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북콘서트 감상 "삶의 사계, 소설의 음계"
이정화 칼럼
지난 4월 어느 날, TV를 보다 우연히 [손석희의 질문들]을 보게 되었다. 그날이 마침 마지막 방송이었는데 손님으로 김애란 작가가 나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설보다는 비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을 찾아 읽은 것이 내겐 이례적인 일이다. 더군다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정서적으로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는 ‘편견’ 때문에, 솔직히 김애란 작가를 잘 몰랐다. 그런데 그날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대답하는 김애란은 뭐랄까, 좀 특별하고 매력적이었다. 약간은 긴장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하는 그녀는, 마치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듯 공을 들여서 대답했다.
작품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도중, 머리와 가슴에 새기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그중에 내 가슴에 ‘훅’ 들어온 한 단어, “망설임.” 앵커가 인간과 AI의 차이점을 묻는 순간이었다. 작가는 글쓰기에 근육이란 게 늘었다면, 그건 문장을 어렵게 이을 때 ‘전전긍긍’과 ‘자문자답’을 하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인간에게는 있고 AI에게는 없는 것이 ‘망설임’이더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을 때, 아픔을 들을 때, 어떤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짐작하거나 헤아리는 찰나의 ‘망설임,’ 그 주저 안에는 힘겹게 서 있는 사람의 어떤 배려나 품위가 있다고. AI의 유려하고 빠른 조언보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더 위로가 된 적도 있다고. 차이점을 ‘망설임’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질문들>의 마지막을 빚낸 ‘선물’ 같은 말, 망설임에 꽂혀 그날부터 김애란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찾아 읽어 내려갔다. 방송 출연의 힘은 강력하다. 김애란 작가의 망설임이 전파를 탄 후,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도서관에는 김애란 책 전권이 예약 마감됐고, 중고 서점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겨우 최근작을 서점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8월 29일 그것도 내 생일날, 김애란 작가가 이호철북콘서트홀에 납신다질 않는가! 그곳에 근무하는 지인 찬스를 써서 남편과 함께 현장 접수를 했다. 동생뻘 지인은 ‘생일 선물’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150석 전석 매진으로 홀이 꽉 찼다. 김애란 작가는 몸뿐 아니라 목소리도 작고 나긋나긋했다.
작가는 글을 쓰듯 “삶의 사계 소설의 음계”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2020년 금환일식(개기일식)을 보고 난 후 아이들과 어른들이 SNS에 올린 다양한 댓글을 보면서,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지만 유쾌하고 아름답다고 했다. 그녀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인간 이야기를 소설과 연결해서 이어갔다.
삶의 사계
‘인간’이라는 말은 어떨 때는 욕 같기도 하고, 때론 권고나 지향으로 들린다, 인간은 대체로 빤하고 진부하다. 하지만 어떤 사건, 사고로 일상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이 ‘빤함’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게 된다. 단편 <바깥은 여름>(2017, 문학동네) 중 <입동>은 사고로 아이를 잃고 겨울 첫날을 맞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다. 아이를 잃어 이미 떨리고 추운데 입동. 그들에게 “이제 겨우 시작이다”라는 말은 얼마나 더 시리고 아픈가! 그 부부의 봄, 여름, 가을은 우리가 말하는 ‘빤하고 진부’했을 일상이었다. 작가가 <입동>을 대표적인 겨울 이야기로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시대별, 시간별, 세대별 어려움 가운데 자식을 잃은 만큼의 큰 고통, 큰 겨울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단편 속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주인공은, 현장학습 갔다가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다 죽은 남편을 잃고, 깊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간다. ‘잠시라도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남편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러던 중 죽은 제자의 누나가 보낸 편지에 “평생 궁금해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때 권도경 선생님이 우리 지용이의 손을 잡아주신 마음에 대해, 저는 그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라는 글을 읽으며, ‘그 당시 남편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을까’라며 처음으로 남편을 이해한다. 누나의 말처럼, 인간은 그렇게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고, 아직 잘 모르겠는 우리 모든 삶의 숙제가 아닐까?
작가가 느끼는 인간의 이상함 중 가장 이상한 점은, 자기를 지키려는 보호본능과 생존 감각을 지닌 인간이, 자신도 무섭고 두려웠을 와중에 어떻게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지고, 선을 위해 타인을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다. 재난이나 사고 현장에서 전혀 모르는 타인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목숨을 내놓는 이들을 보며, 인간은 모든 동물에게 있는 ‘자기돌봄욕구’를 ‘역행’하는 유일한 존재다. 작가는 소설가로서 시선에 변화를 느낀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고로 자식을 잃은 이들이 합창단을 꾸려서, 전국의 참사 현장을 찾아,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이었다. 인간은 ‘놀랍고 이상’하기만 하다.
이렇게 어떤 인간의 삶은 ‘바깥은 여름’인데, 안을 들여다보면 시리고 추운 겨울을 겪고 견디고 있다. 우리의 삶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차례대로 오지 않는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겨울이 찬란한 봄, 지루한 여름, 겸손한 가을이라는 일상 속으로 훅하고 들어올지 모르기에, 그 빤한 우리의 일상이 더 귀한 것이다.
