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 헤네시, 가톨릭 아나키스트
상태바
아몬 헤네시, 가톨릭 아나키스트
  • 도로시 데이
  • 승인 2022.12.05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로시 데이의 빵과 물고기 21-아몬 헤네시2

나는 아몬에 관해서는 완전히 솔직하게 글을 쓰는 것이 자유롭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이에 대해 반대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면에서 그는 그렇다. 그래서 그는 내가 그에 대하여 쓴 글을 충분히 인정할 것이며, 그 반대는 아닐 것이다. 아몬 헤네시는 그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그를 반대하여 말하는 사람을 더 좋아 할 것이다. 그는 증오나 사랑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무관심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다.

아몬은 메시지를 지니고 있기에 주목받길 원했는데, 그는 자신을 예언자로 생각한다. 사명에 대한 그의 감각은 끊임없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말하게 하였는데, 그러나 그는 겸손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는 마치도 “분별력 있는 용기와 지성의 한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시오. 나는 이것을 했고 저것을 했소. 이것이 내가 위기를 대하는 방식이오. 지금, 만일 우리 모두가 함께 그것을 했다면, 우리는 광풍을 이겨냈을 것이며, 안전하게 통과했을 것이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피터 모린이 우리의 프랑스인 농부였듯이 아몬을 우리의 미국인 농부라고 부른다. 그는 펜실베니아주와 웨스트 버지니아주 경계 근처에 있는 오하이오 남부 쪽에 위치한 아주 작은 탄광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농부였으며 아버지는 마을의 읍장이었다. 어렸을 때 그는 집 농장에서 일하였다. 청년이 되었을 때, 그는 몇 마일밖에 안 떨어진 웨스트 버지니아주 카넬톤으로 광부들의 모임에 가기 위해 한 마리의 말이 끄는 이륜 마차에 여성 노동 지도자이며 선구자인 마더 죤즈를 태우고 갔다. 그 때가 아몬이 진보적인 사람들과 만남을 시작했던 때였다. 침례교 배경에도 불구하고, 아몬은 매우 일찍이 무신론자요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유진 텝스와 마더 죤즈가 그의 우상들이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신념들은 노동 조합과 정치적 행동에 있었다. 그는 양심적인 병역 거부자였으며 1차 세계 대전 중 아틀란타 교도소의 독방에 수감되었다. 그때 그에게는 오직 성서밖에 읽을 것이 없었으며 따라서 종교적인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톨스토이 작품 전부를 읽고 나서 평화주의와 무정부주의에 .관한 신념을 확고하게 하였다. 그 이후로 산상 수훈의 인도에 따라 그는 자발적 가난과 사랑을 실천하는 친절, 그리고 평화의 삶을 살고자 했다.

농장에서 자랐고 인내와 생명력을 지닌 아몬은 또한 타고난 세일즈맨이다. 그는 그것이 팜플렛이든 책이든 혹은 생각들이든지간에 팔기 위해 길거리로 나가는 것을 즐긴다. 이것이 위기를 만나는 그의 방식이다.

나는 밀워키의 큰 사회운동 집회에서 연설을 하였을 때 아몬을 처음으로 만났다. 집회가 열렸던 강당은 거의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만 하였다. 연단 위에 있는 여성은 오직 나 하나였다. 그 지역의 주교가 연설하도록 나를 초대하였을 때, 나는 그가 스페인 시민전쟁(그 전쟁은 바로 직전에 끝났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내가 연설한 것처럼 피터 모린이 항상 강조했던 자발적 가난과 손으로 하는 노동뿐만 아니라, 비폭력, 파업 그리고 사회변화를 효과 있게 하는 방법으로서의 납세 거부 등의 우리 원칙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박수 갈채 소리로 미루어 보건대, 나는 청중들이 내가 말한 내용의 함축적인 의미를 깨달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아몬은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연설을 마친 후 내가 커피를 마시러 친구의 집으로 가기 위해 차에 타려고 할 때, 나와 가톨릭 주변에서 저명한 한 뚱뚱한 클럽여성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는, 늘 그랬듯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로부터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비록 자신이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고 또한 가톨릭 교회가 가장 최악의 제도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감옥에 있을 때 톨스토이와 같은 방식의 그리스도인 이었다는 것을 내가 알아주었으면 했다.

