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비가 필요한 인생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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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비가 필요한 인생길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1.03.0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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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의 너에게 가고싶다: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40

십수 년 만에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 하면 기억나는 것은 옥빛 바다와 빨치산들이 은거하던 좁고 길고 어두운 땅굴의 통로뿐이다. ‘제주’ 하면 언제나 4・3항쟁과 연결 짓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저 가족여행으로 이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딸 결이는 생애의 첫 비행기 탑승으로 흥분되어 있었고, 비행기가 지상을 뜨기 시작하자 창에 찰싹 달라붙어 그 무엇도 놓치지 않으려는 호기심으로 눈빛이 팽팽해졌다. 흐린 김해공항을 벗어난 비행기는 한동안 구름 속을 지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그곳은 구름 사이였고, 분간할 수 없는 앞길 때문에 다소 답답하였다.

그러나 구름 위에 올라서자마자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구름의 영역을 가운데 두고 하늘은 아래로 흐리고 위로 맑은 두 하늘로 나누어져 있었다. 적응이 빠른 우리는 침침한 아래 세상에서도 그런대로 견디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지의 구름’을 넘어서면 가볍게 날아오를 것 같은, 저절로 휘파람 소리가 나올 것 같은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이다. 순간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무지의 구름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쯤 밝은 눈빛 그대로 사물의 정체를,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응시할 수 있을까

우리의 영혼은 조금 더 가벼워져야 한다. 천사처럼 날아서 구름 밖 하늘을 기어이 엿보기 위하여 우리는 조금 더 짐을 덜어야 한다. 스스로 ‘떠돌이별’이라고 칭했던 임의진 목사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강진의 남녘예배당을 툭 털고 떠날 때, 그도 그런 생각을 하였을까? 몸 가볍게 여행자로 세상을 건너가기로 작심하는 순간, 우린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경주 집에 와보니, 임 목사가 얼마 전에 내놓은 〈기차여행〉이란 컴필레이션 음반이 배달되어 있었다. 도무지 헤아려 봐도 그에게 해준 것이 없는데, 책이며 음반이며 나오는 대로 꼬박꼬박 선사하는 그에게 미안하고 또한 고맙다.

음반 재킷에 이런 글이 씌어 있다.

“나는 지상에서 가질 수 있는 시간 중에 꽤 많은 시간을 기차에서 보냈다. 기차에서 잠이 들었고, 기차에서 책을 보았으며, 기차에서 예언자를 만났다. 그대를 그리워했다. 어디론가 우리는 떠나야 한다. 지금 나는 역 앞에 나와 있다. 우리에게 쥐어진 돈은 그저 여비일 뿐. 앞으로 그대는 재산이라 부르지 말고 여비라 불러야 한다. 기차표를 쥔 사람들 속에 그대와 내가 서 있다.”

이런 메모를 읽을 때 생각한다. 그대가 바로 내가 생애의 여행길에서 만난 또 하나의 예언자라고.

그래, 맞아. 우린 지금 지상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거야. 사람에 따라 그게 제법 긴 여행이 될 수도 있겠고 제 생각보다 짧아질 수도 있겠다. 느긋하지만 지루한 여행이 될 수도, 고단하고 쓸쓸한 여행일 수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나는 여행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하거나 정거장이 많은 여행일 수도 있겠지. 그 길에서 우린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때로는 긴 구간 동안 옆자리에 앉아 가거나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경우도 생기겠지. 많은 말을 나누거나 침묵 속에서 눈빛만 나누기도 하겠지. 그리고 정거장마다 보내는 사람은 아쉬움 속에서 손을 흔들고, 떠나는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돌리겠지.

그래, 맞아. 이제 내 사전에서 ‘재산’이란 단어를 삭제하자. 그리고 ‘여비’라 부르자. 세상을 건너는 인생길에서 몸을 나르는 데 필요한 여비를 벌고, 나머지는 그 길목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자. 나의 망막에 맺히는 사슴벌레와 양지꽃과 바다와 산과 사람들, 내 귀청을 울리는 바람소리와 그리운 음성을 기억하자.

무주 산골을 내려와 경주로 이사 온 뒤로 줄곧 내게 달라붙어 투정하던 ‘경제적 자립’이란 족쇄가 약간 느슨해지는 느낌이다. 그래, 맞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비(旅費)’니까, 너무 마음 졸이지 말라고 스스로 다독거린다. 임 목사의 예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참이다. 우리 너머에 계신 분은 수시로 때때로 사방에 당신의 말씀을 새겨 놓으셨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제주공항에서 우리를 맞이해 주신 분은 환갑을 훌쩍 넘기신 방순옥 선생님. 10여 년을 일본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사시다가 지난 봄에 귀국하셨다. 언니 되시는 분은 지금도 일본에서 노동사목을 하신다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데, <야곱의 우물>에서 내 글을 읽고 연락을 주시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일본에 계시면서 그동안 여러 통의 편지를 주셨고, 귀국하시곤 서울이며 경주에서 만났는데, 언제 한 번 제주에 놀러 오라고 당부를 주셔서 이참에 제주 방문을 계획하게 되었다.

