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추종했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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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추종했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사랑했다
  • 한상봉
  • 승인 2016.08.22 18: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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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레버만, 피피엔, 2010

 

한스 홀바인(아들), <그리스도의 시신>, 바젤 쿤스트뮤제움


1521년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이 그린 그림처럼 예수의 시신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그림은 찾아볼 수 없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이 그림에 몰두하며 <백치>라는 책에서 이렇게 물었다. 

"이 그림 속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은 구타를 당해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고, 지독한 피멍이 들어 퉁퉁 부어 올라 있었으며, 두 눈이 감기지 않은 채 동공은 하늘을 바라보고, 커다랗고 허연 흰자위는 뿌연 유리 같은 광채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고통에 찢긴 이 인간의 시체를 보고 있노라면 매우 특이하고 야릇한 의문이 생겨났다.

만약 그분을 신봉하며 추앙했던 제자들과 미래의 사도들, 그리고 그를 따라와 십자가 주변에 서 있었던 여인들이 이 그림 속에 있는 것과 똑같은 그분의 시체를 보았다면, 그들은 이 시체를 보면서 어떻게 순교자가 부활하리라고 믿을 수 있었을까? 만약 죽음이 이토록 처참하고 자연의 법칙이 이토록 막강하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죽은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있었던 추종자들은 그들의 희망과 믿음이 일시에 분쇄된 그날 저녁 무서운 슬픔과 혼란을 겪었음에 틀림없다. 이들은 아주 지독한 공포 속에서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만약 이 스승이 처형 전야에 자신의 모습을 미리 그려 볼 수 있었다면 선뜻 십자가에 올라가 지금처럼 죽으려고 했을까?" 

<예수를 그린 사람들>(피피엔, 2010)이라는 책을 쓴 오이겐 드레버만이라는 신학자가 인용한 글이다. 드레버만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마치 피와 고통의 유독한 하수가 흘러들어간 우물과 같다"면서 아무도 인간의 삶에 해답을 줄 수 없기에 예수는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긴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어떻게 죽음 저편의 삶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물으면서, "오직 사랑만이 대답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한 여성에 던져졌는데, 그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라고 한다. 
 

아놀드 뵈클린, <그리스도의 시신 옆에서 슬퍼하는 막달라 마리아>, 바젤 쿤스트뮤제움


오직 사랑만이 대답을 줄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유일한 단서인 루카복음 8장 2절에 따라, 그녀가 일곱귀신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걸로 봐서 영혼이 망가져 있었던 여인이다. 그녀는 예수가 곁에 다가왔을 때야 비로소 자신의 자아를 찾고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일로 그녀는 예수를 따랐고, 예수는 유일하면서 모든 것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날 예루살렘에서 그분이 죽었다. 그분은 관대함과 믿음과 인간성 때문에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이제 사랑보다 명예가, 자비심보다 권력욕이, 이해심보다 율법고수가 더 강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제자들은 다 도망갔다. 

여기서 드레버만은 아놀드 뵈클린이 1867년에 그린 절망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을 제시한다. 다른 그림들은 성모 마리아가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그렸지만, 뵈클린은 "기가 막힌 사실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막달라 마리아가 왼손으로 눈을 가리고, 죽음에 대한 고통으로 몸을 뒤로 젖히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이 모든 게 사랑 때문이다. 드레버만은 "사랑은 상대방을 유일한 존재로 만든다"며, "사랑을 통해 처음으로 인간 자아의 존재를 찾은 사람은 사랑 속에서 신적인 힘을 느끼며,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고 말한다.

사랑은 철회되지 않는다

제자들은 예수를 추종했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그분을 추종한 게 아니라 사랑했다. 상황이 급변하면 추종은 철회될 수 있지만, 사랑은 철회되지 않는다. 그녀가 안식일 다음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요한 20,1) 홀로 예수의 무덤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예수에게 다시 한번 "마리아야!"하는 친밀한 음성을 듣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순간 죽음은 '영원히' 극복되었다"고 드레버만은 말한다. 그분의 사랑은 다시 현실이 되어 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분이 활동하셨던 갈릴래아의 가난한 이들에게로 돌아간다.
 

