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복음, 예수에 대한 민중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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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예수에 대한 민중의 기억
  • 김진호
  • 승인 2019.05.2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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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수행자와 ‘장벽 저편 사람들’의 기억-1

〈마르코복음〉 공동체의 주요대중이 오클로스(οχλος)였다는 주장을 처음 편 사람은 일본의 성서학자 다가와 겐죠(田川建三)다. 그는 〈마르코복음〉에서 사용된 ‘오클로스’를 특별한 사회학적 범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 복음서에서 오클로스는 세리나 매춘여성 그리고 병자처럼 촌락사회의 정상적 질서 속에 편입되지 못한 자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속하지 못함으로써 존재하는 자’를 가리킨다. ‘속함’과 ‘속하지 못함’이 나뉜다는 것은 그들을 가르는 ‘보이지 않은 장벽’이 일상의 질서 속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장벽 저편의 사람들-오클로스

<마가복음과 민중해방>, 다가와 겐죠(田川建三), 사계절, 1983

이스라엘인들 가운데 유대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혈통적 정체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종교성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Ιουδαῖος)과 이방인(εθνος)을 나누고, 또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유대주의적 혈통적 정체성에 충실하지 않은 이들을 일종의 ‘가짜유대인’(quasi-Jews)으로 간주했다. 여기에는 사마리아인, 이두매아인, 갈릴래아인 뿐 아니라 여성도 포함되고, 특정 직종의 사람들, 가령 세리, 매춘여성, 목자 등도 포함된다. 또 혐오스런 것으로 간주된 질병들(문둥병, 귀신 들림 등)에 걸린 사람들도 유대인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회에는, 특히 유대주의적 세계관에 따르면, 사람들을 안팎으로 나누고 그 ‘밖’에 배치된 이들에 대해 배체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많은 장벽들이 놓여 있다. 그런데 예수 탄생에 관한 두 갈래의 설화에서 예수의 탄생을 처음 환대했던 이들인 ‘동방의 마고이’(동방에서 온 박사들, μαγοι απο ανατολων)과 ‘목자들’(ποιμενες)은 장벽 저편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마르코복음〉 공동체의 주요대중인 오클로스들도 ‘장벽 저편 사람들’이다.

하지만 다가와의 연구에서 오클로스는 〈마르코복음〉의 대중일 뿐이다. 그것은 그가 논문을 쓰던 시대의 학계의 관행이었다. 복음서 연구를 통해 역사의 예수를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던 시대였던 것이다. 오히려 당시에는 복음서 저자의 저술의도 혹은 공동체의 집단이해나 정체성을 해석하는 것에 많은 연구자들이 몰두하고 있었다.

안병무가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예수를 주장하던 1970~80년대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안병무는 다가와의 연구를 참조하면서 오클로스는 〈마르코복음〉 공동체의 대중일 뿐 아니라, 예수 이야기를 전달한 대중, 그리고 예수 당대의 대중을 특징짓는 주요 성격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병무는 거의 10년(1975~1984)에 걸친 생각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논증에 성공한다. 그의 논증을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여기서는 핵심적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보겠다.

마르코복음-오클로스의 구술 전승

먼저 전제할 것은 〈마르코복음〉이, 특히 1~10장까지는 구술문학의 성격이 강한 텍스트라는 점이다. 구술문학은, 저자의 창의적 구성을 생명으로 하는 일반적인 문학텍스트와는 달리 대중의 집단적 기억이 채록자의 내용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문학양식이다. 해서 이 텍스트가 구술문학이라는 사실은 그 문자 구성체인 〈마르코복음〉을 수용하고 유통시킨 대중의 집단적 기억이 책의 내용과 구성에 중요한 미쳤다는 가정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다가와가 말한 〈마르코복음〉 공동체의 주요대중이 오클로스라는 가설을 연계시키면, 복음서에서 예수 자신에게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데 방법론적으로 답보상태에 처해 있었던 예수학계의 한계상황을 돌파하는 놀라운 가능성이 제기된다. 즉 오클로스는 복음서 공동체의 주요대중일 뿐 아니라, 예수 이야기를 전승시켰고 더 거슬러 올라가 예수 자신이 활동하던 당시의 최초 사건의 대중 속에도 오클로스가 적지 않았다면, 오클로스 계보의 전승이 채록된 결과물이 바로 〈마르코복음〉이라는 가설이 나온다.

