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 30km를 폐허로 만들 핵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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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30km를 폐허로 만들 핵발전소
  • 박병상
  • 승인 2022.10.2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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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상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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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는 압도적으로 미국에 많다. 1979년 펜실베이니아주 드리마일 핵발전소가 직원의 사소한 실수로 폭발한 이후 핵발전소를 추가하지 않아 언제 다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았다. 핵발전소를 소유한 자본은 설계수명을 연장하며 계속 운전하고 싶겠지만 쉽지 않다. 시민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폐쇄해야 하므로 미국의 핵발전소는 조금씩 줄어든다. 안전을 감시하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이익을 남길 수 없다 보니, 핵발전소를 소유하는 자본이 운전을 포기하는 사례가 이어진다.

미국 다음으로 구소련에 핵발전소가 많았다. 위계가 철저한 연구자 사회에서 안전은 부차적이었다.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던 체르노빌핵발전소는 1986년 폭발했다. 소련이 해체된 현재, 절대 권력 지배하의 러시아는 설비 개선과 신규 건설로 핵발전소 전기의 공급을 확대하려 하는데, 녹록하지 않은 것이다. 연구사회의 투명성이 없어 그들이 상투적으로 말하는 안전관리를 믿기 어렵고 시민사회의 저항도 만만하지 않다. 푸틴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침략은 구소련이 세운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되새기게 한다.

미국과 구소련의 핵무기 경쟁은 자국인의 안전마저 무시했다. 미국은 한정된 지역에 핵무기의 재료인 플루토늄 생산공장을 유지하면서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발생한 사고를 감추거나 무마했다. 구소련은 강압과 편향적 시혜로 제한된 지역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하면서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켰지만 철저하게 감췄다. 역사학자 케이트 브라운은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현장을 방문했고 두 국가의 무모한 핵무기 경쟁을 <플루토피아>에 폭로했다. 미국과 구소련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한 이유를 이해하게 하는 책이다.

2차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는 1952년 34대 대통령이 되어 “핵무기의 평화적 이용”을 선언하며 핵발전소 보급에 앞장섰다. 그는 2차대전의 동료인 프랑스 드골 대통령을 움직였고 현재 프랑스는 소비전력의 70%를 핵에 의존한다. 핵발전의 위험성을 의심한 지식인이 틀림없이 있었을 텐데,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독일에 협조한 지식인을 처형하는 모습에 몸서리쳤을지 모르는데, 전후에 지은 프랑스 핵발전소는 대부분 낡았다. 시민사회의 감시와 안전관리 부처의 철저한 감시로 이제까지 치명적 사고는 피했지만, 안심하지 못한다.

핵폭탄 세례를 받은 일본에 핵발전소가 생기면 핵발전소의 평화적 이용을 선언한 미국이 볼 때 근사한 사례로 선전할 수 있다. 미국은 일본에 정성을 다했고 50개 넘는 핵발전소를 열도 해안에 늘어놓을 수 있었는데, 결국 사고를 일으켰다. 2011년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에서 허망하게 폭발해 지금도 태평양에 치명적인 방사능을 하염없이 쏟아낸다. 뻔뻔하게도 일본은 오염수를 태평양에 버리겠다고 선언했고 미국 지지를 업고 현재 맹렬하게 공사를 진행한다. 국내외 손해배상은 물론이고 복구를 전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인데, 태평양 지진판은 안전하지 않다. 언제 다시 2022년 상황을 되돌릴지 모르므로 일본은 정지한 핵발전소의 재가동에 신중하다. 시민사회의 감시도 매서워졌다.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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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어떤가? 전쟁을 일으킨 국가도 아니고 핵무기 공격을 받은 적도 없지만, 국민 지지 없이 등장한 군사정권이 자의적 판단으로 지었고 현재 핵발전소 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가 되었다. 핵발전소 반경 30km 이내에 400만 넘는 인구가 살 정도다. 유례없는 무모함이다. 한 차례의 사고라도 국가 종말 위기로 이어지게 할 것이다. 사고 이후의 대책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후쿠시마 급의 사고가 발생한다면 주민을 서둘러 대피시켜 보호해야 하는데, 국제 기준인 반경 30km 이내의 보호구역을 20km로 완화했을 뿐 아니라 예산과 시설은 물론 홍보와 훈련도 사실상 없다. 비용 때문이라는데, 사고가 발생하면 감당할 수 없는 재산과 인명의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최근 현 정부 산하의 환경부는 핵발전소를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겠다고 발표했다. 핵 편향적일 뿐 아니라 안하무인인 정권에 노골적으로 아부했다. 환경단체가 보기에 참담할 정도로 비굴해진 환경부는 EU의 ’텍소노미‘를 참조했다고 본질을 흐렸지만, 어처구니없다. “산업계와 학계의 전문가, 시민사회 등으로 구성된 세부 협의체 관계부처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배경을 설명했지만, 환경단체를 비롯해 어떤 시민의 의견도 진정성 있게 청취하지 않았다. 유럽은 핵폐기물 처분장 마련을 택소노미의 전제로 내걸었지만 우리는 그 핵심을 슬그머니 빼버렸다. 스스로 힘없는 부서라고 자조하던 과거보다 비참하게 후퇴한 환경부는 후손이 누려야 할 환경을 철저하게 해치려 한다.

