 더 부유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말이죠.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미국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매일매일 끼니를 걱정하면서 살아나가야 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미국시민이라 해도 지금 가난하다면 그 사람 자체가 난민이죠.

도로시 데이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미국에 살고, 거기서도 가장 잘 나간다는 도시 뉴욕에 살면서도 정말 소외되고 약하고 가난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지냈습니다.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퍼뜨리는 활동을 계속한 것이지요. 이 마당에 정말 ‘위대한’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링컨과 루터 킹과 머튼과 도로시 데이가 원했던 나라 말입니다. 그런 나라는 트럼프가 말하는 ‘번영된 나라’와 전혀 다른 나라일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