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학 신부의 "기도하고 공부하고 일하라"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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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학 신부의 "기도하고 공부하고 일하라" 2부
  • 가톨릭일꾼
  • 승인 2023.02.2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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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단순한 ‘학습’과 달라요. 공부란 라틴말로 ‘스투디움’(studium)이라고 하는데, 애쓰는 마음, 노고, 열정적이지만 특별히 격렬하지는 않은 일반적인 정신 집중 등을 뜻합니다. 스님들도 참선한다, 수행한다는 말 대신에 ‘공부한다’는 말을 곧잘 쓰죠. 동서양이나 그리스도교에서도 ‘공부’라는 말은 머리만 쓰는 것이 아니고 온 몸을 쓰는 것입니다. 지성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일종의 수행이지요. 그리스 철학자들이 전부 수행자들이었습니다.

중세의 큰 스승이었던 생 빅토르의 후고(Hugo von St. Viktor, 1096-1141)는 수행과 공부의 단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첫 번째 단계가 ‘겸손’입니다. 어떤 지식이나 말도 경멸하지 않고, 어떤 사람한테든 배우며, 또한 배움을 얻었을 때도 다른 사람들을 깔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고요함’입니다. 내 안에 고요함, 침묵이 있어야 다른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 단계는 모든 세계가 그 사람에게는 낯선 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이반 일리치는 “공부하는 사람은 온갖 관심과 욕망을 지혜에 집중하기 위해스스로 망명자가 된 사람이며, 그래서 지혜만이 교향 된 사람이다.”라고 토를 달았어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베네딕토 16세 교황님도 비슷한 말을 하죠.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제일 먼저 알아 듣는다는 거죠. 이분들은 우리가 자꾸 변방으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변방으로 가서 자선을 베풀라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사실 변두리로 가서 ‘경계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중심이나 주인이나 정착민이 아니라,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영적인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초기교회 신자들처럼 말이죠. 우리는 마지막까지 세상에 머리 둘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들었을 때에야 하느님의 지혜에 정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사실 너무 삶이 편안하고 안정되면 기도도 잘 안 됩니다. 고통스러울 때만 기도만 기도해요.

결국 ‘디아스포라의 자리’에 늘 들어가야 공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계인들은 좌익도 우익도 아닌 회색분자로 낙인찍힐 위험이 있어요. 그렇지만 어디에도 자기 집을 두지 않는 그런 자세에서만 지혜가 시작됩니다. 한군데를 완전히 자기 집으로 삼아 버리면서 하는 공부는 저질이고, 결국 이데올로기만 낳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놀라게 하실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매사에 조금도 흔들림 없고, 하늘 보고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형사고를 칠 사람들이지요. 신영복 선생님의 자문처럼 차라리 조금 조금씩 흔들릴 줄 아는 얼굴들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나침반의 바늘 끝이 가리키는 방향이 북쪽이지만, 그 바늘이 미동도 하지 않고 한 끝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건 고장 난 나침반이기에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정상적인 나침반 끝은 북쪽 언저리에서 조금씩 흔들립니다.

너무 많이 흔들려도 곤란하겠지만 조금도 안 흔들리는 사람들은 환자들입니다. 어느 집단과 자신을 동일화 시켜 버리면, 그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흔들림 없는 자신의 세계관으로 삼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흔들림 없는 원리주의자들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흔들리는 진폭 만큼 참된 지혜와도 소통하고,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하게 됩니다. 그러니 공부하는 사람은 흔들리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해요. 그게 늘 놀랄 준비를 하고 있는 자세와 같은 거겠죠.

 

이연학 신부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수도원 창설 소임을 받고 미얀마 삔우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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