조르주 루오, <도시 변두리의 그리스도>, 도쿄 브릿지스톤 미술관


드레버만은 "사랑의 경험만이 우리 존재의 근원인 '낙원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행복으로 가는 문을 지키는 수호천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우리 서로가 손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며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길을 가르쳐 주신 분이 예수다. 그리고 그 예수는 특별한 연민의 사람이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건강한 사람은 의사가 필요 없으니 (오직) 아픈 사람들만이 필요하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온 게 아니라 죄지은 자들을 부르러 왔다."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는 바리사이들의 비난에 응수해서 그분이 하신 말씀이다. 예수는 난파되어 조난 당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기회없는 사람들, 배척받는 사람들, 쫓기고 박해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려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눈뜬 봉사와 같다"고 드레버만은 말한다.  자신이 제대로 믿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은 "인간이란 모두 보잘 것 없어 스스로 무엇을 맡을 자격이라곤 아예 없지만, 그럼에도 오로지 자비와 은총으로 말미암아 살아간다"는 사실을 모른다. 부서진 사람들을 선택하는 예수의 태도는 사회적 성공을 달리는 사람들에겐 위협이 된다. 사람살이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라고 요청하기 때문이다.

드레버만은 조르주 루오의 <도시 변두리의 그리스도>라는 그림을 제시하면서, 이 그림은 "인적이라곤 없이 텅빈 문이며 창들이 마치 어두운 동굴처럼 보이는 벽돌건물 사이로 거리가 뻗어 있고, 예수는 돌보고 보호해야 할 것처럼 보이는 어린아이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시는 듯하다"고 말한다.  이어 "가톨릭 사람들은 갈수록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치며 점점 더 오그라드는, 폐쇄적인 권역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물질적으로, 도덕적 사회적 종교적 재정적 법적으로 보장과 보호가 확실한 사람들의 이 권역. 도시 변두리 밤의 그리스도, 어린이들과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동반자인 그리스도는 저런 권역에 대해서는 영원히 작별을 고했다"고 말한다. 
 

로산네 사본, <자비로운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띤 그리스도>, 시리아


예수는 신학자가 아니라 시인의 언어로 말씀하신다

드레버만은 "예수는 신학자의 언어가 아니라 시인의 언어로 말씀하신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분은 "교리며 율법이며 기관들의 울타리와 경계 가르기를 뛰어넘어 모든 시대와 모든 지역 사람들의 마음에 닿기 위해 비유로 가르치셨다"는 것이다. 그는 크리스티안 룰프스의 <탕자의 귀환>을 제시하며, "하느님은 반드시 '법'보다 은총을 앞세우신다"며 "자신들의 공정함을 내세워 고집하는 사람들은 '법'을 지킨답시고 동정심 없는 엄정함과 냉혹한 엄격성을 고집하다가 하느님을 잃어버리는 커다란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일갈한다. 

한편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냐?"는 물음에, 성직자들은 "성전에",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제대로 따르는 생활에"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올바른 의식을 거행하여 하느님의 축복과 용서를 보장받기 위해, 그리고 하느님의 존재와 뜻이 무엇인지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저런 식의 경건한 의식은 마술이나 외부에 의한 조종, 권위에 대한 예속 상태로 가득하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내면에 귀를 기울리는 대신에 이런 식으로 하느님 전문가들에게 순종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자비로운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띤 그리스도>라는 로산네 사본의 그림은 예수가 누구인지, 하느님께서 누구와 함께 계신지 드러낸다. 낯선 사람들의 고난에 대해, 제사장은 '공적인 의무에 늦지 않기 위해' 깔끔한 복장으로 도착해서, 그가 올리는 전례를 통해 예배하는 사람들과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의식 차원에서 하느님을 불러내어 강림하도록 만들어야 하기에 그냥 지나친다.

오히려 전통신학의 입장에서 보면 '무신론자'나 '이교도'에 다름 없는 사마리아 사람이 연민을 가지고 고통 속으로 들어가 낯선 이를 돕는다. 하느님은 그런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드레버만은 "사마리아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라고 말한다.  

오이겐 드레버만은 뭔스터와 파더본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고, 1966년에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이어 괴팅겐에서 정신분석학을 공부했다. 1979년부터 파더본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교수로 재직했으나, 1991년 교수직을 박탈당하고,1992년에 바티칸 지도부에 의해 윤리관과 성서해석에서 마찰을 이르켜 파면되었다. 현재 파더본 대학에서 저술과 강연, 심리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전화, 팩스, 휴대전화 없이 살며 오직 편지로만 외부와 연락하며 지낸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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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천 2016-08-23 11:42:50
1866 ..년도 오기?^^-->19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