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의 깊은 강을 건너간 사람들—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조광호 신부의 동검도 이야기
1.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성인의 얼굴
우리는 성인을 공경하면서도 그분들을 우리 삶에서 멀찍이 밀어 두곤 합니다. 처음부터 믿음이 굳건했고, 욕망에 흔들리지 않았으며,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을 몰랐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렇게 머리 위에 후광을 그려 넣는 사이, 그 아래에서 살아 숨 쉬던 한 사람의 얼굴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그러나 성인은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광신자가 아닙니다. 깊은 믿음에도 물음이 있었고, 용기에도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응답 없는 기도, 자신의 부족함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그분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걸어간 길은 저마다 달랐지만, 누구도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서 하느님을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분들을 거룩하게 한 것은 연약한 자신까지 하느님 앞에 내어놓는 신뢰였습니다. 넘어졌을 때는 잘못을 감추기보다 자비를 청했고, 다시 일어섰을 때는 자신을 일으켜 주신 사랑을 따라 살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실패가 생애의 마지막 말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법을 평생 배운 사람입니다. 그 배움에는 옳다고 믿어 온 것을 내려놓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오래 붙들어 온 삶의 방식이 오히려 사랑을 가로막고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강 건너편에 이른 모습만 바라보다가, 그분들이 처음 물속에 발을 들여놓던 순간의 떨림을 잊습니다. 성인의 생애를 가까이 읽는다는 것은 바로 그 떨림을 되찾는 일입니다. 그때 그분들의 거룩함은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높이가 아니라, 우리도 응답해야 할 부르심으로 다가옵니다.
2. 하느님의 사랑이 한 사람의 생애가 될 때
거룩함의 근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먼저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성인의 생애는 그 은총을 받아들이며 변화되어 간 한 인간의 역사입니다. 은총은 한 사람의 성격과 기억, 상처와 갈망을 지나며 그의 말과 선택과 관계 안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얻습니다.
아우구스티노에게는 오래도록 놓지 못한 욕망과 내적 갈등이 있었고, 프란치스코에게는 부와 명예를 향한 꿈이 있었습니다. 회심은 그들의 삶을 움직이던 욕망의 방향을 온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신을 높이고 채우는 데 쏟던 열정이 하느님을 찾고 이웃을 돌보는 사랑으로 온전히 옮겨 간 것입니다.
회심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여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멈추면 후회에 갇히기 쉽고, 용서를 말하면서 삶을 바꾸지 않으면 자기변호에 머물기 쉽습니다. 참된 회심은 자비에 의지하여,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책임을 지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그렇습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없앨 수 없습니다. 내가 잊었다고 해서 다른 이의 상처까지 아물지는 않습니다. 용서받은 사람에게는 바로잡을 수 있는 잘못을 바로잡고, 상처 준 이에게 용서를 청하며, 돌려줄 것을 돌려줄 책임이 생깁니다. 상대가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 아픔과 시간을 존중해야 합니다.
복음서의 자캐오가 그 변화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을 맞아들인 기쁨은 재산을 나누고 부당하게 빼앗은 것을 갚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느님의 방문을 받아들인 집에서는 재물의 쓰임과 이웃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회심은 마음속 감동을 넘어 삶의 질서를 바꿉니다.
은총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분노와 욕망으로 뒤엉킨 탁류를 맑혀 갑니다. 그러나 얼음이 녹으면 그 아래 잠겨 있던 것들도 드러납니다. 인정하지 않았던 이기심, 외면했던 타인의 눈물, 신앙의 말로 가려 두었던 교만과 마주하게 됩니다.
회심의 아픔은 더는 진실을 피할 수 없게 되는 데서 오기도 합니다. 바로 그 깊은 곳에서 은총과 자유가 만납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는 응답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응답이지만, 그 응답할 힘조차 오로지 은총 안에서 얻습니다. 그러기에 은총에 응답하며 살아갈수록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기보다, 자신을 버리지 않으신 하느님의 자비에 더욱 더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교회는 잘못 살아온 사람에게도 회개와 용서를 통해 새롭게 살아갈 길이 열려 있다고 끊임없이 선포해 왔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과거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를 단념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회심의 희망입니다. 과거의 무게 속에서도 오늘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희망입니다.
3. 교회는 어떻게 성인을 알아보는가
교회가 한 사람을 성인으로 선포하는 일을 '시성'이라고 합니다. 이는 거룩함을 새로 부여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가 하느님의 영광 안에 있음을 공적으로 선언하고 온 교회가 공경하며 본받을 분으로 제시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그의 생애와 글, 함께 살았던 이들의 증언을 신중히 살핍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삶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 시련 속에서도 복음에 충실했는지를 식별합니다. 시복과 시성의 정해진 절차에 따라, 요구되는 전구의 기적도 심사합니다. 그러나 거룩함을 기적이나 특별한 체험만으로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깊은 기도만큼이나 함께 사는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약한 이를 짓누르지는 않았는지, 명예를 지키려고 진실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잘못했을 때 돌이킬 줄 알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거룩함은 사랑의 진실함을 삶으로 드러냅니다. 또한 강렬한 회심의 순간만으로 한 생애가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감격이 잦아든 뒤에도, 기도에 위로가 없을 때에도, 선의를 오해받을 때에도 다시 사랑을 선택해야 합니다.
