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함, 상징적 사랑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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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 상징적 사랑과 거리가 멀다
  • 토머스 머튼
  • 승인 2023.09.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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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삶과 거룩함/그리스도교의 이상-2: 불완전한 이상-1
사진출처=monasticway.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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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는 이유가 항상 악의, 게으름, 우둔한 죄 때문이라고 그럴듯하게 추측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혼란, 무지, 약함, 몰이해 때문일 경우가 많다. 우리는 자신의 소명이 지니는 의미와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풍요하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귀중하게 여겨야 하는지조차 모른다(에페소서 3,9). 하느님 그리고 그분의 거룩한 구원과 무한한 자비의 신비는 “신앙이 깊은 사람”에게도 모호하고 믿기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소명이 지닌 깊은 의미에 응답할 용기도 힘도 없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그것이 가져올 참다운 전망들을 왜곡한 채,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고상한 사회적 소유물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한 경우 그리스도적 “완전함”이란 신앙의 어두운 밤 가운데에서도 은총에 꾸준히 그리고 놀라운 충실함을 간직하는 것이라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제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옳다고” 상식적으로 여겨지는 것에 남부끄럽지 않게 동조하는 것이 거룩함이라고 간주된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외적인 징표에 거룩함의 비중이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형식주의를 무조건 바리사이주의로 몰아세운다면 그것 역시 지나치게 진부한 사고방식일 것이다. 이런 방식의 존경 안에도 도덕적인 선의가 꽤 많이 내포되어 있을 수 있다. 하느님은 선한 의도를 놓치는 법이 없으시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들이 속한 사회적 집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희생, 동료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며 외롭고 고통스러운 책임을 져야 하는 결정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깊이의 부족, 확실한 어떤 일방성과 불완전함이 항상 남아 있게 되어 그리스도를 온전히 본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적 거룩함의 길은 어떤 경우에도 힘들고 가혹하다. 우리는 단식하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세상 사람들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고통과 희생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좋은 것들을 즐기며, 이따금 “우리의 의도를 정화시켜” 우리가 모든 것을 “하느님을 위해”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자세는 평범함을 초라하게 변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자세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정당화시켜주지 않는다. 독실한 척하는 제스처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느님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상징적이어서는 안되며, 완전한 현실로 드러나야 한다. 그것은 정신적인 활동이 아닌, 우리의 가장 작은 자아를 내어주는 선물이자 투신이 되어야 한다.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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