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그대에게, 고맙다

한상봉 칼럼

2026-09-14     한상봉 편집장

나 자신을 ‘신학활동가’로 부르면서, 글쓰기에 몇 가지 원칙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알아듣기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하고, 어려운 개념은 친절하게 풀어주고, 어떤 주제를 다루더라도 신자들에게 익숙한 성경이야기로 말을 건네며, 신학을 예술이나 문학적 매개를 통해서 다루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신학자는 하느님에 관한 지식과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대중가요를 들어도 단순히 ‘주저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넘어서 하느님과 인간이 맺는 우정과 사랑의 은유로 해석하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라는 노래 가사를 들을 때마다 ‘하느님 안에 함몰해 들어가기를 갈망하던’ 신비가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모든 대중가요를 히브리성경의 ‘아가’(雅歌)로 여기게 됩니다. 이참에 신해철의 노래를 듣습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순 없어요”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밴드 무한궤도가 부른 <그대에게>라는 곡입니다. 신해철은 서강대 철학과 시절 아버지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밤에 이불 쓰고 멜로디언을 불면서”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전에 강변가요제에서 떨어진 적이 있던 신해철은 가요제의 특성에 맞게 “전주부터 화려하게 치고 들어가야 한다. 전진돌격 대형으로 시작부터 돌격한다. 곡이 좀 특이해야 한다. 노래 자체는 단순하다. 8비트로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로 간다. (대학가요제) 현장 행사에서 가사가 전달될 리 없으니 쉬운 가사로 간다. 4분 동안 끊임없이 변한다. 지루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등의 전략을 세웠다고 합니다. 과연 이 노래를 듣고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조용필은 “전주만 듣고 대상감으로 직감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노래에서 ‘그대’를 ‘하느님’으로 바꾸어 들으면 엄청난 영적 감흥이 올라옵니다. 세상 곳곳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고 있으며, 내가 사랑하던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해도 그분을 포기할 수 없고,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그분 곁에 있고 싶다는 갈망만큼 처절한 신비주의가 어디 있겠습니까. 전주곡을 듣자마자 우린 이미 그 장엄한 분위기에 휩싸이고, 가슴 깊은 곳에서 점점 터져나오는 갈증 같은 사랑을 경험합니다. 이 정도 사랑해야 그분을 “주님”이라고 발음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온 마음이 그분께 흠뻑 빠져들어 내가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곳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는 사람이 신비가입니다.

한때 신해철은 솔로로 데뷔한 적도 있지만 결국 밴드로 돌아갔습니다. 그 밴드 이름이 ‘넥스트’(N.EX.T)입니다. 글자 그대로, 신해철은 대중음악을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고 늘 ‘다음으로’ 탈주합니다. 하지만 신해철은 단순히 ‘가수’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이를 두고 음악평론가 강헌은 “한 인간으로서 ‘정치적 올바름’을 지켜내려 한 예술가”라고 말합니다. 신해철은 인간의 자유와 행복이 진정한 가치라고 믿었으며, 이를 위협하고 훼손하는 모든 적과 싸우면서, 두려움과 무모함을 넘어 진정한 용기를 드러내는 말과 행동을 했다는 것이지요. 신해철은 자신을 연예인 이전에 음악인이고, 음악인 이전에 시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시민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신해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정치인이 노무현이었다는 사실 역시 특별합니다. “저는 정치나 사업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싶었고 지금도 정치에 ‘정’자만 나와도 100미터, 200미터씩 멀찍이 돌아다녔다”고 고백하는 신해철은 2002년 12월 대선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유세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던 겁니다. “이 자리에 정치가 좋아서, 정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모인 건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는 뿌리 깊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환멸이 자리 잡은 지 오래”라면서 “이 자리에 서기까지 괴로움도 있었습니다만, 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 우리 모두를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더 큰 것을 위해 지금까지 제가 살아왔던 작은 고집은 버리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 노무현이 2009년 5월 23일 이승을 떠났을 때, 신해철은 모든 공연을 취소하고 한 달 여 동안 칩거에 들어갔다가 6월 21일에 치러진 추모콘서트에 검은 양복을 입고 완전히 삭발한 채 나타나 “노무현을 죽인 건 이명박, 한나라당, 조선일보가 아닌 바로 나와 우리들”이라며 “저는 가해자기 때문에 문상도 못 갔고, 조문도 못했고, 담배 한 자루 올리지 못했지만 할 수 있는 건 노래밖에 없어 마지막으로 노래라도 한 자락 올리려고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 부른 노래가 <그대에게>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보다 앞으로 있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대는 연인이기도 하고, 노무현이기도 하고, 그가 사랑하던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철학의 배후에는, 신해철은 이런 남다른 행보에 깔려있는 원초적 경험처럼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시위현장에서) 백골단과 전경에게 쫓기다 간신히 청계천의 철공소 안으로 피신해 철문 셔터를 내렸는데, 미처 피신하지 못한 여학생의 머리채를 쥔 백골단이 셔터 바깥에서 여학생 머리를 철문에다가 사정없이 패대기친 것이다. 철공소 안 어둠 속의 시위대 청년들은 숨죽이고 있을 도리밖에 없었고, 가까스로 들어와 그 철문을 등지고 있는 신해철의 등짝에는 셔터의 진동이 적나라하게 전해졌다. 몇 분 전의 의기양양함은 온데간데없이 공포에 떨며 무력감을 씹어야 한 그 짧은 순간의 경험은 그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열패감의 기억으로 남는다.”

음악을 통해 가장 순정한 사랑을, 권력에 굶주리지 않는 정치를, 가엾은 목숨에게 미래를 내어주는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14년 10월 27일, 신해철의 갑작스런 죽음은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노무현처럼, 예수님처럼 예고 없이 죽어 많은 이들의 뇌리에 영원한 노래로 남겨졌습니다. 신해철, 그대에게, 고맙습니다.

 

* 9월 29일 (목) 오전 10시부터 전주 치명자산 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신해철 묵상회가 있습니다. 현장 참여와 동영상 강의  모두 가능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여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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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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