성인의 생애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확인된 충실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름을 기록한 분들만 하느님 곁에 계신 것은 아닙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생애를 증언할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이 너무나 많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돌봄의 자리를 지켰던 이들, 가난 속에서도 남의 몫을 빼앗지 않았던 이들, 자신이 받은 상처를 다른 이에게 되돌려 주지 않으려 애썼던 이들입니다.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졌다고 해서 하느님께도 잊힌 것은 아닙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에 우리는 이름을 아는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만이 아시는 수많은 이의 거룩함을 기립니다. 그리고 세상을 지탱해 온 사랑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이름 없이 바쳐졌는지를 깊이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4. 죽음도 끊지 못하는 친교
성인을 기억하는 일은 훌륭한 생애를 회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교회는 성인들이 지난 시대의 모범으로만 남아 계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도 우리와 친교를 이루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세상을 떠나 정화되고 있는 이들, 하느님의 영광 안에 있는 이들은 모두 한 분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같은 성령 안에서 기도와 사랑을 나누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거룩한 선물에 함께 참여합니다. '성인의 통공'은 이 친교가 죽음으로도 끊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그 중심에는 죽음을 겪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서로를 기억하는 우리의 힘보다, 우리를 당신 안에 살게 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더 깊습니다. 성인들에게 전구를 청하는 것은 먼저 길을 걸어간 이들에게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는 일이며, 그분들을 향한 공경은 결국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끕니다. 이 믿음 안에서 우리는 거룩함을 혼자 이루어 내야 한다는 고립에서 벗어납니다.
믿음이 메마를 때는 다른 이의 기도에 기대고, 누군가 지쳐 있을 때는 우리의 기도로 그를 받쳐 줍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성인들의 전구를 청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총은 한 사람의 삶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성인들의 생애는 오늘 우리의 선택에도 말을 건넵니다. 더 많이 가져야 안심할 수 있다고 여길 때, 가난한 이들과 나누며 산 삶이 우리의 불안을 비춥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진실해야 하느냐고 물을 때, 양심을 지키려고 안락을 내려놓은 삶이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시대와 책임은 달라도 사랑의 부르심은 이어집니다. 성인의 전구를 청한 뒤 외로운 이를 찾아가고, 그분들의 삶을 묵상한 뒤 미루어 둔 화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늘의 친교를 믿는 고백은 이 땅의 관계를 바꾸어 갑니다.
5.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는가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망설입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서도 남을 미워하고, 용서를 말하면서도 오래된 분노를 되새깁니다. 이만큼 살아왔는데도 같은 자리에서 또 넘어지는 자신을 보면, 거룩함이라는 말이 버겁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거룩함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부르심입니다.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단언할 수 없어도, 오늘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분께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부르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심한 사람도 다시 넘어집니다. 몸에 밴 습관은 결심보다 끈질기고, 상처는 뜻대로 아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돌아선 방향까지 무의미해지지는 않습니다. 회심은 한 번의 결단으로 시작되지만,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생애 전체를 통해 깊어 질 것입니다.
첫걸음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가족이나 이웃에게 건넨 모진 말을 인정하는 일, 남의 허물을 옮기려다 말을 멈추는 일,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시간을 내어 주는 일입니다. 이 작은 행동 안에서도 오래된 자존심과 두려움이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한마디 앞에 생애의 깊은 강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과 성사 안에서 거듭 그리스도께 돌아갑니다. 고해성사에서 용서를 청하고, 일상에서 그 용서에 합당한 책임을 배웁니다.
성체성사에서 자신을 내어 주시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법을 배웁니다. 사랑할 힘조차 없을 때는 그 무력함마저 주님께 가져갑니다. 자비를 입은 사람은 다른 이의 부족함 앞에서 서둘러 등을 돌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오래 기다림을 받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되, 그 사람을 잘못 하나로 규정하지도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열어 주신 미래를 다른 이에게서 함부로 닫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건너지 못한 강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실패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닫고, 진실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강을 건넌 이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는 것도 바로 그 자비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날은 사랑하는 법을 더 배울 수 있는 시간입니다. 미처 배우지 못한 용서가 있고, 이제야 알아듣는 타인의 아픔이 있습니다. 늦었다는 회한 속에서도 바로잡을 일이 있으며, 아직 건넬 수 있는 따뜻한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미완의 생애 안에서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 끝에서 우리가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곁에 있는 누군가가 조금 덜 외롭기를, 우리가 상처 준 이의 아픔을 더는 외면하지 않기를, 받은 자비가 우리에게서 멎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평생 사랑을 배워 가며, 우리도 생애의 깊은 강을 건너고자 합니다.
주님,
아직 건너지 못한 강 앞에서
저희가 당신께 손을 내밀게 하소서.
돌이켜야 할 곳에서 돌아서고,
바로잡아야 할 것을 외면하지 않으며,
용서받은 기쁨으로 다시 사랑하게 하소서.
저희를 붙드시는 당신의 손을 믿으며
곁에 있는 이의 손도 놓지 않게 하소서.
조광호 신부
1967년 천주교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하여 서울 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신부가 된 다음 독일 뉘른베르크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천주교 주교위원회 출판국장으로 천주교 200주년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독일유학 후 한국현대미술 50년전, 일본 국제 현대미술전 및 국내외(독일, 미국, 오스트리아) 10여 차례 개인전과 여러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월간 영성문화교양지 <들숨날숨>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현재 강화 동검도 채플과 갤러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대표적인 미술 작품으로는 부산 남천 성당 유리화와 서울 2호선 당산철교 외벽의 벽화, 서소문 현양탑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그대 문의 안과 밖에서>, <꽃과 별과 바람과 시 - 조광호 신부 그림 에세이>, <얼굴 - 조광호의 그림과 글>, <Angel - 조광호 신부 명상 Drawing>, <조광호의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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