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외로운 남자에게 밥 한 끼 사고 싶다

김선주 칼럼

2026-09-21     김선주

갑자기 돈이 생겼습니다. 누군가에게 근사하게 밥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입니다. 늘 빈털터리로 살다 보니 조그만 돈만 주머니에 고여도 당황스럽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장바구니에 넣어 둔 책을 주문하는 것으로 탕진했을 겁니다. 하지만 거의 책을 안 사는 요즘 그 돈은 그대로 허공에 뜬 것 같습니다. 빨리 어딘가로 흘러가지 않으면 주머니에서 돈이 썩어 냄새가 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돈으로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누군가에게 밥을 사고 싶어졌습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 도둑>의 주인공 안토니오였습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무질서와 빈곤이 판치는 이탈리아 사회에서 한 가장이 겪는 슬픈 사연입니다. 먹고살 일이 막막한 안토니오는 어느 날 포스터 붙이는 일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전거가 있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아끼던 침대보를 벗겨 전당포에 팔아 자전거를 삽니다. 희망으로 가득한 그는 어린 아들 브루노와 함께 포스터를 붙이는 일을 신나게 합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도둑맞고 맙니다. 자전거 도둑을 찾아 거리를 쏘다니는 그는 초췌한 몰골에도 아들에게 아버지의 권위를 잃지 않기 위해 주머니에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고급 레스토랑에 갑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풍성한 식사를 하는 부자들과 비교되는 자신의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맙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얼마나 (정신적으로도) 빈곤하게 하는지 레스토랑의 장면은 말합니다.

 

헤매던 끝에 자전거 도둑을 붙잡아 다그치는데 그 청년은 간질병 환자였습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발작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안토니오를 나쁜 놈으로 몰아붙입니다. 그 청년은 착한 사람인데 생사람 잡는다고 오히려 공격을 당합니다. 결국 안토니오는 다른 사람의 자전거를 훔칩니다. 모두가 도둑놈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나도 도둑질 한 번 한다고 뭐 그리 대수겠느냐는 생각이었겠지요. 그리고 자신의 도둑맞은 자전거를 그렇게라도 보상받는 것은 도덕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전거를 훔치다 붙잡힌 안토니오는 군중에 둘러싸여 욕을 먹고 뺨을 맞습니다. 모두가 도둑뿐인 세상에서 One of them인 게 무슨 문제겠느냐는 생각이 정면으로 윤리의 뺨을 맞은 것입니다. 도둑이 도둑을 낳고, 또 그 도둑은 다른 도둑을 낳는 사회 구조, 착한 사람이 도둑을 맞아 전 재산을 잃고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둑질 한 번 했는데, 그것이 사회적 비난거리가 되고 마는 아이러니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카메라는 시종일관 안토니오를 3인칭 시점으로 따라갑니다. 어떤 영화적 기법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추적하며 안토니오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맥락을 비춰줍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안토니오의 어린 아들 브루노의 시선을 통해 아버지 안토니오를 바라봅니다. 더없이 신뢰하고 존경하는 아버지가 침대보까지 팔아 자전거를 사야 하는 빈곤한 모습과 그 자전거를 도둑맞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허세를 부리는 모습, 자전거를 훔치다 붙잡혀 참혹하게 망신을 당하는 아버지의 비애, 그리고 군중에 둘러싸여 뺨을 맞는 아버지를 본 브루노의 눈빛은 슬프고 애절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외로운 사람의 초상을 꼽으라면 나는 비토리오 데 시카의 영화 <자전거 도둑>에 나오는 주인공 안토니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토니오와 브루노는 손을 꼭 잡고 군중 속으로 걸어가며 눈물을 흘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라스트 신입니다. <자전거 도둑>의 안토니오가 생각나서 울컥해졌습니다. 주머니에 돈 몇 푼이 들어와서 생각이 두서없이 떠돌다가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외로운 아버지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사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다 이재명 대통령을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견뎌내고 착한 세상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겨우 대통령이 됐는데, 그의 요즘 처지가 자전거를 도둑맞은 안토니오 같다는 생각입니다. 도둑맞은 자전거보다 더 슬픈 것은, 어린 아들의 눈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사내, 슬프고 아픈 이유는 그가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슬프고 외로운,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 밥 한 끼 사고 싶습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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