그는 내가 무슨 감옥에 있었고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알고 싶어했으며 즉시 친하고 싶어했다. 내 복역 기록은 보잘 것 없었다. 즉 선거권 운동 기간 동안에 워싱턴 감옥에서 16일, 1차 대전 후 1년 동안 붉은 순례단 습격이 있는 동안 국제 노동자 기구 본부가 습격 당했을 때 시카고 감옥에서 긴 주말을 보낸 것이 다였다.

아몬은 그 날 밤 내내 우리에게 붙어 있었다. 나에게 알려 주었듯이, 그는 밀워키에 있는 가톨릭 일꾼 그룹들과 잘 알고 지냈다. 그는 가톨릭 일꾼 사람들이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 중 아무도 감옥에 간 적이 없었다(만일 당신이 가난한 사람이라면 감옥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공원 벤취, 지하철에서 잠을 자고 구걸을 하거나, 허가증 없이 길모퉁이에서 넥타이나 장난감을 팔 때, 심지어는 한밤중에 공원을 걸어다니면 당신은 부랑자로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몬은 우리 모두에게 한가지 문제를 제시하였다. 우리가 연방 정부에 소득세를 내지 않기 위하여 무슨 종류의 일을 할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더라도 원천 징수세와 담배, 술, 극장에 부과된 숨겨진 연방세금들이 있다.

아몬은 남서부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는 동안 처음으로 그 해결책을 알아냈다. 그는 휘닉스, 아리조나 등지에서 목화에 물을 주거나 땄으며, 농장 일도 하면서 일당을 받았다. 그는 초대 교회의 사막의 교부들처럼 야채와 빵을 먹고살았다. 그는 그가 번 돈을 두 딸에게 보냈는데 그래서 두 딸은 노스웨스턴 대학의 음악 학교 교육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는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였고 딸들은 졸업하였다. 그후 1952년에 그는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이어 뉴욕으로 와서 우리 일꾼진에 합류하였으며 우리 모두가 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머물 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그는 이곳에서도 연방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그는 <한 가톨릭 무정부주의자의 자서전>이란 책에서 그의 이야기를 말하였는데, 그 중 어떤 이야기들은 <가톨릭일꾼> 신문에 발표되었으며, 후에 평화주의자들의 또 다른 공동체를 돕고 있는 자유주의 출판사에서 책으로 출판되어 나왔다. 그는 길거리에서 그 책을 환대의 집에서 열리는 금요일 밤 모임에 참석하러 오는 방문자들에게 팔았으며 또한 강연 여행을 갈 때마다 팔았다. 이 책을 판 돈과 강연을 하고 받은 돈은 인쇄비와 여행비를 충당해 주었다.

내가 밀워키에서 그를 만났을 때에도 그는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2차 대전 바로 전에 징집 거부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자 그의 아내는 두 아이들과 함께 그를 떠나 서부로 갔다. 아몬은 그의 아내가 이런 진보적인 생활에 지쳤다고 말하였다. 그는 콜로라도까지 그녀를 따라 갔지만 그녀는 그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동안 일용 농장에서 일하였으며 내가 납세거부에 대한 기사를 <가톨릭일꾼> 신문에 쓴 것에 충격을 받고 더 남부로 가 아리조나에서 농민 노동자로 일하기로 결정하였다. “힘든 노동의 삶” 이란 글을 내게 보내기 시작한 때가 바로 그 때부터였다.

<빵과 물고기>는 미국 메리놀선교회 출판사인 올비스사에서 1997년에 발간된 Dorothy Day의 <Loaves and Fishes>(빵과 물고기)를 '참사람되어'에서 2000년 3월호에 번역한 것입니다. 도로시 데이가 이 책을 쓴 것은 1963년으로, 가톨릭일꾼공동체 운동이 시작된 지 30년만에 운동의 시작과 일꾼들의 삶을 간결하고도 따뜻하게 회상하고 있으며 운동의 입장과 신앙과의 통합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유튜브 강의: 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종이신문 <가톨릭일꾼>(무료) 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 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

Ta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