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탑 위의 100일, 몸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보았다
상태바
철탑 위의 100일, 몸으로 기도하는 사람을 보았다
  • 신배경 기자
  • 승인 2019.09.20 1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님과 이재용 님 공조고공농성 연대의 시간들

당신을 몰랐더라면 더욱 편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세상이지만

당신을 알게 됨으로 얻어진 자유 평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네

성가 마음을 드높이

나를 멈추어 서게 한 이름, 김용희

예수라는 이름이 불편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눈 감고 살아가고 싶지만 눈 감을 수 없고, 귀 막고 살아가고 싶지만 귀 막을 수 없고, 모른 척 살아가고 싶지만 모른 척 살아갈 수 없다. 나만 보며 살고 싶지만 “너를 보아야 할 때”가 있다. 생명의 이름이 들려올 때다. 지나치고 싶지만 멈추어 서서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때”가 있다. 생명의 눈빛이 어른거릴 때이다.

한때 예수를 몰랐더라면 세상살이가 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세상이 이야기하는 편함은 “너와 내가 함께” 누리는 편함을 뜻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편함을 위해 누군가는 착취당하고, 누군가는 해고당하는 세상이다. 거리에 내몰려 목숨을 건 단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이 곳곳에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들을 모른척하려는 마음이 ‘불편함’이고, 그들을 바라보려는 마음이 ‘편함’이라는 것을 나는 받아들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여름, 나를 멈추어 서게 한 이름이 있었다.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님. 강남역 사거리 철탑 위에 사람이 있다고 했다. 한 여름의 불볕과 장마를 맨 몸으로 맞고 55일간 단식을 하며, 세상을 향해 말을 건넨 사람이었다. 김용희 님의 여정을 들여다보니 한 개인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하기에는 받아들이기 힘겨운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관련 자료 안에 나열된 납치, 감금, 폭행, 아버지의 행방불명, 아내에게 일어난 성폭행 미수 등이 지금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이라니, 믿기 힘들었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었다, “삼성에 노조를 설립하려 했다는 이유로.” 철탑위의 외침이 나에게까지 들려온 이상 모른 척 살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른 척 할 수 없음이 나를 강남역으로 이끌었다.

 

이하 사진=신배경
이하 사진=신배경

태풍이 지나간 자리...철탑 위의 이불은 젖고

철탑이 바라다 보이는 강남역 8번 출구 앞에 농성장 천막이 있고, 저녁이면 거리강연회와 개신교 주최의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가톨릭 거리기도회는 매주 토요일 아침에 있는데, 지난 9월6일 태풍이 지나가던 날에도 어김없이 기도회가 열렸다. 강풍으로 여기저기 상흔을 남긴 ‘링링’이 서울을 통과하던 날이었다.

가로수가 쓰러지고, 전신주가 뽑혀나가고, 창문이 날아가 산산조각이 났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오후 1시쯤 서울을 지난다고 했지만, 기도회가 시작되는 오전 10시 부터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걱정된 마음들이 모여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불어오는 강풍에 농성 날짜를 적어놓은 나무판이 뒤로 넘어가고, 수녀님들의 베일이 위태로웠지만, 김용희 님이 올라있는 철탑을 향해 모두 한마음으로 바람을 맞으며 응원을 보냈다.

기도회가 끝나고서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철탑 위의 김용희 님도 걱정이 되었지만, 농성장 천막을 지키고 계실 이재용 님 또한 염려되었다. 두 분 모두 삼성해고노동자로 함께 공조농성 중이시다. 두 분이 함께 거리 농성을 하시다가 김용희 님이 철탑 위에 오른 뒤에 이재용 님은 천막을 지키며 모든 일을 돌보고 계신다.

태풍이 흔드는 철탑을 바라보는 이재용 님의 눈빛이 밟혀서 천막에 남았다. 괜찮다고 애써 웃으셨지만 철탑 위에서, 천막에서 태풍을 맨 몸으로 견디어야 할 두 사람을 두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길 건너 철탑 아래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마음을 안고 달려왔으리라.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이 모여 여럿이 되었다.

점점 거세어지는 바람. 농성장의 천막이 들썩였다. 모인 사람들은 각자 천막의 기둥을 하나씩 붙들고 이름만 귀여운 태풍 ‘링링’이 지나가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불어오는 태풍과 맞서 맨 손으로 기둥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 기둥을 붙잡고 비는 마음을 ‘몸기도’라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었다. 전비담 시인은 “바람을 맞으며 몸으로 시를 쓰는 시간.”이라고 표현하셨다. 누군가는 몸으로 기도하고, 누군가는 몸으로 시를 쓰고, 각자 다른 여정을 걷던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몸”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순간이었다.

3시쯤이면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고 했지만 6시가 넘어서야 잠잠해졌고, 8시가 되어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링링’은 지나갔고 천막은 지켜졌다. 맨 몸으로 바람과 맞선 시간. 무모해 보이기만 했던 맨 손으로 천막을 지켜낸 사람들. 그날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태풍을 맨 몸으로 견디어야 할 두 사람이 걱정되어 달려왔을 뿐이었다.

태풍은 지나갔지만 연이어지는 흐리고 비 오는 날씨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철탑위의 이불이 젖고, 김용희 님의 휴대폰이 빗물에 망가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세상과의 유일한 연결끈이 고장나버린 것이다. 다음 날 새로 휴대폰이 마련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용희 님을 돕고 있는 많은 손길이 떠올랐다.