소설의 음계
초기작 <침이 고인다>(2007, 문학과 지성사) 속 <도도한 생활>은 1970~80년대 중산층의 허영이자 로망이었던 ‘피아노’와 관련된 작품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은 낮에는 식당, 밤에는 살림집으로 변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삶의 지난함과 교육의 허기를 채우고자 피아노를 사주시는 엄마, 그리고 서울 반지하 자취방까지 피아노를 가져 가게 되고, 비가 많이 오는 어느 날, 결국 빗물에 물이 차올라 책은 물론, 자신까지도 피아노 위로 올라가는 가난한 청춘의 이야기다. 점심 장사가 한창인 엄마의 칼국수집에서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나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했다는 작가의 우스갯소리에 박장대소했지만, 참으로 아프고 씁쓸한 이야기였다. 작가는 ‘도도’라는 낮은 음은 ‘슬픔’이나 ‘그늘’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한다. 우리네 삶은 아이러니해서 자신을 갈아 넣어 열심히 살아도, 보상은커녕 배신으로 돌아올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회의와 고독에 빠져 ‘도도’하고 숨죽여 울지 않을까?
최근작 <안녕이라 그랬어>(2025, 문학동네)의 출발점이 된 소재는 팝송 <Love Hearts>다. 작가는 이 노래를 듣다가 문득 가사 ‘I am young’이 ‘안녕’이라고 들렸다고 한다. 그것을 어떤 사람의 실연, 착각, 오해, 사과라는 서사로 풀어 보았단다. 어머니와 남친과 직장을 잃은 여성의 절절한 상실과 고립감. 외국어를 배우면서 화상으로 만난 60대 외국인 남자 강사와의 진실한 소통, Love Hearts를 통해 주인공이 화양연화를 건너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외국인 강사 로버트와의 마지막 수업에서 말한다. “우리말의 ‘안녕’에는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고 또 다른 의미가 있어. ‘평안하시냐’는 혹은 ‘평안하시라’는 뜻이야.” 그렇게 그녀의 방식으로‘안녕’을 건넨다.
생색내지 않게 우리를 돕는 ‘문학’
”생은 판에 박힌 되풀이와 놀라움이라는 이중구조를 갖는다“는 <아직 오지 않는 날들을 위하여> 저자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말은, 작가의 ”삶의 사계 소설의 음계“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지리멸렬하고 반복적인, 멀리서 보면 빤해 보이는 춘하추동 사계에 의미를 주는 문학의 구조와도 비슷하다. 작가는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실용과 기술 못지않게 기도나 영적 사유, 정신적 활동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것이 사람을 ‘살리는’ 몫을 해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고 쓰는 행위, 즉 ‘문학’은 행정 언어나 법률 언어로 해결되지 않는, 그렇지만 우리 삶에 엄연히 존재하는 문제들을 결코 ‘생색내지 않는’ 문체로, 표 안 나게 천천히, 쉬운 답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를 돕는다고 한다.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작가는 영화 <부산행>에서 진짜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역병이 창궐하고 좀비 떼가 들끓는 상태에서 긴급재난경보령이 선포된 가운데, 사람들은 단 하나의 안전한 도시 부산까지 가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결국 어린아이 한 명, 남자 한 명이 터널로 다가가는데 좀비면 총살, 인간이면 구한다. 아이가 예전에 아빠가 용기가 필요한 순간 부르라고 하던 ‘노래’를 부른다. “알로하 오에(안녕 그대여)”하고. 슬픔 한가운데서 노래하는 단 하나의 동물, 인간의 노래다.
김애란 작가의 강의는 인간에서 시작하여 인간으로 끝마친다. 그 인간은 이상하고 아름답지만, 한편으론 악하고 폭력적이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존재다. 김애란 작가에게 반한 부분은 여러 지점이지만, 그녀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이 말에 담겨 있다.
“저는 제 말이 글보다 좀 커지거나 앞질러 가는 것을 걱정하는 편이다. 저의 바람은 소설을 ‘집’이라고 생각한다면 독자분들이 제 집에 들어오기도 전에 싫증을 내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지요. 그래서 집에 콘크리트나 뼈대로 세우지 않고, 독자들이 무슨 집인지 모른 채 들어왔다가 그 집을 나갔을 때 그 사회적 공기가 몸의 냄새처럼 배어서 바깥공기와 만나서 환기되는 식으로 상기되었으면 좋겠어요.”
품격, AI시대의 새로운 좌표
작가는 말을 던지지 않고 말을 어루만진다. 어루만진 그 말이 글이 되고 소설이 되고 문학으로 우리 앞에 선다. 망설임 없는 AI가 세계를 집어삼킬 듯 빠르고 강력하게, 인간이 설 자리를 빼앗고 자연을 먹어치운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재열은 AI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좌표로 ‘품격’을 제안한다. 품격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뎌도 인간에 대한 연민, 예의를 가지고 타자에게 ‘안녕’을 빌어주는 것, 그것이 ‘품격 있는 인간’이다. 작가 김애란처럼.
북토크가 끝나고, 열심히 책 읽는 엄마에게 딸내미가 사준 <안녕이라 그랬어> 사인을 받았다. 작가는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딸의 안부까지 물으며 정성스레 사인을 해주었다. 책을 읽는 것은 작가를 읽는 것이다. 김애란 작가의 글이 왜 나를 끌어당기는지 알았다. 그건 ‘진정성’이었다.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
종이신문<가톨릭일꾼>(무료)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
유튜브 강의/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