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초대] 우리 신비가: 권정생, 장일순, 정호경, 방유룡, 김홍섭, 구상

한상봉 현장강의 + 동영상 강의 , 7월 7일부터 6강 (현장: 전주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

2026-06-02     가톨릭일꾼

비에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고
절대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미소지으며
하루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조금 먹으며
모든 일에 제 이익을 생각지 말고
잘 보고 들어 깨달아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속 그늘에 조그만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며
동에 병든 어린이가 있으면 찾아가서 간호해 주고
서에 고달픈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의 볏단을 대신 져 주고
남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무서워 말라고 위로하고
북에 싸움과 소송이 있으면 쓸데없는 짓이니 그만두라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운 여름엔 허둥대며 걷고
누구한테나 바보라 불려지고
칭찬도 듣지 말고 괴로움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이글은 일본의 아동문학가 미야자와 겐지의 유작시 〈비에도 지지 않고>(雨ニモマケズ)를 권정생이 번역한 것입니다. 이 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사람처럼 아름다운 영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땅에도 그런 분이 발을 딛고 사셨습니다. 우리와 더불어 호흡을 나누고, 삶이 배인 언어를 나누신 분들입니다. 가장 낮고 가난한 이웃에게로 가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아니, 우리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빗장을 열어주신 분들입니다.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라는 일기를 남긴 김정훈 부제의 아버지이며, <무상을 넘어서>라는 책으로 다가왔던 김홍섭 판사, 아시아의 종교심성으로 하느님을 만난 방유룡 신부, 서학과 동학을 아우른 생명사상가 장일순 선생, 격동하는 역사 한가운데서 영원한 실존을 고민했던 구상 시인, 눈물겹게 아름다운 영혼 권정생 작가, 몸으로 가난과 노동을 살아낸 농민사제 정호경 신부의 이름을 다시 불러 봅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이분들의 이름을 곱게 불러드리며, 그분들의 삶과 영성을 되짚어 봅니다. 한여름, 시원한 매미소리처럼 이분들의 음성을 듣고, 휴가처럼 싱그러운 사람 공부를 해보자고 여러분께 청합니다. 그 길에서 문득 영원한 청춘이신 하느님 그분을 알아보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땅에 뿌리내린 신비가:
김홍섭, 방유룡, 장일순, 구상, 권정생, 정호경

◆ 강사: 한상봉 (가톨릭일꾼 편집장)
◆ 일정: 7월 7일~8월 25일, 6강, 매주 화요일 오후 2시~4시
         
  *여름휴가가 집중되는 2주간은 휴강합니다.        
◆ 장소: 전주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 1층 강의실
◆ 강의 방법: 현장강의 + 동영상 강의
(1) 동영상 링크 주소와 강의록 PPT + PDF 
(2) 현장강의는 형편에 따라 참여하시고(선택사항)
(3) 모든 수강 신청자에게 동영상 강의를 제공합니다.
(4) 동영상 강의는 요일/시간제약이 없이 언제든 반복 시청 가능합니다.

◆ 수강료: 12만원 (가톨릭일꾼프랜즈는 6만원)
[송금계좌] 농협 352-1189-4554-13 한상봉-가톨릭일꾼

◆ 수강신청(아래 주소 클릭해 신청서 작성)
https://docs.google.com/forms/수강신청

◆ 강의 일정

1강 (7/7)  가난했지만 행복한 신비가, 권정생 작가
2강 (7/14) 걸어다니는 동학, 무위당 장일순  
3강 (7/21) 농민이 되어 흙으로 돌아간, 정호경 신부
4강 (8/11) 면형무아, 방유룡 신부
5강 (8/18) 순례하는 영성, 김홍섭 판사
6강 (8/25) 영원을 향한 구도자, 구상 시인

 

권정생 작가 (1937-2007)

<몽실언니>와 <강아지똥>을 지은 아동문학가 권정생, 이현주 목사는 그를 두고 “그의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못나고 병신스럽고 거칠고 쓸쓸하다. 그러나 아름답다”고 했다. 그의 산문집 제목처럼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살아왔지만, 그이의 순정한 마음은 헤아릴 길 없이 깊고 따뜻하다. 날마다 그치지 않는 권정생의 새벽기도는 이렇다.

