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아빠스 "전쟁범죄에 대해 일본과 독일은 왜 이렇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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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동 아빠스 "전쟁범죄에 대해 일본과 독일은 왜 이렇게 다른가?"
  • 박현동 아빠스
  • 승인 2019.08.1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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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14. 평화의 소녀상 앞 천주교 전국행동 기림의 날 미사 강론: 박현동 아빠스

한일간의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는 이 엄중한 시기에 우리는 이 자리에 모여 2015년에 한일간에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하여 이 미사를 봉헌합니다.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천주교 전국행동]은 2016년 1월 16일에 결성되었으며,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기타 여러 단체들이 뜻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2016년 당시에 마흔 네 분의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셨지만, 4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단지 스무 분의 할머니들이 생존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일생이 송두리째 유린되었지만,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사죄조차 받지 못한 할머니들을 이 미사 중에 특별히 기억하며, 정의에 입각한 해결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도록 합시다.

 

사진 출처=Advocacy Jesuit

저는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이 미사를 주례하고 있는 박현동 아빠스입니다. 일본군'위안부' 합의가 지극히 비상식적인 인식에 근거하여 체결되었다는데 동의하는 많은 분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셨는데, 많은 신부님, 수녀님들, 수사님들, 신자 여러분, 뜻을 같이 하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제가 사는 곳이 경북 "왜관"(倭館)인데, 이름 자체에서 일본의 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조선시대에 일본 사람들의 약탈 행위를 막기 위하여 합법적인 주거지와 통상의 장소를 지정하고 "왜관"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 꽤 많았었는데, 그게 이름으로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구미와 대구 사이 낙동강변의 "왜관"이라는 곳입니다. 이름 자체에서 일본과의 관련성을 드러내고 있고, 수도원 담장 바로 옆에는 왜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군 부대가 1960년 부터 주둔하고 있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성주 소성리에는 사드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일본이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모든 과거사 문제와 배상 문제가 종결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 한일 협정 역시 단지 한일간의 문제가 아니라 한-미-일 안보 협력을 위해 미국의 영향력하에서 이루어졌으며, 50년이 지나 맺어진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역시 격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 속에서 미국의 주선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과거사 봉합을 위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생존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의견 청취도 없이, 가해 당사국의 진정한 사죄의 뜻 표명도 없이 각 국가들이 목적하는 이익을 위해 어느날 갑자기, 갑자기 뭔소린가 싶을 그런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합의가 얼마나 비상식적인지는 [천주교 전국행동]의 발족문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변형 인용)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의 외교장관이 일본군‘위안부’문제에 관한 ‘합의’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고 이를 결코 일본 정부의 사죄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피해자들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피해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양국 정부의 노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한일 외교장관 ‘합의’는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의 요구를 전혀 담지 못한 것이다.

-일본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자행한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고서는 ‘법적 책임’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10억 엔을 출연한다고 하고서는 ‘배상금’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진상규명이나 역사교과서 기록, 교육, 추모사업 등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조치 약속도 일절 없다.

-그런데도 양국 정부는 이것을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확인하고,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고 선언했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세운 평화비(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가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렇게 한일 양국 정부는 일본군‘위안부’라는 반인도적인 범죄행위에 대해 피해자들을 배제한 채 졸속으로 ‘담합’했다.

일본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10억엔의 돈으로 앞으로 이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말하고, 이 합의로 UN이나 국제 사회에서 다시는 이 문제가 언급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지구촌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웠던 평화의 소녀상은 철거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미래 세대에게 알려줄 필요성도 없을 만큼 종결된 역사로 만들기 위하여 역사교과서를 수정하고, 국가는 잘못을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다시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나아가기 위하여 헌법을 수정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 10월 29일 일본 도쿄대학교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왜 독일 수도원들은 100년 전에 합법적으로 획득한 중요한 한국 문화재급 유물들을 수도원을 통해서 계속해서 반환하고 있는지 강의를 해 달라고 해서 도쿄대학교 한국학 연구소의 초청으로 그곳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태풍전야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많은 한국 관련 교수들이 다음날로 예정된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며 재판 결과에 대한 해설을 하기 위해서 다음날 모든 스케줄을 비우고 방송 섭외가 된 상태였습니다.

작년 10월 30일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많은 분들이 그 대법원 판결을 고대하며 지켜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의 분위기와 일본에서 느낀 분위기는 상당한 거리의 간극을 느끼게 했습니다. 결국 일본 기업들에 대해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배상 의무가 소멸된 것이 아니라는 판결로 안 그래도 아베 정권이 시작된 이래 위태로웠던 한일 관계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되기 시작했고, 경제와 안보에 대한 각종 조치들, 더 나아가 그 동안 진전되어 온 듯 했던 한일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가지게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데도 오랜 시간의 기획과 작업을 통해서 작품이 나오기 마련인데, 올 여름 극장가에는 봉오동 전투, 김복동, 주전장이라는 3종 세트의 일본 관련 영화가 스크린에 걸려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오늘 가톨릭 교회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다른 이를 대신 해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 놓은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을 기억합니다. 콜베 성인이 마지막을 보낸 그 지하의 아사 감방은 아직도 보존되어 있고 독일 나치 정권의 반인륜적인 전쟁 범죄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뮌헨에 있는 다카우 수용소 역시 그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위가 재발되지 않도록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들에게 교육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그 비극의 현장에 가르멜 봉쇄 수녀원이 있어서 수도자들이 침묵의 기도로써 그 희생자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대 독일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자주 전쟁과 인간성에 반한 범죄 행위에 대해 잘못을 사죄하고, 배상하고, 희생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거듭 거듭 용서를 청하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영화 '김복동'에서 평화나비 대학생들이 한일'위안부'합의의 부당성에 항의하며 격렬히 외치며 저항하는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경찰들에 끌려나오면서도 할머니들을 대신하여 목소리를 냅니다. 이러한 외침이 나비의 날개짓 처럼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공명을 일으킬 것입니다.

오늘은 1992년 1월 8일 '수요집회'가 처음 열린 이래 1,400회가 되는 날입니다. 1,000번째 수요집회가 열렸던 2011년 12월 14일 이 자리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진실과 용기, 올바른 양심과 역사 인식, 인권과 평화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증언하도록 합시다.

오늘 들은 복음의 말씀처럼,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오 18,19-20)


박현동 아빠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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