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위하여 집을 요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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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위하여 집을 요구하다
  •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 승인 2017.11.1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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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예루살렘-2

나는 1972년 2월 7일 레이볼드 대주교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분을 만나러 가기 전에, 주님께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귀뜸해 주실 것을 요청하기 위하여, 모여서 기도했다. 우리 모임 중에 세 사람이 <역대기>에서 같은 구절을 폈는데, 우리에게 집이 주어질 것이며 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서 준비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뚜렷하지는 않은 구절이었다. 마지막 줄은, “지도자들과 온 백성이 네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역대기 상 28,20-21) 였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응답을 주셨다고 확신을 했고, 그 후로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나는 주교님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주교님을 만나러 갔을 때 나는 그분에게 모든 이야기를 다 말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내가 한 일, 일어난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을 그분에게 말했다. 나는 종교 교육, 기도, 성서, 전례, 설교, 그리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 말했다. 그분은 내 말을 듣기가 피곤했을 것이다.

끝으로 나는 “잘난체 하는 것 같이 들릴지 모르나 주교님이 우리에게 집을 하나 구해 주시면 주님께서 그곳을 통해 주교님의 3개 학교의 학생 수를 다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그 학교들의 100분의 1의 비용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저는 돈이 없습니다. 프란시스코회에서는 저에게 돈을 하나도 주지 않습니다. 교구도 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믿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하심을 압니다”라고 말했다.

레이볼드 대 주교님은 “신부님, 나는 신부님을 믿습니다”라고 단순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우리에게 집을 구해주려고 신시내티 주위를 손수 운전하고 다녔다.

 

사진출처=pixabay.com

“나는 십자가를 믿는다!”

주교님과 만난 후 몇 주 동안 가능성 있던 것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다 무산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10대 아이들이 주위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집을 부숴 버릴까봐 두려워하였다. 어떤 집은 고치는데 돈이 너무 많이 필요했고, 나는 돈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집을 주실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계속 기도하였다.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흘렀으나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후 5월 15일에 나는 어느 저택에 대해서 들었다. 그 집은 크로스리 가문의 소유인데, 크로스리 라디오를 만든 사람이 지은 것이었다. 우리 몇 사람이 그 집을 보러갔고 우리는 ‘바로 그 집’이라고 느꼈다. 그 집은 피정의 집으로 적합하였고, 신시내티의 아름다운 지역인, 수풀이 우거진 조그마한 지역에 있었다. 우리는 창문 안을 들여다보면서 조그맣게 소근거렸다. 충분히 보았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문 앞에 잠시서서 기도를 드렸다. 문 위쪽에 라틴어로 새겨진 크로스리 가문의 문장을 보았다. “나는 십자가를 믿는다!”.

나는 파웰 크로스리가 가족을 위해서 왜 그 문구를 선택했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우리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네, 주님, 우리도 십자가를 믿습니다! 우리는 이 집이 당신의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가 그분의 일을 하기 위해서 그 집을 원하신다고 확신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집은 근처에 있는 가톨릭교 병원의 소유였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행정 관리인을 만나러 갔다. 나는 주교님을 만나러 갔을 때처럼 대담하고 솔직하게 그에게 말했다: “나는 저 집을 갖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원하면 내가 환자를 방문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행정 관리인은 동정적이기는 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저, 신부님”, 그가 말했다. “신부님이 그것을 쓰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집은 아주 비싼 옛 튜더식 저택입니다. 신부님의 청소년 학생들이 벽에다 그들의 이름을 새길지도 모르고 집의 가치를 떨어뜨릴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부님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6월 초에 저택을 누가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위원회가 열립니다. 다른 단체에서도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이시니 드리는 말씀인데 그들이 그 집을 얻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에게 시간을 내주어서 고맙다고 했으나 “전화하지 마십시오. 제가 연락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느낌을 받고 떠났다.

