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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오] 매춘부와 광대, 그리고 잔혹한 판사들비참한 인간과 연민의 하느님, 조르주 루오 -3

루오는 1903년부터 모로가 나라에 기증한 아틀리에에 만들어진 구스타브 모로 국립미술관(Musée national Gustave Moreau)의 관장으로 일하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해 갔다. 그는 모로보다 렘브란트를 더 존경했는데, 이후로는 도미에(Honoré Daumier)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폴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 폴 세잔(Paul Cézanne), 로트레크(Lautrec)를 탐구하면서 역동적인 선과 날카롭고 강렬한 붓 터치를 배웠다. 이 시기에 루오는 매춘부들과 광대, 판사를 주로 그렸는데,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듯이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형상으로 묘사해서 난폭하고 충격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로댕의 <영원한 봄>

 

 

 

 

 

 

<매춘부>

루오는 베르사유의 콜베르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사창가의 몸 파는 여인들을 보고서 꺼림칙하고 참혹한 존재의 현실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루오는 이젤 앞에서 매춘부를 그렸다. 서 있는 모습, 앉아 있는 모습, 옆에서 본 모습, 뚱뚱한 몸, 여윈 몸을 그렸다. 벌거벗은 몸에 까만 스타킹만 신은 여인, 거울 앞에서 머리모양을 매만지는 모습, 소파를 누워 손님을 기다리는 매춘부도 있었다.

그러나 루오는 매춘부들을 추하거나 음탕하게 그리지 않았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고, 축 늘어진 몸뚱이는 그들의 한 많은 가혹한 현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들의 세계는 부드럽고 화사하게 그릴 수 없었다. 로댕은 빛나는 순수함으로 가득 찬 그의 작품 <영원한 봄>에서 입맞춤으로 하나가 된 남녀를 아름답게 조각했다. 그러나 루오가 그린 매춘부에게 이런 황홀한 입맞춤은 없다. 루오는 사창가의 시적 정취를 믿지 않았다.

당시 유럽은 산업화로 농촌인구가 대도시로 몰리면서 엄청난 빈곤층을 형성했다. 이때 일자리에서 밀려난 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거리에 나와 몸을 팔 수 밖에 없었고, 가난과 성병 등 질병으로 시달렸다. 루오는 이 매춘부들에게서 내면의 고통을 보았다. 루오가 그린 매춘부들이 잔뜩 화가 난 표정인 것은 이유가 있었다. 루오는 이 여성들을 ‘관찰’하며 그림에 옮긴 것이 아니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분노를 거칠게 표현하였다. 미술사가 드리발은 이렇게 말했다. “가령 매춘부를 그리는 경우, 루오는 이 죄 많은 여인이 풍기는 전율할 향기에 취하는 것이 아니고 그녀의 죄에 울고 그녀와 더불어 괴로워하는 것이다.”

루오는 이들을 보고서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매춘부들은 세상이 무질서에 빠졌음을 보여 주는 전조이며 징표이다. 루오는 여자들의 고난, 즉 남자들의 욕정과 돈에 대한 탐욕에 희생된 존재를 그렸다. 그들은 시민사회에 짓밟힌 희생자였다. 그리고 ‘사람이 이렇게 짓밟히도록 용인한 그리스도교는 무엇인지’ 물었다. 루오의 그림에는 조롱도 풍자도 없다. 매춘부들의 얼굴은 슬프다. 그래서 발터 니그는 루오의 매춘부 그림을 ‘성화’(聖畵)라고 불렀다.

“루오의 창녀 그림은 종교예술에 속한다. 불쌍한 이 여인들이 지극히 가련한 모습으로 감상자의 눈앞에 있듯이, 인간은 항상 이와 똑같이 벌거벗은 몸으로 하느님 앞에 서 있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숨을 수 없다. 인간의 허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루오의 그림에 ‘현대의 성화’라는 이름을 붙여도 된다. 물론 이 그림들은 동방정교회의 밝은 성화들과 반대되는 어두운 성화다. 보통 성화와 반대되는 성화, 그럼에도 죄 많은 세상 한가운데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아직도 말하고 있는 성화다.”(발터 니그)

 

 

 

 

 

 

 

 

 

<광대와 재판관>

서커스를 하는 광대들도 마찬가지였다. 루오는 광대들의 짙은 화장 뒤에 감춰진 아픔과 슬픔을 보았고, 그들의 숨겨진 영혼을 작품에 담아내었다. 철저히 소외되고 가난한 광대들은 무대에 올라 어떻든 관객들을 웃겨야 했는데, 이들의 비극적인 처지가 삭막한 세상에서 몸부림치는 현대인을 닮았다고 루오는 생각했다. 루오가 어둡고 거칠게 표현한 광대들은 ‘상처 입은 거룩한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루오는 이렇게 말한다. “광대는 바로 나였고, 우리 모두였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광대인지도 모른다.”

루오는 줄곧 사회의 낮은 곳으로 내려갔으며, 거기서 거룩한 얼굴을 찾아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림을 그린 루오에게 어릿광대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했다. 어느 곳에도 뿌리 내리지 못하는 광대는 ‘하느님 때문에 어리석은 자’를 떠올리게 하였다. 그래서 어릿광대 그림은 변장한 루오 자신이기도 했다.

 

 

 

 

매춘부와 광대들이 루오가 공감하던 분신들이었다면, 재판관과 검사, 변호사 같은 인물들은 루오에게 추한 몰골의 대명사였다. 루오는 1908년에 <재판관들>을 그리고 같은 주제로 여러 작품을 그렸다. 루오에게 재판관은 정의의 거짓된 대변자였다.

루오는 법복을 입고 거만한 자세로 앉아 부리부리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재판관을 그렸다. 이들은 이빨로 정의를 깨부수기라도 할 것 같다. 루오에게 화려한 법복 뒤에 자신의 진실을 가리고 피고의 인생을 재단하는 판검사들이 역겨웠다. 남을 판단하는 그들의 내면은 과연 얼마나 공정하고 정의로운 지를 묻는다.

루오의 그림에서 이들은 하나같이 심통이 가득하고 인정머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들이다. 발터 니그는 <조르주 루오>에서, 루오의 재판관 그림은 ‘최후의 심판’을 떠오르게 한다고 말했다. 그때는 재판관도 피고인이며 공범자이고 공동 책임자로 하느님의 법정에 서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루오는 불의를 당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절규했다. 그들에게 위로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모든 억압을 보았다. 보라, 억압받는 이들의 눈물을!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그 억압자의 손에서 폭력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코헬 4,1)

[참고]
<영혼의 자유를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 이야기>, 조양익
<조르주 루오>, 발터 니그, 분도, 2012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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