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일꾼 10주년 기념미사를 드리며 초심을 다진다

가톨릭일꾼 10주년 기념미사를 드리고

2026-06-22     이정화

지난 5월 30일, 성분도 은혜의 뜰에서 가톨릭일꾼 10주년 기념미사를 드렸다.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멀리 창원에서 새벽같이 기차를 타고 달려오신 김유철 시인과 가톨릭일꾼 일이라면 열 일 제쳐놓고 손을 보태시는 반가운 얼굴들이 모였다.

가톨릭일꾼운동은 1933년 5월1일 메이데이에 뉴욕의 유니언광장에서 <Catholic Worker>신문을 실직자들과 노숙인에게 나눠주면서 시작되었다. 그때의 슬로건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복음 정신이었고, 이 복음이 일차적으로 누구에게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가톨릭일꾼의 공동창립자인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은 이 질문에 대답하듯, 성령 안에서 가난한 이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살고, 알고 사랑하며 헌신했다. 여기서 영감을 받은 한상봉 편집장님은 2016년 5월 1일 한국 <가톨릭일꾼>신문 창간호를 발행하고, 5월 15일 피터 모린 기일에 창립 미사를 봉헌했다.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세찬 소낙비가 쏟아졌다. 그때 그 비가, 가톨릭일꾼 창립을 기뻐하고 응원하는 ‘성령 세례’가 아니었을까? 라는 뜬금없는 생각에 빠져본다.

가톨릭일꾼 ‘동반’ 사제인 김상식 신부님의 집전으로 기념미사가 시작되었다. 김상식 신부님은‘ 예수성심전교수도회’ 소속 사제로, 매월 일꾼 월례 미사를 담당해 주고 계신다. 신부님은 “가톨릭일꾼 창립 10주년을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는 은총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에는 수많은 이름 없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기도 해주신 분들, 밥을 나눠주신 분들, 병든 이들의 손을 붙잡아 주신 분들, 거리와 노동의 현장에서,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묵묵히 살아낸 분들의 눈물과 기도가 오늘 이 자리를 이루었습니다.”라며 강론을 시작하셨다. 한마디 한마디가 일꾼인 우리들이 뼛속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고, 10주년을 맞아 새로 시작하는 시점에서, 초심을 다지는 맘으로 신부님의 강론을 나눈다.

“가톨릭일꾼 운동은 단순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오늘의 시대 안에서 삶으로 살아내려는 복음의 실천이다.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지금의 한국 천주교회는 어디에 서 있느냐고. 뉴스를 틀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지는 전쟁과 폭력, 탐욕과 거짓, 폭력과 자본의 야합 속에서 인간의 존엄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목도한다. 우리는 정신적 분열과 불안, 상실감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정의는 살아있는지, 교회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복음은 이 시대 안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신부님은 돌아가신 교종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기쁨>에서 “나는 상처 입고 더럽혀진 교회를 원한다. 거리로 나가지 않아서 병든 교회보다 낫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의 고통 앞에서 ‘침묵’할 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절대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강력히 호소하셨지만 과연 우리가 응답하고 있는지 물었다. 교종 레오 14세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귀한 인류>라는 두 개의 회칙을 발표하셨다. 교종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에서 “인간은 결코 수단이 될 수 없으며,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유일하고도 존귀한 얼굴이다.”라고 하셨고, <고귀한 인류>에서는 “현대 문명이 인간을 소비와 효율의 대상으로 축소시키고 있다고 경고하셨다.

"가톨릭일꾼의 길은 인간 존엄을 삶 안에서 ‘증언’하는 길이므로 교종이 뜻하는 바와 닿아있다. 가톨릭일꾼의 공동창립자인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의 영성은 한 마디로 함께 살아가는 연대이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을 단지 시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신들도 가난하지만,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다. 그들은 자선을 넘어 연대로, 동정을 넘어 우애로 나아갔으며, 시대의 고통 속으로 투신했다. 도로시 데이는 '가난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 그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서는 안 된'다며, 이것이 바로 ‘복음의 육화’라고 말한다.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 멀리서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식탁에 앉는 것,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가톨릭일꾼의 정신이고 에센스이다. 그러니 더 많이 사랑합시다. 더 깊이 연대합시다. 지금보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갑시다. 그리고 더, 더, 진실하게 복음을 살아갑시다.”

미사가 끝난 후 한상봉 선생님은 가톨릭일꾼 10년의 기록을 영상으로 편집하여 보여주셨다. 그 영상엔 신문 접는 사진,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처음 열린 가톨릭일꾼세미나, 태릉 성 요셉수도원 세미나 때 새벽기도 가면서 본 하얀 새벽달, 서강대 근처 카페 ‘엣꿈’에서 열린 월례미사와 본당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주옥같은 강의를 수혈받던 장면들이 기억과 함께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 사진 속 얼굴들은 코로나 이후 이제는 함께 하지 못하지만, 그들은 가톨릭일꾼 10년의 ‘증인’들이다. 그들 중 두 자매는 벌써 하늘나라로 떠나 우리를 아프게 했다.

