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최음제를 먹는 여자
김선주 칼럼
남능미라는 연예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관능적인 배우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관능미를 생각했습니다. 유사 음가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통해 관능적이지 않은 관능은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주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랑 없는 연애는 가능한가, 같은 질문입니다. 내용 없는 형식이 가능한가, 와 같은 질문도 가능할 것입니다.
관능을 요즘의 속된 말로 하면 섹시함입니다. 하지만 섹시함보다 관능적이라는 말에는 성적 매력뿐만 아니라 몸에서 풍겨나는 아름다움과 눈빛, 분위기 같이 타고난 감각적 아름다움이나 고혹적인 느낌까지 포괄합니다. 단순한 성적 미혹을 넘어선 예술적 감각을 추동하는 힘이 관능미입니다.
프로이트는 인간 내면에 있는 본능적인 삶의 에너지를 에로스(Eros)라고 정의합니다. 관능미는 에로스가 감각적으로 표출된 외적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관능미는 단순히 성적 에너지를 발현시키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실존의 감각을 민감하게 하며 존재의 의미를 풍성하게 하는 아름다움입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 관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삶은 존재의 빈곤에 빠지게 됩니다.
1856년에 태어난 미하일로 톨로토스(Mihailo Tolotos)라는 수도사가 있습니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죽었고 그 뒤로 아토스산 수도원에 맡겨져 평생을 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살다 죽었습니다. 아토스산 수도원은 여자는 물론 암컷 짐승조차도 출입을 금했던 남성 전용 수도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82세로 죽을 때까지 여자는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에게 관능적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나 통찰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칠레의 작가 이사벨 아옌테(Isabel Allende)가 쓴 책 중에 <아프로디테: 감각의 향연>이 있습니다.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무너진 갱도에서 구출된 광부처럼 찬란한 빛과 신선한 공기가 온몸으로 부딪쳐오는 충격을 경험합니다. “나는 허영심에 빠져 달콤한 음식들을 거부했던 다이어트를 후회한다. 그동안 일에 매달리거나 청교도의 미덕을 의식해 성생활을 자제했던 것 역시 통감한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관능적 쾌락과 음식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대범한 썰(說)을 풀어나갑니다.
삶의 기쁨과 의미는 영적인 고결함이나 초월적 세계에 있는 게 아니라 관능적 쾌락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아름다움으로 초대하며 관능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통찰과 쾌감을 누리기 위한 열린 감각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 관능적 쾌감은 먹는 것과 관련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먹어야 관능적 쾌감을 더 잘 느낄 수 있는지를 역사와 문화, 종교, 설화 같은 다양한 레시피를 사용해 최음제를 만들어갑니다. 실제로 그녀는 요리사와 함께 최음 효과가 있는 다양한 음식 레시피를 제시합니다.
정치적 대립각과 종교적 경직성, 그리고 경제적 피로감에 시달리는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레시피를 찾는 이가 있다면 이사벨 아옌데의 <아프로디테: 감각의 향연>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문체는 대범하고 재치 있습니다. 우리의 경직된 문법을 비틀어 달콤한 즙이 뚝뚝 떨어지는 묘사력을 선보입니다.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역사와 문학, 종교, 심리, 신화, 마술, 심지어 숨어 있는 비사(秘史)와 야설(夜雪)들까지 들추어내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최음제를 제조합니다. 아, 이렇게 관능미 넘치는 책을 지구 어느 구석에선가 은밀하게 쓰고 있는 여자는 얼마나 섹시할까요.
그녀를 만나고 싶습니다. 한 권의 책으로 관능미를 느끼게 하는 솜씨 있는 여자, 칠레에 그녀가 살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여자는 지금도 최음제를 먹고 있겠지요. 세상을 향해 자신을 온통 열어놓고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아프로디테 같은 여인 말입니다. 문조털래유냐 한강새똥돼주길이냐로 서로 오물을 투척하는 정치 싸움 대신,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서서 패권 다툼을 하는 종교 논쟁 대신, 아프로디테의 관능미를 보시기 바랍니다. 정의보다 달콤하고 자유보다 거룩한 것이 관능미라고 대범하게 말하는 그 여자를 만나 보십시오. 정치적 혐오로 상처받고 통속적인 SNS 언어로 피로해진 영혼이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그녀가 주는 최음제를 먹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온몸을 열어 보십시오. 세상이 정말 아름답게 보입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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