“하느님은 과연 사람들에게 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분입니까? 당신이 지은 이 세상에서 사람과 뭇 짐승들이 이토록 고통을 겪고 있어도 끝내 침묵만 지키고 있을 셈입니까? 천년이 하루 같은 당신께서는 한 사람의 평생이 잠시 잠깐 지나가 버릴지 모르지만 이토록 약하디 약한 갈대 같은 인생은 고통에 고통으로 나날을 살고 있는데, 과연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십니까?”

무위당 장일순 (요한, 1928-1994)

제2차 바티칸공희외 이후 설립된 원주교구에서 지학순 주교와 동반자로서 교회개혁과 민주화운동의 산파 역할을 하였다. 1980년대에 한살림 운동을 시작하면서 호를 '좁쌀 한 알'로 바꾸고 "하늘, 땅, 물, 공기, 사람, 벌레는 모두 한 생명"이라는 표어를 내세워 자연을 중시하는 생명사상 운동을 펼쳤다.

치악산의 상원사에 들렀을 때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이 대웅전의 불상을 향해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것을 보고 일행이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천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째서 불상을 보고 절을 해요?" 장일순이 껄껄 웃었다. "이 사람아, 성인이 저기 앉아 계시는데 어찌 우리 같은 소인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호경 신부 (1941-2012)

안동교구 1호 한국인 사제이자, 가톨릭농민회 전국지도신부를 역임했던 정호경 신부는 불교 등 아시아 종교심성에 대해서도 밝았으며,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특별히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했다. 무위당 장일순의 생명사상에 동조해 교회 안에서 생명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던 그는 1994년부터 ‘입품 그만 팔고 몸으로 살련다’고 작심하고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에서 직접 집을 짓고 낮에 농사짓고 밤이나 겨울 농한기에 책을 쓰며 ‘돈 없이도 즐겁게 사는 삶’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은 가난한 시골 여자 마리아를 통하여 짐승의 밥통에서 나셨고, 가난한 노동자로 사시다가, 가난한 갈릴래아 사람들의 아픔에 동참하신 결과, 백성을 선동하고 왕이 되려고 했다는 죄로 십자가 참형으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을 통해서,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는가를 분명히 확인합니다. 저 낮은 곳에,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 하느님이 계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무아 방유룡 신부 (1900-1986)

방유룡 신부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창설자로서, 유불선(儒佛仙) 문화가 녹아든 한국적 정신 토양에 맞는 영성과 수덕체계를 세워 초기 신앙인들의 창조성과 영성의 맥을 이었다. 

“오늘을 사는 세상 사람들은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들을 무신앙인 혹은 무종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물질과 과학이라는 두 신을 함께 섬기고 있는 듯하다. 상대적으로 인간의 드높은 정신과 영성은 억압되고 무시되고 고갈되어 가고 있으며, 기존의 종교들은 인류의 성장과 진화라는 우주적 목표에 힘찬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김홍섭 판사 (바오로, 1915_1965)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김홍섭은 1941년 4월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단발령을 거부하였고, 해방 후에는 서울지검 검사에 임명되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등을 수사했지만 이내 사직하고 뚝섬으로 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김병로 대법원장의 요청으로 다시 법조계로 돌아왔다. 

1961년 12월 광주고등법원장으로 있으면서 경주호 납북기도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피고인 3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뒤 5분가량 머리를 숙이고서는 곧이어 피고인들에게 "하느님의 눈으로 보시면 재판장석에 앉은 나와 피고인석에 있는 여러분 중에 누가 죄인인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고 말했다.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한 김홍섭은 자신이 판결한 사형수의 대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형수의 유가족을 돌봤다.

구상 시인 (요한 세례자, 1919~2004)

평생 시인이자 교육자, 언론인으로 살아가며 가톨리시즘을 바탕으로 6·25전쟁과 4·19혁명, 군부 독재 시기를 거치며 한국 현대사의 한가운데를 살면서 전쟁의 폐허와 조국의 쓰라린 현실을 기록했다. 또한 하느님 안에서 영원을 노래한 시인이며 신비가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하고 읊었지만/ 나는 마음이 하도 망측해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고 어쩌구커녕/ 숫제 두렵다. (‘고백’ 일부)

이제 머지않아 나는/ 저승의 관문, 신령한 거울 앞에서/ 저런 추악망측한 나의 참 모습과/ 마주해야 하니 이 일을 어쩌랴!// 하느님, 맙소사! (‘임종고백’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