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의 서약만이 영웅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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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의 서약만이 영웅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 토머스 머튼
  • 승인 2024.06.0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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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삶과 거룩함
사진출처=scontent.fgdl5-1.fna.fbcd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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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최대한 부정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과 판단에 따라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사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교적 금욕은 우리 존재의 가장 친밀한 깊이까지 이를 것이다.

수도자들은 규칙과 예배라는 외적인 행위를 하기로 맹세함으로써 자신들을 묶어 놓게 되는데 그럼으로써 그들은 완전한 사랑에 좀더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하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마태오 19,21).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지향해야 한다는 모두에게 부과된 일반적인 의무 외에, 수도자들은 자신들이 서약한 특별한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그의 삶의 목적이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 안에서 내적으로 성장하는 것. 이러한 내적인 사랑의 발전은 완전함을 향한 진정한 성장이다. 그러므로, 수도자들은 그의 직분이 제공하는 방법들을 이용하여 “세상”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며 “성령에 일치하여” 더욱 완전하게 살고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평신도들은 물론 수도자들에게 제공되는 영적인 혜택들을 갖지는 못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평신도들 역시 그들만의 혜택과 희생이 있다는 점이다. 거룩함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수도자의 서약만이 영웅적인 것이 될 수는 없다. 결혼의 의무도 사실상 수도자의 그것보다 쉽지 않은 것이다. 결혼은 성약(聖約)이므로, 결혼 생활은 특별히 신성한 은총으로 성화되어야 한다. 이 신성한 은총이 결혼을 영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므로, 결혼은 그리스도와 맺는 일치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신앙의 정신에서 본다면 단순함과 사랑이라는 은총의 선물으로 거룩함이 자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혼 생활은 “육적인 삶”이고 수도적인 삶만이 “영적인 삶”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결혼 생활은 진정 영적인 소명이지만 결혼한 사람들이 그들의 영적인 기회들을 깨닫지 못하고 자주 자신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사람을 찾지 못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결혼한 그리스도인들이 수도자들의 금욕, 봉헌, 영적인 의식 등을 따를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어떤 면에서 거룩함과 완전함의 삶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다고 여기는 것은 비극이다.

반대로 그들은 교회가 이 모든 문제들로부터 자유롭게 해 줌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최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즐거워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신약성서를 읽고 “즐거움과 단순한 마음을 안고 빵을 나누었던”(사도행전 2,46-47) 초기 그리스도 신자들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교회의 전례의 삶에 자신들을 담가 성찬례의 예식으로부터 사랑 속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힘을 이끌어 내고 자신들을 잊을 수 있도록 하자.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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