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운동, 철저하고 올곧게 뿌리에 닿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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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운동, 철저하고 올곧게 뿌리에 닿기
  • 도로시 데이
  • 승인 2018.11.05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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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holic Worker story-도로시 데이] 

피터 모린과 나 사이에는 언제나 건강한 긴장이 감돌았던 것 같다. 나는 단기적인 안목을 가진 편이었고 그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터 모린은 진실로 뿌리에 닿은 사람이었으며 항상 사물의 근원을 파악하려고 애썼고, 현재를 수정하기 위해서만 과거를 생각하고 그럼으로써 미래로 올곧게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다른 한편 나는, “하느님은 굽어진 선들을 갖고 직선으로 쓰신다.”는 격언을 사랑했고, 즉각적이며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타협들을 하면서 원칙들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피터 모린

<가톨릭일꾼> 신문의 창간호부터 우리는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정의와 모든 곳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즉각적인 지원을 강조했다. 우리는 이 목적들을 이루기 위하여 자크 마리탱이 말한 것처럼 “수단의 정화”를 강조하였고, 시민전쟁과 국가전쟁뿐만 아니라 계급전쟁과 인종전쟁에 있어서도 무력의 사용은 절대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천명했다. 하나의 전쟁은 더 잔인한 무기를 사용하는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우리가 항상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들 편에 서 왔다고 느끼며, 우리 자신이 가난하게 살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더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훨씬 덜 가져야 한다는 엄격한 의무를 수행해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 1930년대의 노동운동에서 파업이 일어날 때 가톨릭일꾼운동 종사자들이 거의 선두에 나섰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우리에게 급진주의는 형제들의 투쟁에 우리가 현존하고 참여하며 가능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런 문제들을 종교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하면 노동운동, 민권운동 혹은 미국의 모든 자유진보적 운동들에 진취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점도 밝힐 수밖에 없다.

인기 없는 선두에 서서

우리는 항상 인기 없는 선두 자리에 있었다고 피터 모린은 말하곤 했다.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의 피켓시위에 참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이 미치는 영향에도 불구하고 파업동안 그들을 돕기도 했다. 정의라는 보편적 주제에 관한 한 심각한 차이점들이 있고 연합전선이 불가능하다 해도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이 전쟁과 파시즘에 반대할 때 가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들이 ‘공산주의자’로 오해받아도 그렇게 했다. 

나에게 강의를 해달라고 초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의 무료급식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선활동을 주로 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파업이라는 비폭력적 무기를 통하여 정의를 성취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피터 모린에게 ‘개인의 책임’은 자발적 가난을 의미했다. 피터는 정부에 도움을 청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형제들이고, 우리는 형제들을 돌보는 사람들이며, 우리의 옷장에 걸려 있는 옷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속한다는 그리스도교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굶주린 이들을 먹이고, 집 없는 이들에게 있을 곳을 제공하며,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들을 방문하는 만큼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개인의 책임’이란 개념에는 선한 시민됨됨이, 정직함, 성실함, 공공심 등 소위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자주 말하는 모든 익숙한 덕목들이 포함되었다. 우리가 가진 우리 자신의 모든 자원들을 다 썼을 때에만 가능한 덕목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이웃들이 자신들의 형제들에게 정부보조를 신청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농장과 기업을 갖고 있는 부유한 가족이 자녀들의 대학 학비를 정부보조로 충당하고 더 가난한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할 일자리를 가로채는 것을 보았다. 외국원조를 하는 단체에서도 사무원들의 월급과 운영비를 제하면 정작 가난한 이들에게 갈 몫은 아주 조금밖에 없었다.