어떤 마음들이 이 고난의 현장에 모이고 있는 것일까. 강남역 철탑 위에 사람이 있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 6월. 벌써 계절이 바뀌었다. 한 계절이 바뀌는 동안 오고 가는 사람들을 자연스레 바라보게 되었다. 태풍이 지나가던 날 거리기도회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고, 태풍 소식에 일부러 달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고난 속의 고난이 드리워지는 순간에 꽃피는 연대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길 위에서 추석상을 마련하는 사람들

어김없이 다가온 추석. 김천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 소식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지난 8월 28일 대법원 판결을 하루 앞두고 거리행진 끝에 대법원 앞에서 ‘만난 적 있는’ 인연들이다. 거리행진을 마치고 들어서는 우리를 향해 연대의 박수를 보내주었던, 그날 함께 어깨를 맞대었던 인연들. 8월29일 대법원 승소를 듣고 기뻐했던 일이 얼마 전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도로공사측은 “직접고용”을 거부하고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또 다시 집에 가지 못하고 있다. 명절이지만 고향에 가지 못하는, 집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추석 연휴에 이런저런 계획들이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무엇을 해도 즐거울 수 없을 듯 했고, 쉬어도 편치 않을 듯 했다. 추석 당일 아침상을 치우자마자 강남역으로 향했다.

강남역 사거리 철탑 아래에 추석 차례상이 차려졌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마포 일진 다이아몬드, 을지로 현대기아차 농성장, 강남역 철탑고공농성장을 위해 준비한 차례상이었다. 거리에서 추석을 보내는 이들을 “홀로” 버려두지 않겠다는 마음들이 모였다. 철탑 아래에 도착하니 곳곳의 현장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과 조현철 신부님(예수회), 박상훈 신부님(예수회)과 여러 수도회에서 오신 수녀님들이 함께 계셨다.

어렸을 때부터 가톨릭 울타리 안에서 지내왔기 때문일까? 어디에서든 신부님, 수녀님들을 보면 반갑지만, 거리와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는 반가움을 너머 울컥함을 느낀다. 함께 차례를 지내고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47일 단식으로 건강이 위태로운 김수억 님이 있는 을지로 현대기아차 농성장으로 가셨다. 그날 김수억 님은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다.

 

인간이 되는 길-함께 걷는 길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가고, 철탑이 보이는 곳 2번 출구 앞 천막에 작은 상이 차려졌다. 추석이라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아 지킴이를 자원했지만, 기우였다. 많은 분들이 오셨고, 오시는 분 마다 커다란 울림을 주고 가셨다. 홍성에서 직접 키운 닭을 잡아서 올라오신 류승아 님은 직접 김용희 님을 위한 영양식을 준비하셨다. 평소 2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서울에 4시간이 걸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태풍이 왔던 날에도 그랬다.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달려왔다. 추석 당일에도 그랬다.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아서 왔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농성 99일 째 되는 날 거리강연을 해주신 인문학작가 김경윤 선생님은 레비나스를 바탕으로 “내 문제가 아니지만 내 문제처럼 느끼는 것, 내가 책임질 것이 아니지만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것, 내가 힘들어 죽을 것 같지만 감수하겠다고 말하는 것, 그 길이 인간이 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철탑 아래에 모이는 이들은 ‘인간이 되는 길’을 향해 함께 걷기를 선택한 이들이 아닐런지.

여름이 가고, 태풍도 지나가고, 추석마저 지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어느새 김용희 님이 철탑위에 오른지 100일이다. 차가워진 철탑을 바라보며 그 누구보다도 속이 타들어가는 이재용 님의 천막 노숙도 100일이다. 추석 전에 내려오실 수 있기를 바랐지만 정부와 삼성은 묵묵부답이다. 사람의 역사에 이렇게 아픈 100일이 기록되어야 하겠는가. ‘개신교대책위원회’에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거리기도회 후에 ‘삼성본관 둘레행진’을 한다고 한다. 구약의 예리고성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다. 삼성은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고 ‘인간이 되는 길’을 선택해야하지 않을까. 추워지기 전에.

 

 

[강남역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이재용 공조고공농성 연대 문화제 일정]

 

장소: 강남역 7, 8번 출구 사이

 

920() 저녁 7

길거리 강연회-이도흠 교수(정의평화불교연대 대표)

 

921() 오전 10

가톨릭 삼성해고자와 함께하는 토요기도회

 

923() 저녁 630

강남역 7.8번 출구 선전전

 

924() 저녁 7

오프닝 이학산 목사

길거리 강연회-박혜영(노동건강연대)

저녁 730

길거리 기도회-새민족교회

 

925() 저녁 7

수요문화제

 

926() 저녁 730

길거리 기도회-옥바라지선교센터

 

927() 저녁 7

오프닝콘서트-방종운 콜트지회장

길거리 강연회-신지혜(전 노동당 대표. 현 기본소득당 경기도당 창당준비위원장)

 

928() 오전 10

가톨릭 삼성해고자와 함께하는 거리기도회

 

평일 기도회 후에는 삼성사옥 둘레행진이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가톨릭 거리기도회가 있습니다.

 

 

신배경 클라우디아
가톨릭일꾼 애니메이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