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구라는 역사보다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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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구라는 역사보다 참되다
  • 김광남
  • 승인 2023.12.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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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칼럼
조토 디 본도네의 ‘예수 탄생
조토 디 본도네의 ‘예수 탄생

아직 신학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래서 매우 보수적이고 문자적인 신앙을 갖고 있던 청년 시절에, 대림절이 시작되면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 탄생 이야기를 찾아 읽었다. 마태오복음 1-2장과 루카복음 1-2장.

한데 읽을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마태오의 이야기와 루카의 이야기가 이토록 다른가? 마태오의 이야기에서 예수의 가족은 유대 베들레헴 사람들이다. 예수를 낳은 직후 그 가족은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들의 말을 듣고 광분한 헤롯의 칼을 피해 낯선 땅 애굽으로 도망간다. 그러는 사이 베들레헴에서는 아이들이 칼에 맞아 죽는다. 마태의 예수 탄생 이야기에서는 피바람이 분다.

반면에 루카의 이야기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이다.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 등록을 위해 유다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예수를 낳는다. 아기 예수가 누워 있는 마구간으로 인근 들에서 양을 치던 지저분한 목자들이 찾아온다. 외교관을 닮은 동방의 박사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여드레 후에 요셉 가족은 헤롯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곳 성전에서 예수에게 할례를 행하고 성전에 있던 시므온과 안나의 축복을 받은 후 그들의 고향 갈릴리 나사렛으로 올라간다.

피바람이 부는 마태오의 그것과 달리 루카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매우 목가적(牧歌的)이다. 이 두 이야기를 어떻게 서로 조화시킬 것인까? 이 두 이야기가 같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한 건가? 당시에는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그 질문에 답할 수가 없었다. 해서 대림절 무렵에 경건한 마음으로 읽었던 성탄 이야기는 늘 그렇게 의문과 회의로 끝나곤 했다.

꽤 오랜 세월이 흐르고 '성서학'이라는 걸 접했오와 루카의 신학적 강조점이 서로 달랐기에 그들의 예수 탄생 설화 역시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걸. 그러므로 그 두 이야기를 조화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요즘은 복음서의 성탄절 이야기를 아무런 갈등 없이 편안하게 읽는다. 두 이야기를 조화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그 이야기가 '신학적 구라'라는 것 때문에 고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목사들이 그 이야기를 사실로 전제하고 설교를 해도 기꺼이 '아멘'을 한다. 우리의 신앙이 사실이 아니라 구라 위에 서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때로 구라는 역사보다 강하고 참되다.

또한번의 대림절을 지내고 있다. 예수가 우리 곁에 오셨던 이유를 살피고 있다. 지금 우리가 그 예수에게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에 대해서도...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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