나는 가톨릭일꾼 ‘이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 없다

‘나’의 가톨릭일꾼 시작은 가난하고 소박했다. 우연인 듯 인연으로 이어진 한상봉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시작한 가톨릭일꾼. 그 첫발은 <가톨릭신문> 접기부터 시작되었다. 합정동에 위치한 좁은 다락방에서 다섯 명도 안 되는 분들이 모여 신문을 접었다. 우리는 항일운동 하는 밀사(密事) 라도 된 듯 ‘격신사’(격월로 신문 접는 사람들)라는 이름까지 지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르 웃으며 시종일관 이야기꽃이 피었다. 접고 또 접어 발송 봉투에 풀을 붙여 끈으로 묶어 방 안 가득 쌓아 놓은 신문을 보면, 저 신문을 읽으며 미소 지을 이름 모를 이들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그리곤 칼바람이 부는 거리로 나가 허리를 펴고 허기를 채우러 가는 우리는 아니, 나는 진짜 ‘일꾼’ 같았다.

가톨릭일꾼 정신은 ‘기도하고 공부하고 일하자’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달 월례미사를 봉헌하면서 그달의 성인들을 기렸다. 성인이 꼭 가톨릭 신자일 필요는 없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과는 다른 가치와 시선을 가지고 살았던, 어두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된 사람이 성인이 아니던가! 그리고 공부했다. 성경, 신학, 교회사, 신비가, 교회 예술 등, 한 선생님이 자신을 갈아 넣어 주시는 양식을 우리는 잘도 받아먹었다. 처음에는 내가 굳건하게 믿고 있던 신앙을 부인해야 하는 아픔과 불안,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런데 뭔지 모르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나를 변화시켰고, 미움받을 용기도 생겼다. 이제 나는 가톨릭일꾼 ‘이전의 나’로 되돌아갈 수 없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고 공부로 머리를 키워도, 삶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공염불이다. 도로시 데이는 글을 쓰고 거리에 나가 반전 운동을 하는 등 많은 일을 했지만,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환대의 집’에서 노숙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로 ‘환대의 집’을 운영하지는 못하지만, 세월호 당시 거리 미사에 참여하고, 신문을 나누고, 집회에 참여하고, 우리의 손과 목소리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목소리가 되어 주었다. 우리의 ‘일’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일상에서 가톨릭일꾼의 정신으로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

우리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듯...

기념미사가 끝나고 은혜의 뜰 정원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기분 좋은 봄밤이었다.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나눔을 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지금이 가장 똑똑하다. 나를 그렇게 만들어 준 사람 중 한 분이 한상봉 선생님이다. 한 선생님께 참 많은 것을 받았다. 지적인 것은 물론이고, 세상과 교회를 보는 시선, 참신앙이 무엇인지, 무엇보다 선생님에게서 ‘겸손’과 ‘가난’을 배웠다. 한 선생님에게서는 '~인 척’을 본 적이 없다. 항상 기.승.전. 하느님인 사람.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교회에 대한 못 말리는 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가톨릭일꾼으로 10년을 살았지만, 내가 일꾼으로 잘 살고 있나?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다. 앞으로 10년은 아는 척, 있는 척, 잘난 척, 일꾼인 척하지 말고, 한 선생님 에게 또 가톨릭일꾼에서 배운 것을 나누고, ‘진정성’ 있는 가톨릭일꾼으로 살아야겠다”고 나누었다.

한 선생님 차례가 되었는데 앞니 4개가 빠져서 웃으면 '영구'가 된다. 그래도 창피해하거나 주눅들지 않는다. 무슨 자신감일까? 한선생님은 가톨릭일꾼을 하면서 가장 부담이 되고 머리 한쪽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형님의 한마디 말이었다고 한다. “너는 아직도 입으로 벌어먹니?”라는. 몸으로 살지 못하고 입으로 사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였단다. 그래서 무주에 귀농해서 농사도 지었단다. 가톨릭일꾼에서도 ‘환대의 집’ 같은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무력감도 있었겠다. 그런데 앞으로 10년은 그냥 본인이 좋은 것, 잘하는 것을 하려 한단다. 예술심리치료사 답게 강의든, 세미나든 PPT도 예술적으로 만들고, 자신이 하는 일 모두가 '예술'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선생님의 결론도 ‘진정성’이다.

어떤이는 가톨릭일꾼이 "한상봉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한다"지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김상식 신부님 말씀대로 한 선생님과 함께 한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헌신과 연대의 손길이 없었다면 지금의 가톨릭일꾼 10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새롭게 시작되는 가톨릭일꾼 10년은 앞에서 한상봉 선생님이 끌면, 뒤에서 우리 일꾼들이 힘껏 밀어주며 “함께” 기도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려 한다. 마지막으로 김유철 선생님의 창립 기념 축시를 사진으로 나눈다.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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