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종교가 된 그리스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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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종교가 된 그리스도교?
  • 최태선
  • 승인 2023.11.20 11:5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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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머슨(무슨) 개소리”
내 글에 달린 댓글 중 가장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내가 이 댓글을 기억하는 이유는 이 댓글을 단 사람이 신부였기 때문이다.(이 댓글을 보고 댓글을 단 사람을 클릭해보았다. 그는 신부였다.)

내가 썼던 글은 성인숭배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인은 없다. 만일 그리스도교 안에 성인이 따로 존재한다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본이 되실 수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서 나는 누구이고 너희는 누구인가? 너무도 당연하다. 나는 예수님이고 너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당시 사회의 관습상 스승과 제자는 주종관계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당시의 관습을 완전히 파괴하는 선언을 하고 계시다. 예수님께서 명한대로 행하는 제자들은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하신 것은 곧 예수님이 행하시던 일이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고 그것을 행하도록 명령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함에는 괴리가 존재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예수님을 ‘몸소 하느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명하신 것을 행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을 행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예수님을 따라 행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변질된다. 예수님께서 본이 되시는 그리스도교가 사라지고 예수님이 신앙의 대상으로 변한 그리스도교가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인숭배란 본이셨던 예수님이 신앙의 대상이 됨으로써 발생하게 된 현상이고, 그렇게 된 이유는 예수의 제자가 아닌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이 그리스도교 안에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고, 예수의 제자가 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인 그리스도인들을 특별한 사람, 다시 말해 성인으로 만들어 추앙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무의미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방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과 인간 사이의 영매(무당)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 영매의 역할을 성직자 혹은 수도자들이 맡게 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영험한 사람들에게 기도를 받으러 간다. 그 영험한 사람들 대부분은 목사이거나 사제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축복기도를 받기 원한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스도교 안에 영매와 무당의 역할을 하는 중보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목사인 내가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면 대화의 가장 마지막에 축복기도를 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도를 거절한다. 목사는 특별한 사람(무당)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마지막 끝을 기도로 마치기 원하는 사람에게 기도할 것을 부탁한다. 기도하기를 어려워하면 기도를 하지 않는다. 목사와의 대화의 끝이 반드시 기도여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병 낫기를 바라는 사람의 기도도 해주지 않고, 직접 그 사람에게 기도하라고 한다. 만일 환자가 기도를 할 수 없는 상태라면 그 환자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도를 할 수 있게 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고, 그리스도교는 무당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도가 지나치다든가 틀렸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무당종교가 된 그리스도교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은 본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 된 예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차제에 자신의 믿음을 잘 돌아보시기를 바란다.

그렇다. 예수님께서 본이 되실 수 없는 그리스도교는 무당종교가 될 수밖에 없고 목하 우리는 그렇게 무당종교가 된 그리스도교를 보고 있다.

나는 오늘날 그리스도교 안에서 목사와 사제들이 무당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당의 역할을 겸하는 사람들은 결코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고, 그런 사람들을 따르는 사람들 역시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예수의 제자가 없는 그리스도교와 교회를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목사와 사제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목사와 사제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주님의 양들이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일에서도 예수님은 본이 되신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는 일은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본받게 하여 예수님의 친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목사와 사제들의 친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처럼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목사와 사제들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와 같이 대신 기도를 드려주는 사람이 되고 축복기도를 드려주는 사람이 된다면 주님의 양들은 결코 생명으로 풍성해질 수 없고, 예수님의 친구는 물론 목사와 사제의 친구조차도 될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같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일에 참여한다면, 그래서 함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매와 형제로서 친구가 된다.

성서에서 말하는 자매와 형제라는 말의 의미는 혈연의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친구가 된 사람들은 하느님의 가족이 되어 서로 사랑하게 된다. 자매와 형제, 그리고 친구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두가 평등한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이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바로 성직주의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성인숭배가 반 복음적이라는 사실에 대해 “무슨 개소리”냐고 말하는 신부가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가 정말 성직자라면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로 그렇게 개무시하는 댓글을 달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우월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그 사람이야말로 자신을 큰 무당으로 아는 사람이다.

그리스도교는 성인은 물론 목사와 사제라는 성직도 없는 곳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젖먹이에 이르기까지 오직 본받기 릴레이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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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23-11-22 12:49:02
성인은 숭배가 아니라 신앙의 모범으로 공경하는 것. 지극히 '기본적인' 가톨릭 교리인데 오해하는 경우가 참 많지요.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박경숙베로니카 2023-11-20 17:41:32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