제주시에 있는 아파트는 아늑하고 편안했다. 신앙인아카데미에서 실무를 맡았던 후배 강창헌이 제주 출신인데, 방 선생님은 그 누이들과 아주 잘 아는 사이였다. 일본에 계시는 바람에 소식이 끊어졌 던 옛 친구들이다. 강창헌의 누이 두 분도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수녀님이신데, 내가 중간에 끼어 소식을 알게 되고, 그날 오랜만에 방 선생님은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고 널 사랑한다, 편지하겠다며 오래 오래 이야기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할 줄 아는 능력, 그래서 마음으로 일치하고 싶은 갈망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다.

여장을 풀고서, 저녁식사도 할 겸 나선 길에 아내의 제안으로 ‘수목원 가는 길’이란 찻집에 들렀다. 아내는 앞마당에 나와서 옥수수를 먹고 계시는 갈옷 차림의 여인이 이 집 주인장임을 대번에 눈치챘다. 방금순 님. 이분이 <작은 것이 아름답다>란 잡지에 쓴 글을 얼마 전에 아내가 읽었다는 것이다. 밥도 파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잡지에서 뵈었다고 소개하자, 이내 밥 지을 참이었으니 밥 먹고 가라며 소매를 붙잡는다. 덕분에 밥이며 차를 대접받으며 한참이나 정담을 나누었다.

감귤로 만든 고추장에 된장국. 주인장은 약간 얼음이 서린 김치를 손으로 찢어 주며 밥에 얹어 먹으란다. 강원도 오백 고지 이상의 산간 마을에서나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밥상을 받았다. 찻집은 구석구석 주인의 손길이 닿고, 그래서 방금순 님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었다. 촌스러우면서 섬세한 아름다움이 배어 나왔다. 늦은 시각에 찻집을 나오며 함께 갔던 방 선생님과 아내는 주인장과 서로 부둥켜안고 아쉬움을 나누었다. 참 묘한 인연들이다. 책을 통해 만난 두 방 선생님. 혈연을 넘어서는, 여행길에서 여비를 치르지 않고도 마음만으로 맺어진 가족들이다.

다음날 빗방울을 느끼며 길을 나섰다. 결이는 여행이 시작된 뒤로 줄곧 말 타령을 했었다. 방 선생님 따님이 빌려준 승용차를 몰고 승마장으로 가는데, 빗방울이 많아지면서 결이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진다. 그런데 정작 승마장에 도착하고선 다행히 햇발이 돋아서 결이는 신나게 말을 타고 풀밭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결이는 소원 성취한 셈이다. 협재에서 옥빛 바다도 보았다. 옥빛 바다는 아내가 제주에서 가장 보고 싶어했던 것이다.

다음날엔 비가 몹시 내렸다. 그 와중에도 성산포와 여미지 식물원을 둘러보았다. 성산포는 이생진 시인이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삼백 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다 보지 못한다.”고 말했던 곳이다. ‘산산’이란 태풍이 올라온다더니 장대비가 퍼붓는 바람에 얼핏 보아도 장대한 그 바다 끝자락, 성산포의 허리춤에서 우린 산을 도로 내려왔다. 다시 한 번 오라고 다짐하듯이, 끄트머리 옷자락만 보여준 성산포다. 그래서 그리움이 더 사무치게 만든 성산포다. 욕망은 결단코 채워질 수 없음을 가르치는 성산포다. 더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운 사랑인 줄을 일러 주는 성산포다.

그 빗길을 편안하게 다녀오도록 해준 사람이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만난 젬마 씨다. ‘모든 예술과 영성의 천재들에게 감사하며’라고 적어놓은 ‘꿈꾸는 섬’에서 그녀를 만났다. 제주에서 처음 만난 젬마 씨가 흔쾌히 승용차를 내주었고, 그 덕분에 우린 가족여행을 누릴 수 있었다. 이걸 ‘환대의 기억’이라고 써야 옳을 것 같다.

인터넷 상에서 우연히 접속된 사람들을 바로 한 주일 전에 한꺼번에 만난 경험이 있다. 온라인 상의 짧은 교신과 담화를 통하여, 더 말하지 않아도 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의 어떤 깊은 부분을 건드릴 수 있었다. 얼굴을 대면해서도 인터넷 상에서 느꼈던 교감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며 은총이라 말해야겠다. 정중규, 리베라, 클라라, 수묵화, 그리고 젬마 씨.

인터넷이 갖는 위험과 문제를 넘어서 은총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혈연, 지연, 학연 등을 넘어서 상대방의 정신세계만으로 충분히 공감하는 관계.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밀어내지 않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마음이 흐를 수 있다는 것이 신통하다. 만사에는 장애와 축복이 공존하는 법이다. 다만 이를 식별할 눈을 가지는 것은 오롯이 자기 자신의 몫으로 남는다. 예언자는 모든 여행길에서 만날 수 있다. 다만 내가 그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하겠지. 내일은 주님의 천사가 어느 집 문턱을 밟고 서 있을지 궁금하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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