나는 학생들에게 상황을 말했고, 우리는 기도했으며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청원했다. 그러자 6월 1일에 레이볼드 대주교님이 별안간 뜻밖에 돌아가셨다. 아이들은 대주교님이 우리들 뒤에 계시지만 많은 사제들이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사기가 떨어졌다. 교회에서 지원을 과연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누가 새 주교님이 될지 몰랐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사람이 많이 있었으나 그들 중 교회 고위급들은 많지 않았다.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했던 한 수녀님이 우리를 위해서 밤새도록 기도했다. 다음날 수녀님은 나를 불러서 말했다, “신부님, 대주교님이 주님과 함께 계시므로 그 집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수녀님이 그저 수녀답게 자상하게 격려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나는 정말 수녀님을 믿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중간적 입장이었다. 만일 일이 잘 된다면 주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알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을 때는 너무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집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었다.

6월 7일에 레이볼드 대 주교님의 장례미사에 갔다. 집에 돌아 왔을 때 그 집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고 쓰여 있는 전언이 와 있었다.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희망대로 응답되었다. 그 집을 병원이 다른 용도를 위해서 필요로 할 때까지 완전히 무상으로 우리에게 빌려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전기 사용료 등 모든 관리비도 병원측이 부담하고, 필요한 가구들도 제공하겠다고 했다. 예언이 이루어졌다!

그분께서 우리의 응석을 받아주셨다

그 집에서 나는 내 삶에서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기쁨과 공동체 경험을 했다. 우리는 크로스리가 주인의 침실을 성당으로 만들고 “위쪽 방”이라고 불렀다. 이 방 하나에서 만에서도 나는 내 사제생활 전체를 통해 볼 수 있으리라고 바랬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랑과 능력의 역사를 보았다. 매일 밤, 젊은이들이 와서 우리는 밤늦게까지 기도를 하곤 했다. 자주 우리의 기도는 자연스럽게 몇 시간씩 걸리는 미사로 이어졌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공동체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그리고 어떻게 공동체가 되는지를 너무도 많은 방법으로 가르치고 계셨다.

그 당시 우리는 말하자면, 성령에 대해서는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어떤 장소를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그분께서 우리의 응석을 받아주셨다. 모든 것이 문자그대로 우리에게 넘겨졌다. 우리는 하느님의 응석받이었으나 그런 것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몇 달간 그분의 빛나는 미소 안에서 살았다. 매주 마다 많은 축복과 놀라움으로 채워져서 몇 달이 마치 몇 년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리고나서 1월 29일에 나는 “위쪽 방”에서 혼자 기도를 하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서 햇살이 들어와 양탄자를 비추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 한 순간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리챠드, 너는 옛날과 같이 나를 믿지 않는구나. 너는 아이들과 그들의 문제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구나. 너는 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고 있구나. 자, 이제 내가 너에게 이곳을 주었는데 나는 그것을 거두어 가려고 한다. 이것은 너의 일이 아니다; 나는 다만 너를 사용할 뿐이다. 그러니 침착해져라. 그리고 내 안에서 다시 쉬는 것을 배워라”.

기도 중에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여러분은 주님께서 정말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인지 확신을 갖지 못한다. 비록 그 말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여러분 자신의 생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주님, 당신이 저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한다면 성서에서 표징을 보여주십시오”. 자, 그런 부탁이 매우 비(非) 신학적인 일이라는 것을 나는 자인한다. 성령 운동가들은 가끔 성서를 그저 아무데나 펼쳐 주님께서 그 구절을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란다. 내가 바보가 아니라면 모든 상황에서 이렇게 하라고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나는 내 경험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카베오 하권을 폈고 그때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성소를 유지하기 위해서 백성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서 성소를 택하셨던 것이다."(마카베오 하 5,19)

그 당시 나는 그것이 어떤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혹은 내가 성서로 놀음을 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나는 책을 덮고 내 방으로 갔다. 5분도 안되었을 때 전화가 왔다. 병원 행정인의 비서였고 그녀는 화요일 아침 11시에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단순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 때 뵙겠습니다”.