 

시위에 참여하는 도로시 데이

공공지원이라는 문제

이런 폐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역기관,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도움을 거부한 적이 결코 없었다. 우리는 뉴욕시립병원의 의사와 간호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가톨릭계 병원들도 자신들이 비용을 치르지 않고, 정부가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비용을 지불하도록 한다. 참으로 하느님의 섭리에 의존하는 병원이나 수녀회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데 있어 병원이나 요양원들의 도움을 주저 없이 받아들인다. 가족들이 환대의 집에 왔을 때, 방이 없으면 우리는 즉시 복지기관과 연결하여 그들에게 보조금을 타도록 주선한다. 이렇게 주선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보조금을 탈 때까지 그들의 여관비를 지불해야 하고 기타 필요한 일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샌프란치스코의 한 가족은 가난한 가족을 만났을 때 그들의 집 한 층을 이 부부와 세 아이들이 일 년 동안 살도록 내어주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그리스도인 가족운동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 안에서 이렇게 그리스도를 본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신앙을 요구하는가!

그리고 그런 도움을 개인에게서 받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떤 때 도움은 아주 큰 장애물이다. 어제 나는 한 젊은 엄마로부터 쓰라린 편지를 받았는데,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멸시하면서 제마음대로 재활시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차라리 비인격적인 주 정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낫겠다는 내용이었다. 도움을 주는 자는 쉽게 이런 오만에 빠질 수 있다. “내가 당신이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가난한 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빈센트 드 폴 성인이 한 수녀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빵을 준 사람들로부터 용서를 받을 만큼 그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매일 환대의 집에 와서 식사를 하고 옷을 찾아 입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또한 그 일밖에 다른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우리들을 보는 방문객들은 비난조로 말한다, “이것 말고 그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합니까?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도울 수 있도록 무슨 조처를 취합니까?”

 

먼저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이런 얘기들은 정말로 풀기 어려운 수많은 문제들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물론 노동자가 자신과 동료노동자들의 보다 나은 생활 조건을 위하여 조합에 가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런 목적을 위하여 수많은 노동자들이 영웅적인 희생을 감수하기도 했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순교자들의 역사이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정부가 모든 일을 하도록 요청하고 의존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많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조성’이라는 교종의 가르침과 원칙을 상기해야 한다.

즉 정부는 더 작은 기관들이 할 수 있는 역할들을 넘겨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한 집안에서 어머니 혼자 모든 것을 다 한다면, 어머니가 더 잘 할 수 있고 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혼자서 다 해버린다면, 자녀들의 성장을 망치게 되고, 그들의 독립심과 자유가 무너지게 되는 것과 같다. 

가톨릭일꾼운동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자발적 가난에 대한 강조이다. 또한 가톨릭일꾼 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개인의 책임이다. 이 두 가지 주제가 오늘날 가톨릭일꾼의 급진주의를 구성하는 요인들이며, 가난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가톨릭일꾼운동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 두 가지 주제를 고수해 왔다. 

이 기본적인 자세는 바로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가 말했던 ‘작은 길’로 이어진다. 신용조합운동, 협동조합운동은 물질적 질서를 새롭게 편성하는 ‘작은 길들’이다. 이 운동들은 기본적으로 작은 그룹의 사람들로 이루어지며 동전 같은 푼돈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어머니와 교사>에서 교종 요한 23세가 신용조합과 협동운동에 대한 제안을 내놓은 것을 보면 기쁘다.

필요한 일이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대규모의 정의회복운동과 같은 흥분되는 거대한 운동만을 생각한다면, 숲을 보느라고 나무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 모든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이며, 개인이 훈련되고 끈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전체적으로 그리는 그림이 푸르다 해도 결국 개인들이 실제적으로 그 그림을 위하여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개인주의적이며 공생주의적인 혁명의 출발점이다. 

나는 자주 바오로 사도나 사무엘 예언자의 기도를 생각한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당신이 이렇게 기도 한다면, 일이 다가올 것이고, 소명이 그곳에 있고, 방법이 따라올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문제와 상황의 뿌리에 닿게 되는 것이며 진정으로 급진적인 태도의 시작이 된다. 

출처: <Catholicworker>, 2005년 5월호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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