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샐비어꽃보다 더 붉은 피 한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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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샐비어꽃보다 더 붉은 피 한 방울
  • 신대원
  • 승인 2024.06.10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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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원 신부의 잡설
사진출처=biosferavegetal.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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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이라 불리우던 오월이 떠나가고 그 빈자리에 핏빛 닮은 샐비어꽃 피는 유월과 마주하였다. 유월은 오월의 슬프고 고독한 느낌과 사뭇 다르다. 오월의 광주가 외롭고 고독했다면, 유월의 한반도 이남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6.10 항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천부인권(天賦人權)”이라는 명제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명제가 절로 가슴으로 와 닿는 달의 첫머리다.

유월은 고독과 치열함으로 일구어낸 그해 오월의 봄이 어느 뒤안길로 핫바지 방귀 빠져나가듯 시방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노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유월과 마주하면, 그날의 치열하도록 뜨거웠던 우리네 가슴,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먹먹해져 가는 그날의 함성의 주제는 결국 “주권재민”이 아니더냐? 하지만 시방은 어떨까? 방방곡곡으로 스며져 가던 그날의 젊은 함성은 또 어디쯤에서 가슴앓이하고 있을까?

그때 그 시절 단 한 번이라도 가슴이 뜨거워 보지 않았던 인생들이 있었더냐? 가진 사람들은 “운동권 놈들, 운동권 놈들” 하면서 저주하듯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의 “타는 목마름”을 애써 폄훼하고 있지만, 계절은 언제나 잊지 않고 되돌아오고, 뻐꾸기 지천으로 울어대는 그 한복판으로 또다시 우리들의 유월은, 그 유월은 기어이 또 오고야 말았다.

1950년의 우리민족끼리의 상잔(相殘)을 어찌 잊겠냐마는, 그 상잔의 시발점이 어찌 “재민(在民)”이더냐? 미국과 일본과 러시아와 중국, 거기에 빌붙어 기생하던 못난 자(者)들이 아니더냐? 그리고 아직도 아물지 못한 그 상흔을 볼모로 삼아 여태까지 우려먹던 사람들의 못돼먹은 심성이 틈만 나면 백주에도 광기를 남발하지 않더냐? 그런 자들에게도 가슴 한구석에 샐비어꽃보다 더 붉고 더 더운 피 한 방울 남아 있을까? 남아 있다면 기어이 한 번쯤이라도 돋아오르기는 할 건가?

지금 시대는 모두들 “주권재민이니”, “민주니 ”운운해보지만, 주권재민을 훼손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더욱 손쉽도록 저지르고, 그리고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그저 입을 닦으려고 안달하는 것을 볼 적마다 속이 타고 역겹다. 그렇게 지난 오월을 보냈고, 또 그렇게 우리는 새로 시작할 유월과 마주하고 있다. 어쩌면 유월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못난, 갈수록 파렴치 해져가는 우리네 덧없는 무게와 두께와 감성과 지성, 오감 등등이 아닐까?

“천부인권”의 인간이 아니라, 하늘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탐욕과 교만, 왜곡과 허위와 날조로 마치 멀지 않아 도래할 중무장한 AI처럼 무감각하고 무정하고 무책임한 그러면서도 인간 인체 하는 “아바타”가 아닐까? 하고 시방 도렷이 세상을 노려보려고 눈을 조금씩 크게 뜨는 연습을 반복 해보기로 결심하면서도 그 시절 그날의 젊은 피들을 못내 그리워하는 유월의 초입이다.

 

신대원 신부
안동교구 태화동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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