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벤치에서 일어나 맨발로 서울을 걷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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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벤치에서 일어나 맨발로 서울을 걷는
  • 진용주
  • 승인 2024.02.1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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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주의 사진 ...그리고 적막함

못 박힌 자국이 깊게 난 그이의 맨발. 언덕과 광야와 호숫가를 걸었던 맨발. 지금은 서소문역사공원의 벤치에 누워계신다. 잘못 제목 붙은 영화의 대표 격일 《연어알》의 마지막 장면은 배우이자 노래하는 이인 k.d. lang이 부르는 〈Barefoot〉과 눈길을 밟는 소리, 그리고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로 끝난다.

하지만 난 맨발로 눈 속을 걸을 거야
만약 당신이 문을 열어준다면
난 맨발로 눈 속을 걸을 거야.

누구 하나 깨지 않는 세상의 가장 깊은 밤이면 예수님이 벤치에서 일어나 맨발로 서울을 걷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그이는 어느 곳의 문을 두드릴 것인지. 우리는 마침내 문을 열어줄 것인지.

*서소문역사공원에 설치된 캐나다 작가 티모시 슈말츠의 <노숙자 예수>. 작가는 마태복음 25장 40절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에서 영감을 받아 노숙인의 모습으로 예수를 표현했다.

**미국에서 처음 <노숙자 예수> 상을 설치한 곳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데이비슨의 성 알반 성공회교회였다. 교회의 데이비드 벅 목사는 슈말츠의 조각을 둘러싼 논의(작품이 설치된 곳의 일부 시민들은 신성모독이라거나 혐오작품이라며 비판하였다)를 환영하며 "전통적인 종교 예술에서 예수가 화려하게 보좌에 앉은 영광의 그리스도로 묘사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진짜 성경의 교훈을 줍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런 삶을 사셨다고 믿습니다. 그는 본질적으로 노숙자였습니다."

 

진용주 
<우리교육> 기자, 디자인하우스 단행본 편집장 등 오랫동안 기획, 편집, 교정교열, 디자인, 고스트라이팅 등 여러 방법으로 잡지와 단행본을 만들며 살았다. 책을 만드는 것만큼 글을 쓰는 일도 오래 붙잡고 지냈다. 장만옥에 대한 글을 쓰며 남에게 보이는 글의 고난을 처음 실감했다. 덴마크 루이지애나미술관에 대한 글을 쓰며 미술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들지 않을 때 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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