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실제로 이룬 것은 공동체인가, 플랫폼적 팬덤인가"-신자유주의 문화산업과 BTS
장준식 칼럼
[이 글은 박삼영 목사님의 BTS 활동에 대한 해석(BTS,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공동체를 노래하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며 BTS 현상을 분석한 글입니다.]
한 시대를 이해하려면 그 시대가 무엇을 노래하는지 들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문화는 정치와 제도보다 먼저 한 시대의 욕망과 불안을 드러낸다. BTS 역시 21세기의 중요한 문화적 현상이다. 그러나 BTS가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공동체를 되찾아 주었다”는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것은 BTS 현상을 지나치게 낭만화하면서, 그 성공을 가능하게 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과 디지털 플랫폼의 구조를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BTS의 성공은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라기보다 신자유주의 문화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에 가깝다. 음악, 춤, 외모, 성장 서사, 세계관, 소셜미디어, 팬 참여, 상품과 공연이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생태계로 통합되었다. HYBE 역시 공식적으로 정보기술을 활용해 팬덤 문화를 재구성하고, 아티스트와 팬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플랫폼 사업을 전개한다고 설명한다. 위버스에서는 소통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멤버십, 독점 콘텐츠, 공연, 상품 구매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된다. 관계와 소비가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스펙터클을 단순히 화려한 이미지의 집합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스펙터클을 “이미지에 의해 매개되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라고 정의한다. 스펙터클의 핵심은 사람들이 이미지를 본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 자체가 이미지와 상품을 통해 형성된다는 데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BTS 공연장에서 수만 개의 응원봉이 하나의 빛으로 움직이는 장면은 공동체가 회복되었다는 증거라기보다 스펙터클이 완성되는 장면으로 읽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모여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빛을 흔들지만, 서로를 향하기보다 모두 같은 무대와 같은 스타를 바라본다. 그들은 함께 있는 듯 보이지만, 그들을 연결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책임이나 공동의 삶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와 브랜드다.
물론 그 경험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팬들이 받는 위로와 감동은 실제적이다. 그러나 스펙터클은 감정이 거짓이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감정과 소속 욕망이 상품과 이미지에 의해 조직되고, 다시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기 때문에 스펙터클이다. 콘서트의 감동은 티켓과 응원봉과 영상과 멤버십으로 이어지고, 팬의 사랑은 스트리밍과 홍보와 구매로 전환된다. 고립된 개인의 소속 욕망이 문화산업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ARMY를 곧바로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팬덤 안에서 실제 우정과 돌봄과 연대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대상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에는 지속적인 상호 책임, 약한 구성원에 대한 돌봄, 갈등을 조정하는 규범, 함께 추구하는 공동선이 필요하다. 스타가 활동을 중단하고 신곡과 공연이 사라진 뒤에도 그 관계가 지속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한병철은 『무리 속에서』에서 디지털 소통이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지속적인 공동체와 공론장을 해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군집은 빠르게 모여 반응하고 공유하지만, 책임 있는 ‘우리’로 지속되기 어렵다. 그것은 공동체라기보다 관심과 감정이 일시적으로 집결한 무리에 가깝다.
ARMY 역시 이러한 디지털 군집의 특징을 일정 부분 보여준다. 팬들은 자발적으로 번역하고, 영상을 공유하며, 스트리밍 목표를 세우고, 차트 순위를 관리한다. 팬은 더 이상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다. 그는 홍보자이자 번역자이며 콘텐츠 생산자이고 데이터 생산자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의 상당 부분은 무보수로 이루어지며, 그 결과는 플랫폼과 기업의 가치 상승으로 귀속된다.
한병철이 『심리정치』에서 분석한 신자유주의 권력의 특징도 여기에 있다. 오늘의 권력은 사람에게 강제로 노동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도록 만든다. 사람은 자유롭다고 느끼면서 스스로를 동원한다. 팬에게 열정과 노동은 구분되지 않는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착취라고 느끼지 않지만, 그 사랑과 열정은 끊임없이 경제적 가치로 전환된다.
“Love Yourself”라는 메시지도 이러한 양면성 속에서 보아야 한다. 이 말이 상처받은 청년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회 구조가 만들어 낸 불안과 결핍을 개인이 해결해야 할 심리적 문제로 환원할 위험도 있다. 청년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 입시 경쟁, 불안정 노동, 외모 산업, 주거 불안과 계급 격차는 그대로 둔 채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체제를 변화시키는 언어라기보다 체제 안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개인을 수리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
더구나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음원 순위, 조회 수, 판매량, 팬덤 간 경쟁이라는 거대한 비교 체제를 통해 유통된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이론을 적용한다면, BTS가 모방 욕망을 극복했다고 말하기보다 팬덤이 어떻게 모방 욕망을 조직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사람들은 다른 팬이 구매하기 때문에 구매하고, 다른 팬이 열광하기 때문에 더 열광하며, 더 충성스러운 팬으로 인정받기 위해 경쟁한다. 지라르의 이론은 BTS를 경쟁의 대안으로 미화하기보다 팬덤 내부의 욕망과 경쟁을 분석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찰스 테일러의 표현적 개인주의를 인용하면서 BTS가 현대인의 소속감 결핍을 해결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성급하다. 테일러가 비판한 것은 단순히 현대인이 자기표현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개인의 진정성이 공동의 도덕적 지평과 사회적 관계에서 분리되는 문제다. 브랜드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자신의 취향을 강하게 표현하는 것은 표현적 개인주의를 극복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연장일 수 있다. 공동체는 동일한 취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동의 세계를 책임질 때 형성된다.
BTS가 그래미의 ‘아시아 팝’ 범주에 문제를 제기하고 2027년 그래미에 앨범을 제출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서구 음악산업이 비서구 음악을 별도의 지역적 범주에 가두는 방식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 제기다. 그래미는 실제로 2027년 시상식부터 ‘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 부문을 신설했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조차 신자유주의 문화산업 안에서는 새로운 브랜드 가치가 될 수 있다. 제도에 대한 거부는 BTS를 “서구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적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팬덤의 결속을 강화한다. 이것은 그들의 결정을 위선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마저 상품과 서사로 흡수하는 자본주의의 능력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BTS가 실제로 이룬 성과는 무엇인가. 그들은 한국어 대중음악이 서구 음악시장의 주변부에 머물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디지털 플랫폼과 팬 번역, 참여적 팬덤과 연속적인 서사를 결합하여 새로운 초국적 문화산업의 모델을 만들었다. 서구가 독점하던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을 흔들었다는 점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공동체의 회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BTS가 이룬 것은 공동체의 회복이라기보다 공동체를 갈망하는 고립된 개인들의 감정과 참여를 세계적 네트워크로 조직한 것이다. 그 네트워크 안에서 실제 우정과 연대가 탄생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을 BTS 산업 전체의 본질로 바꾸어 말해서는 안 된다.
BTS는 현대 자본주의를 넘어선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의 문법을 가장 창의적이고 성공적으로 구현한 문화적 현상이다. 현대 문명이 BTS를 필요로 했던 이유는 그들이 잃어버린 공동체를 되찾아 주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외로움과 소속 욕망까지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BTS라는 스펙터클을 통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BTS가 공동체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은 BTS라는 상품화된 공간 안에서도 끝내 서로를 찾고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다. BTS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그 역설 속에서 찾아야 한다.
장준식 목사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세화교회 담임.
<예배자의 기도>, <기후 교회로 가는 길> 등의 저자.
여러 신문에 글을 기고 하는 칼럼니스트
미국 에모리대학교와 GTU에서 조직신학(정치신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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