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스, 엠마오 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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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스, 엠마오 가는 길에서
  • 한상봉
  • 승인 2019.05.0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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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조연들-26
er Gang nach Emmaus / The Road to Emmaus - Robert Zünd, 1877

우리 부부는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까지 그분을 따라 걸었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저희들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지요. 저희는 카파르나움에서 무화과를 돌보던 가난한 부부입니다.

화려하게 꽃 피지 않아도 사람이 먹을 만한 열매를 맺던 무화과. 그분은 그런 분이었지요. 화려하게 옷을 지어 입지 않아도 번지르르한 말 한 마디 없이 그분은 깡말랐지만, 목구멍 너머로 불덩이를 삼킨 사람처럼 그분이 말을 할 때마다 제 가슴 속에도 불꽃이 이는 걸 느꼈습니다. 그분을 혼자 떠나보낼 수 없어, 우리도 간단한 행장으로 그분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목말을 태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그분은 뜻을 나누던 동무들과 서걱거리는 모래밭을 밟아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분의 발에서 향내가 난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분의 발끝이 땅을 스칠 뿐 맨발에도 상처입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다만 그분이 제 발로 걸어서 죽음의 땅으로 들어가셨다는 것뿐입니다.

예루살렘은 우리 겨레가 미워하는 것은 모조리 삼켜버린 아가리 같은 도시였지요. 로마의 샌들이 그 땅을 더럽히고, 사제들은 이미 거룩하지도 않았으며, 그나마 양심적인 사제들은 성전을 버리고 요르단 강 너머에 있는 광야로 나간지 오래되었습니다. 말이 많은 만큼 탈이많은 도시로 그분이 왜 가시려고 했는지 저는 아직도 모릅니다.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갈망만이 저를 그리로 데려갔던 것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우리 백성을 해방시키러 오신 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분이 하시는 일을 가까이 지켜보고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내 역시 그러한 갈망에서 제게 뒤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아내가 반대하였다면, 아이들과 가족을 아끼는 저는 어쩜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내가 말하더군요.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친척이 살고 있으니, 급하면 잠시 신세를 질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과연 저희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엠마오에 들러 친척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남은 길을 따라 그분이 머물던 도성에 도착했습니다.

그분이 카파르나움에 머물고 계셨을 때에 이따금 저희 집에 들러 밥을 먹곤 했으니, 그분의 곁을 따르던 이들도 저희를 알고 저희도 그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그분이 대사제의 사택으로 끌려간 뒤였는데, 그 제자들은 어느 누구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마지막을 지켜본 것은 저희처럼 갈릴래아에서 이곳까지 따라나섰던 여인들뿐이었지요.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분의 빈 무덤을 발견한 뒤로 제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는 것 같았습니다.

밤새 비바람이 몰아치고 나서 맞이한 아침 같습니다. 그분에 대한 기억을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아두며 아내와 저는 엠마오로 아이들을 되찾으러 가야 합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알 것도 같고 사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길에서 한 사내를 만났지요. 낯선 사내였지만 눈매가 참 착한 사람이었지요. 그 사람은 그분에 대하여, 지난 몇 주간 동안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도통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요, 그럴 수 있지요.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당장의 끼니를 위해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이들도 있을 테지요.

그 사내 역시 하루의 빵이 더 절실한 남루한 사람이었고, 연장보따리를 둘러멘 모습이 영락없이 일거리를 찾아 집 없이 떠도는 노무자였지요. 윤기 없이 창백한 얼굴에 손발에도 상처가 많았습니다. 손등은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처로 아파 보였습니다. 굳게 다문 입과 착한 눈매로 제말을 귀담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저는 제가 경험한 그 사건에 대해서 둑이 넘칠 정도로 이야기를 토해 내었고, 그 사내는 귀찮은 표정도 없이 그 말을 다 받아주었습니다. 할 만큼 말을 하고 나니 허기가 몰려오더군요. 아, 엠마오 친척 집이 코앞입니다. 문간에 벌써 아이들이 나와 있습니다. 도대체 저는 낯선 사내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일까요?

제 말을 곱게 들어준 게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기에 그 사내도 저희와 함께 이 밤을 묵어갈 수 있도록 집 주인에게 청했습니다. 아내가 사촌에게 부탁해서 빵을 내온 뒤에, 그 빵을 떼어 그 사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 사내는 잠시 우리 부부의 눈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윽고 빵을 먹기 시작했는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였습니다.

사나흘 굶은 사람처럼 음식을 받아 먹으며, 물 한 잔을 청하더니 그제서야 한숨 돌린 듯이 “고맙다.” 말합니다. 아, 그런데 왜 이번엔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일까요? 그분이 빵을 떼어주셨을 때, 그래요, 저도 이 사내처럼 마음이 울컥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래요 그래요, 이제 그분이 하시던 일을 제가 해야 하지요. 갑자기 마음이 급해집니다. 빨리 고향에 내려가 내 몫을 사람들에게 나누기 위해 뭔가 해야 할까 봅니다. 제 가슴 속 그분이 저를 이끌어갑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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