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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하느님에 대한 굶주림을 채워주는 음식전례적 영성이란 무엇인가?-4

"각 사람은 레이투르지아(leitourgia)의 본래 의미에서 보면, ‘전례’다 - 전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이 공개적으로 세상에 드러난 표현‘이다." (노먼 피텐거)

전례전통은 전례가 어떻게 ‘일하고’ 혹은 전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에 매달리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인 신자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키워주고, 유지하거나, 영향을 주고, 풍요롭게 하며 활기를 띠게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관계는 언제나 예측할 수 없다. 캐트린 노리스는 베네딕토식으로 매일 예배하려고 기를 쓰며 ‘자신의 방식’을 그 방식에 맞추려고 했을 때, 이런 말이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작업을 그만 두세요.

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말씀들에 머물고, 이 침묵 속에 잠시 동안 함께 머물자. 시편을 노래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잠깐 동안 살펴보자.’

전통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전례의 정기적인 기념이 개인의 영혼을 위한 영적인 휴식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례는 세상의 구원을 위한 교회의 사명에 중요한 자양분의 공급처이다. 전례는 단순히 ‘해결책’도, 어떤 지적인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도 아니며, 선물이다. 그리고 이 선물이 즐겁게 받아들여질 때에만, 인생의 영원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된다. 아니면 그 선물의 기쁨이 문제와 해결책 모두를 불필요한 것으로, 부적절한 것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Pentecost Icon, Kirillo-Belozersk Monastery (c.1497)

전례전통 안에 있는 가장 깊은 염원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로서 우리 모두가 ‘전례적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는 전례가 되는가? 확실히 그것은 어떤 예상된 완전을 향하여 도덕적으로 노력하고 애써서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전례의 정신에 의하여 형성되고 배워가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실존하게 되는 것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행위에 계속하여 노출됨으로써 전례가 되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그분의 행위는 그가 거룩한 행동에 참여함으로써 드러날 수 있는데, 전례는 결국 하느님의 거룩한 행동의 인간적인 표현기 때문이다."

전례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기념을 한다: 신약의 가장 깊은 뿌리로부터 가장 최근의 대표자들에 이르기까지, 전례전통은 전례가 그리스도인 삶의 목표라고 명료하게 주장하고 있다. 수많은 현대의 전례적 영성의 주자들은 포이어바흐의 유명한 격언, ‘당신은 당신이 먹는 것이 된다’를 인용한다. 이어 인간존재는 ‘하느님에 대한 굶주림’을 갖고 있으며 전례는 바로 그 굶주림을 채워주는 ‘음식’이고 우리의 존재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강조한다.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의 기능을 유지시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그 이상의 것”을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례를 기념한다. 1500여 년 전에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와

똑같은 느낌을 장엄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빵은 단 하나의 낟알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낟알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세례 받기에 앞서 우리한테서 악령이 쫓겨나가면 우리는 그런대로 가루로 갈아진다. 세례를 받으면 우리는 물기를 품게 된다. 성령의 불을 받을 때에 우리는 구워진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이 된다. 우리는 있는 존재 그대로 받는다."

전례전통의 진정한 힘은 단순히 그것을 대표하는 위대한 신학자들의 고결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세대의 보통 남자들, 여자들, 그리고 아이들이 인내와 헌신으로 그들의 영적 삶을 전례적인 용어로 매우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교회의 예배 행위에서 영적 힘과 쇄신의 대체할 수 없는 원천을 발견한 노고에 있다. 이들은 전례적 영성의 ‘숨은 목소리들’이고, 그들의 증언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영성의 다른 전통에서 그런 것처럼, 전례전통에도 자연적인 성쇠가 있다. 전례와 영성간의 연결은 전례가 순수하게 종교적인 목적이외의 다른 목적에 이용되었을 때 분별하기가 가장 어렵다.

우리가 현재 참여하고 있는 전례의 형태는 비록 오랜 역사를 거쳐 형성되어 온 것이지만,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전례전통의 영성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 즉 전례전통의 영성이 어떻게 현대의 영적 물음에 답하는 원천이 될 수 있을까? 수많은 세대의 사람들은 그들 삶의 의미에 대하여, 인류와 지구 행성의 미래에 대하여 묻고 있으며, 하느님과 그들의 관계를 위하여 전례전통의 영성이라는 이 특정한 상상, 에너지의 샘과 어떻게 접촉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답을 찾도록 초대받은 질문들이다.

[출처] <참사람되어, 2018년 6월호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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