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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시는 예수

하느님의 아드님이요, 삼위일체의 성자이신 그리스도는 경청하고 받아들이며 배우는 존재로서 이 지상의 삶을 사셨다. 예수님은 완전한 경청자이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요한 5,19.20) 또한 인간의 본성을 지닌 아드님은 당신에게 가르칠 것이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배웠다.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이 부모에게서 배웠다.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예수님의 특징은 주위의 세계로부터 배우는 능력이었다. 가장 일상적인 일들로부터 배울 것을 끄집어내는 능력이다. 씨뿌리기, 자연의 리듬, 권력자들의 교활한 정치는 예수님에게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의 역동성을 이해하도록 해 주었다. 과부가 헌금함에 동전을 넣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양적인 차원의 판단을 초월하여 과부의 봉헌이 지닌 본질적인 속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타인들은 예수님을 그분 자신과 사명을 진실하게 인식하도록 이끌었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도 그러한 교사였다. 예수님은 처음에 그분 사명의 범위를 좁게 생각했다. 이교도 지역에 당신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이 애처롭게 호소하며 그분의 고립을 뚫고 접근할 때도, 그분의 권능을 신뢰하고 겸손하게 매달려도, 예수님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분은 흩어진 이방인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을 잘못된 길로부터 다시 모아 들이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인은 그런 예수님의 태도에 당황하지 않는다. 여인은 현재 남는 부분에 관하여 지적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분의 사명을 열렬히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남는 것이 있다는 지적이다.

여인의 적극적인 말대꾸에 예수님은 감탄하고 그 대담함을 인정한다. 여인은 예수님께 거울을 들이댄 것이고, 그러자 예수님은 처음으로 그분 자신과 사명을 더 분명하게 보게 된다. 여인은 예수님에게서 이스라엘 백성만의 구원자 그 이상을 인식한다. 그 여인으로부터 예수님은 기쁜 소식의 보편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과 만나면서, 예수님은 그분의 사명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적 경계를 넘어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하여 여인은 예수님의 교사가 되었다.

 

Lead, Kindly Light - art by Simon Dewey

이런 배움은 단순히 새로운 사실들을 배웠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전에는 배제시킨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새로운 자세들을 습득하게 된 배움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사건은 예수님에게 회심의 순간이다. 개념적인 지평을 바꾸고, 기존의 개념에 따라 확실하게 행동했던 것을 변화시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은 예수님에게 볼 수 있도록 거울을 앞에 대주었고, 그 거울 속에서 예수님은 그분 자신과 사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체험으로부터 점차적으로 지혜를 정제하는 모습은 매우 매력적이다. 마치도 수많은 작은 사람들의 선함이 그분 안에서 재현되고 요약되는 것 같다. 그분의 어머니처럼, 깊이 생각하고 마음속에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존재 같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에 이끌렸고, 그분의 가르침은 다른 많은 사람들의 가르침처럼 공허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감동을 주고 생명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권위”가 그분 말씀에 있었다(마르 1,27).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혜에서 친근감을 느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분의 지혜가 그들과 같은 사람들의 경험에 관하여 대화하면서 나온 지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출처] <참사람되어> 2015년 3월호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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