이제까지 세계 400여 핵발전소 중에 3개 국가에서 6번 폭발한 핵발전소의 사고 원인은 다양하다. 노무자의 단순한 실수, 안전을 무시한 연구 과욕, 그리고 자연재해였다. 자연재해는 점점 예측하기 어렵게 거세진다. 우크라이나 핵발전소는 언제까지 안전할까? 러시아와 사이가 악화할 수 있는 구소련 휘하 국가 안의 핵발전소는 내내 안전할까? 우리는 어떨까? 교통사고를 예측하는 하인리히 법칙은 1:29:300 법칙을 제시한다. 치명적 사고가 한번 발생할 때 치명적이지 않은 사고가 29차례, 그리고 사소한 사고가 300번 있다는 건데, 우리나라는 발각된 핵발전소 사고가 이제까지 600번 넘었다고 환경운동가는 근거를 들어 주장한다.

프랑스는 핵발전에서 얻는 전기의 비중을 50% 이내로 줄이려고 한다. 태양광이나 풍력에 치중하는 프랑스는 신규 핵발전소를 전혀 짓지 않는다. 프랑스에 사고가 없는 이유는 전문가의 철저한 안전관리와 더불어 시민사회의 감시를 손꼽는다. 사소한 사고라도 멈추도록 명령하는 안전기관이 허락하지 않으면 재가동할 수 없으므로 발전소는 관리에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어떤가? 핵발전소를 짓고 운전하는 기관의 관료는 인사이동으로 안전기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사고가 발각되면 별것 아니라는 말을 되뇐다.

2023년 설계수명 40년이 끝나는 고리원자력발전소(고리 핵발전소) 2호기를 비롯해 낡은 핵발전 설비의 수명연장을 저지하려는 시민운동단체가 부산에서 결성되었다. “원전으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선언하고 지난 9월 22일 출범한 ‘더30㎞포럼’이다.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려는 시민단체를 방해하는 우리 핵발전소는 결코 안전할 수 없다. 후쿠시마 정도의 사고가 발생하면 300만여 부산시민은 모든 직업과 재산을 한순간에 잃는다. 세계 조선 시장을 좌우하는 거대한 조선소는 다가가면 피폭될 고철로 뒤덮이고, 쌓아온 지역의 문화와 역사는 핵폐기물에 오염될 것이다. 그래서 부산시민이 ‘더30㎞포럼’으로 모였으리라.

사고는 예측이 어렵다. 해수면상승이 예측보다 빠른데, 매립한 해안을 차지한 핵발전소는 철두철미한 통제와 감시가 필수다. 핵발전소를 감시하는 단체가 없는 중국은 최근 최첨단 핵발전소를 계속 세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 핵발전소를 안전하다고 인정하지 못한다. 중국의 사고는 하루 만에 우리나라를 오염지대로 만들 텐데, 고리 핵발전소는 사고뭉치다. 흥청망청한 전기 소비를 위해 반경 30km 이내 주민과 미래세대를 위협하는 에너지정책은 철회되어야 마땅한데, 탈핵운동이 여전히 긴급한 세상에 살아야 한다.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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