전화를 내려놓으면서 나는 주님의 완전한 현존하심을 감지했다. 나는 병원 측이 우리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말하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너무나 큰 기쁨과 평화를 느꼈다. 나는 아이들이 오래된 저택의 벽돌 하나 하나를 얼마나 사랑했으며 우리 모두에게 이 집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므로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서 다른 준비를 하시지 않은 채 우리를 이 장소 밖으로 이끌어내지 않으실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주님의 이름으로 찬미! 우리는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

다음 며칠동안 나는 주님의 현존을 너무도 강하게 느껴서 미래에 대해서 걱정할 수가 없었다. 행정인을 만나러 가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집을 비우라고 나를 여기에 오라고 한 것을 압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게 오셨던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주님의 권능을 믿었고 우리에게 새로운 장소를 찾게 해주실 방법에 대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한가지, 우리 프란시스코회는 간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부활축일까지만 사용할 수 있도록 당신께 간청합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매 주말에 피정 계획이 있습니다”. 행정인은 병원측에서 그때까지는 기다릴 수 있지만 더 이상은 안된다고 했다.

그날 밤 아이들이 집에 모였을 때 나는 말했다,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다. 그 말이 끝나면 너희들 모두 ‘주님께 찬미’라고 말해주겠다고 약속을 해라!”. 아이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주님께서 주시고 주님께서 가져가신다. 주님의 이름으로 찬미! 우리는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 아이들은 얼굴을 떨구었으나, “주님을 찬미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우리는 같이 기도하기 시작했고 신앙의 여정에 대해서 우리들이 말했던 것을 서로서로에게 상기시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노예살이에서 벗어날 때 사람들이 종종 그 여정을 포기하고 머물기를 원했으나 모세는 그들에게 주님을 믿고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땅을 믿으라고 촉구했음을 기억했다. 신앙의 여정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늘 새로운 땅으로 부르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더 주고 싶어하시고 게다가 그것을 우리에게 거저 주고 싶어하신다.

그 후에, 곧 나는 베르나딘 대 주교님-신시내티에 새로 임명된-을 만나러 갔다. 나는 주교님에게 주님께서 우리 삶에 하신 일들을 말했고, 그분은 레이볼드 대주교님이 우리에게 집을 구해 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 우리가 집을 비워 주어야 하는 만기일 바로 전에 주교님으로부터 새 집이 마련되었다는 극적인 전화가 올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그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성토요일에 저택에서 마지막 전례를 하였다. 아이들이 집을 가득 메웠다. 전례에 온 사람들이 다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나에게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고 계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였다.

나는 그날 밤, 주님께서 나에게 특별한 복음을 주시려고 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날은 통상의 전례책을 사용하지 않았다. 복음을 읽을 시간이 되자 나는 내 옆에 서있던 여학생의 성서를 집어들고 그것을 펼쳤다. 책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내 눈에 처음 띈 구절을 읽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요한 14,1-3a)

우리는 너무 감격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당신이 마련하신 새로운 장소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모두 그 저택을 좋아했지만 거기에 사는 것이 편하지 않았는데 프란시스코회 소속 사제인 내게는 더 했다. 아이들은 그 사실 때문에 나를 놀리고는 했다. 그 아이들 중에는 이미, 우리가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살아야 한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있었다.

부활 대축일에 나는 중심이 되는 사람들과 새벽 미사를 같이 드렸다. 그러나 우리는 새 집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가서 공동체에 속했던 것들을 다 쌓아놓았다. 젊은이들은 기다렸고, 믿었으며 기도했다. 그리고 나서 한달 후에 베나르딘 대주교님이 나를 불러 교구에서 윈튼 플레이스에 있는 학교를 닫으려고 하는데, 우리가 원한다면 그 곳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즉시 그 곳으로 가서 둘러보았다. 학교는 숲이 있는 지역에 있지도 않았고, 저택도 아니었다. 학교 옆 수도원도 꽤 낡았고 그 지역에 있는 많은 집들이 낡았으며, 판자로 둘러쳐져 있었다. 학교도 유리창이 42개나 깨져있었다. 우리가 이곳을 피정과 전례를 위한 장소로 고치려면 상당히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일년동안, 주님께서는 당신이 우리와 함께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수도원도 125년이나 되어 손이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는 저택에서 결코 할 수 없었던 수리 등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우리자신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도시의 가난한 곳으로 이끄시어 그곳에서 그분의 사랑의 표징이 되라고 인도하심을 알았다. 그래서 주교님께 말했다. “네, 그렇게 된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원출처] <성서의 위대한 주제들-신약>, 리차드 로어 & 죠셉 마르토스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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