 

이때 대중의 집단기억이 〈마르코복음〉의 구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포착하면서 안병무가 주목한 것은, 이제까지 저자의 무의미한 첨가문으로 간주해왔던 장소이동에 관한 두 구절이다.

1,14 :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3,6~7: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1,14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체포된 것과 예수가 (베레아에서) 갈릴래아로 옮겨간 것, 그리고 3,6~7에서는 (갈릴래아 마을 안에서 바리사이와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진 뒤) 바리사이가 헤롯의 당파들과 결탁하여 예수를 적대시하게 되자 예수가 (갈릴래아 마을 밖의) 호숫가(θάλασσα)로 물러갔다는 것이 명시되고 있다. 안병무는 이렇게 예수활동의 장소 전환을 나타내는 구절들이 각각 오클로스와 관련해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음에도, 예수학계는 그 연계성을 주목하지 않았다고 문제제기한다.

여기에 한 구절을 더 언급할 수 있다. 10,32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예수께서 앞장서서 가시는데, 제자들은 놀랐으며, 뒤따라가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였다.”이 그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11장부터 복음서 끝까지(16,8)는 구술문학의 성격이 낮다. 그 내용은 ‘수난이야기’(passion story)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대중의 기억이 아니라 공동체 지도자들의 공식적 기억의 성격이 강하다. 그것도 구술 형식으로 전달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구술의 매개는 대중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동체의 예배에서 정형화된 이야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대중의 삶이 반영된 대중서사와는 달리 공동체의 정체성이 반영된 서사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10.32에서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갔다. 하지만 이 구절에선 그 이유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한데 14,1에서 그 이유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밝혀진다. 그때가 바로 유월절 절기인 것이다. 많은 순례객이 집중적으로 모여드는 시간이며, 그중에는 정치적 메시아 사건을 갈망하는 이들도 무수히 모여드는 그런 시간이기도 하다. 바로 그때에 예수는 예루살렘을 향했고 그곳에서 정치적 메시아를 자처한 이유로 사전 검거되어 처형되었다. 그런 정보를 담은 장소 이동의 계기적 구문이 바로 10,32다.

 

하여 위의 도표처럼 〈마르코복음〉은 세 개의 구절을 전환점으로 하여 장소를 이동했다. 안병무는 그 장소이동을 중요한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한다. 그런 점에서 안병무는 〈마르코복음〉에 등장하는 예수에 대한 정치적 독해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정치적 함의는 바로 오클로스의 시각이다. 즉 오클로스의 관점에서 이 장소적 전환은 정치적이다.

한편 안병무는 장소적 구성뿐 아니라 구술문학의 특징인 이야기의 양식에서도 오클로스들이 읽어낸 정치성이 있음을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마르코복음〉의 예수전은 불의한 권력에 의해 죽임당한 예수의 이야기를 공권력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유포한 위험한 텍스트라고 본다. 〈마르코복음〉의 이야기 양식을 ‘유언비어’(rumor)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이 세 구절들을 계기로 하는 예수운동의 장소적 전환의 정치성을 오클로스의 기억을 중심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첫 번째 전환에 관한 것이다.

김진호
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소 연구실장, 한백교회 담임목사, 계간 《당대비평》 주간.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서울신문》 《주간경향》 《한겨레21》 등의 객원컬럼리스트. 《예수역사학》 《예수의 독설》 《리부팅 바울―권리 없는 자들의 신학을 위하여》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요한복음》 《권력과 교회》 《시민K, 교회를 나가다》 《반신학의 미소》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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