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스와 예수와 홍명보
김선주 칼럼
신전과 시장은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높은 바위 언덕 위에 세워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높은 도시)에는 여러 개의 신전이 있습니다. 아테나 여신을 제사하는 파르테논 신전, 아테나와 포세이돈을 모신 에레크테이온 신전, 아테나와 승리의 신인 니케(나이키) 신전입니다. 이곳에서 드리는 제사의식은 4년마다 열리는 판아테나이아 대제전입니다. 처녀들이 짠 옷을 여신상에게 입히고 헤카톰베라는 희생 제물을 봉헌하는 의식이었습니다. 한 번에 100마리의 소와 포도주, 곡물을 바치는 제전이었습니다. 제전이 끝나고 나면 제사에 바쳤던 고기와 포도주를 아테네 시민들이 나누어 먹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제전은 아테네 도시 전체가 흥청거리는 축제였습니다. 아크로폴리스 남쪽 성벽 바로 아래에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닙니다. 디오니소스(바쿠스)는 포도주의 신이며 풍요의 신입니다. 인류 최초의 연극 무대라고 하는 그곳에서 행해진 축제는 아크로폴리스 제전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제사에 드려진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전쟁의 승리와 도시의 수호를 위한 성대한 찬가를 불렀으니 그것은 질서 있는 행렬이 아니라 광란의 무질서로 흐르기 쉬운 무대였을 것입니다. 풍요와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가 도취와 황홀경에 빠진 군중을 광란으로 빠뜨리는 장면이 그곳에서 연출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크로폴리스 바로 아래 아고라가 있습니다. 시장은 사람들이 서로 필요를 공급받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는 경제적 이익을 위한 욕망과 탐욕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신전과 시장은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작동 원리는 같습니다. 신전이 인간 욕망이 투사된 우상의 제단이라면 시장은 인간 욕망이 실현되는 구체적인 공간입니다. 신전과 시장은 욕망의 그릇입니다.
인간은 욕망합니다. 생물학적 욕망을 넘어 더 넓고 높은 차원으로 그 욕망은 발전합니다. 플라톤 이후 인간의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데 반해 스피노자는 ‘인간의 본질은 욕망(Conatus)’이라고 말합니다. 욕망하는 인간을 긍정적으로 본 것입니다. 나아가 들뢰즈는 욕망을 삶을 확장하고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능동적인 에너지로 보았습니다.
최근에는 욕망을 충족시킬 때 나타나는 감정의 고양이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뇌 신경학에서는 그것을 도파민(Dopamine)이라고 합니다. 도파민은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로 쾌락적 감각을 가져다주고, 의욕을 심어주며 동기를 부여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즐거운 게임을 할 때, 사랑할 때, 욕망이 충족될 때 뇌의 신경세포에서 이 ‘쾌락의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것이 도파민입니다. 특히 많은 사람과 연대를 통해 자기가 혼자가 아니라 거대한 힘을 가진 무리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느낄 때도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파민은 자기 욕구가 충족될 때만 분비되는 것은 아닙니다. 분노의 감정에도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노할 때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합니다. 뇌 신경학에서는 분노를 생존을 위한 스트레스 반응으로 봅니다.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도파민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2연패를 한 데서, 그리고 홍명보 감독이 이후에 보인 태도에서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할 문제가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이 폭발하는 것입니다. 분노는 적을 만들고 그 적은 우리의 뇌세포에 도파민을 살포합니다. 적당하게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포도주를 과도하게 먹어버리면 디오니소스의 광기에 빠지는 것처럼 대중은 늘 무언가에 취해 있기를 원하고 그 취함의 정도가 선을 넘으면 광기로 빠지게 됩니다. 훌리건은 스포츠의 디오니소스적 광기의 한 사례입니다.
종교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을 적당히 흥분시키고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켜 그것을 영적 카타르시스로 포장할수록 비즈니스는 성공합니다. 갑자기 성장한 교회들, 뭔가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한 교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화려한 종교 이벤트가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위 교회 이벤트로 뺑뺑이 돌리며 그것을 종교적 감수성으로 감싸면 도파민을 분비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을 초월적 경험으로 포장할 때, ‘영적’이라는 수식어를 같다 붙일수록 사람들은 비의(秘義)를 갖게 됩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데리고 가끔 한적한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홀로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에서 나타나는 무질서의 피로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끔 멈추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디오니소스적인 광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들뜨고 환호하고 분노합니다. 특히 요즘 SNS에 떠도는 정치적 논쟁을 보면 담론은 없고 혐오와 저주의 말들이 난무합니다. 생각을 거치지 않은 혐오와 저주의 말들이 구토물처럼 쏟아집니다. 어쩌면 가장 극단적이고 끔찍한, 최초의 저주는 종교 언어에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를 따르지 않으면 다 지옥 간다, 하는 식의 언어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종교적 언어 안에 갇혀 있습니다.
어제 유시민이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다스뵈이다)에 출현하여 한 발언을 두고 또 다시 혐오와 광기의 바람이 SNS를 휩쓸고 있습니다. 내 생각과 다르면 다 뒈질 줄 알아, 하는 식으로 씹는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에게서 종교적 폭력성을 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다 종교적입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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