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조광호 신부의 동검도 이야기
1.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고 부처님오신날. 겹경사가 이뤄진 날입니다. 동검도 채플 사제관 앞에 서니, 세상은 한없이 고요합니다. 평풍처럼 둘러선 마니산의 등고선이 오늘은 더욱 선명합니다. 바닷물이 지나간 갯골은 은빛으로 젖어 있고, 그 앞에는 아카시아꽃이 만발하여 말없이 향기를 토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바다와 산과 갯벌이 이루어 낸 이 고요 속에서, 오월의 마지막 주일 아침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가장 순한 빛과 향기와 소리를 들려줍니다. 아무 움직임도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바라보면, 그 고요 한가운데 생동하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갯벌은 숨을 쉬고, 갯골은 은밀히 흐르고, 아카시아 향기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사제관 창가까지 올라옵니다. 바람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지나가고, 햇빛은 풀잎 위에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이 아침, 자연은 우리에게 성령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령의 숨결을 느끼게 합니다. 성령은 언제나 설명보다 먼저 숨결로 오십니다. 논리보다 먼저 따뜻함으로 오시고, 말보다 먼저 생기로 오십니다. 닫힌 마음에 바람처럼 스며들고, 메마른 영혼에 향기처럼 머무르며, 지친 삶 안에 다시 살아갈 힘을 불어넣으십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합니다. 사도들 위에 불꽃 모양의 혀가 내려앉고, 두려움에 닫혀 있던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던 날입니다. 그러나 성령강림은 단지 먼 옛날 예루살렘의 사건만이 아닙니다. 오늘도 성령은 우리의 하루 안에 오십니다. 우리의 숨 속에, 우리의 말 속에, 우리의 관계 속에, 우리의 지친 몸과 흔들리는 마음 속에 조용히 내려오십니다.
2. 우리는 매일 많은 에너지를 쓰며 살아갑니다. 아침을 깨우는 커피 한 잔, 스마트폰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정보, 해야 할 일과 만나야 할 사람들, 끝없이 비교하고 경쟁해야 하는 현대의 속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자주 말합니다.
“기운이 없습니다.”
“마음이 지쳤습니다.”
“살아는 있는데 생기가 없습니다.”
에너지는 넘쳐나는데, 정작 영혼의 생기는 메말라 있습니다. 정보는 많지만 지혜는 부족하고, 자극은 많지만 감동은 줄어들었습니다. 불빛은 밝아졌지만 내면의 빛은 희미해지고, 소리는 커졌지만 마음을 살리는 깊은 울림은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성령을 기다립니다. 아니,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신 성령을 다시 알아차려야 합니다. 고대 성서의 사람들은 이 생명의 근원적인 숨결을 '루아흐(Ruach)'라고 불렀습니다. 루아흐는 바람이고 숨이며, 하느님의 생명력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만물을 살게 하는 힘입니다. 그리스어 전통에서는 이를 '프뉴마(Pneuma)'라고 불렀습니다. 숨결이며 영이고, 생명을 움직이는 거룩한 호흡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성령을 파라클레토스(Parakletos), 곧 우리 곁에 머물며 돕고 위로하고 지켜 주시는 보호자요 협조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를 살려 내는 하느님의 숨결입니다. 성령은 삶을 다시 부드럽게 만들고,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하며, 관계를 다시 향기롭게 하는 거룩한 생기입니다.
3. 동검도 이른 아침의 고요를 바라보면 그 사실을 알 것 같습니다. 갯벌은 스스로 빛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젖습니다. 아카시아꽃은 스스로 향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피어나 향기를 건넵니다. 산은 말하지 않지만 묵묵히 서 있고, 바다는 웅변하지 않지만 끝없이 드나들며 생명을 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그러해야 합니다.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숨결을 받아 조용히 향기를 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 의로 세상을 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부드러움으로 곁을 살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말로만 믿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기색으로 복음을 드러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거친 숨을 고르는 일입니다.
분노의 숨을 사랑의 숨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불안의 숨을 평화의 숨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조급함의 숨을 인내의 숨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상처의 숨을 자비의 숨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힘만으로는 그렇게 살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닫히고, 쉽게 메마르며, 쉽게 날이 섭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면, 굳은 마음에도 온기가 돌고, 지친 마음에도 다시 길이 생깁니다. 성령은 우리를 억지로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서서히 숨을 바꾸어 주시는 하느님의 부드러운 능력입니다.
한의학에서는 몸을 지키는 기운을 '위기(衛氣)'라 하고, 마음을 부드럽게 조화시키는 기운을 '화기(和氣)'라 합니다. 이것을 신앙의 언어로 다시 말한다면, 성령은 우리 영혼을 지키는 거룩한 위기이며, 우리 관계를 따뜻하게 하는 하느님의 화기입니다.
세상의 거친 바람이 우리를 흔들 때 성령은 우리 안을 지켜 주시고, 미움과 불안이 마음을 굳게 만들 때 성령은 다시 우리 안에 부드러운 숨을 불어넣으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차가운 의무가 아닙니다. 신앙은 숨을 바꾸는 일입니다. 신앙은 기운을 바꾸는 일입니다. 신앙은 내 안에 하느님의 생기가 흐르게 하는 일입니다.
4. 성령의 열매는 삶의 향기입니다. 그 사랑의 생기가 흐르면 사람은 달라집니다. 얼굴의 빛이 달라지고, 말의 결이 달라지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같은 일을 해도 원망보다 감사가 많아지고, 같은 고통을 지나도 절망보다 기도가 깊어 지게 될것입니다. 같은 사람을 만나도 판단보다 이해가 먼저 오고, 같은 하루를 살아도 불평보다 찬미가 먼저 깨어 날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부릅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의, 성실, 온유, 절제. 이 아홉 가지 열매는 우리가 억지로 만들어 내는 도덕적 장식이 아닙니다. 성령의 숨결이 우리 안에 오래 머물 때 자연스럽게 맺히는 삶의 향기입니다.
나무가 뿌리 깊이 물을 머금으면 때가 되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 우리 영혼도 성령의 숨결을 깊이 들이마시면 삶의 자리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은 닫힌 마음을 열어 줍니다.
기쁨은 고단한 삶에도 빛을 남깁니다.
평화는 흔들리는 마음을 고요히 붙들어 줍니다.
인내는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견디게 합니다.
친절은 타인의 상처 앞에서 목소리를 낮추게 합니다.
선의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합니다.
성실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진실하게 살게 합니다.
온유는 힘을 가졌으나 함부로 누르지 않는 품격입니다.
절제는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 욕망을 다스리는 지혜입니다.
이런 사람은 향기로운 사람입니다. 큰소리치지 않아도 곁에 있으면 마음이 놓이는 사람입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사람입니다. 신앙을 과장하지 않아도 그의 삶에서 하느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오늘 동검도 채플의 아침은 그런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조용히 보여 줍니다.
아카시아꽃은 향기를 움켜쥐지 않습니다. 갯골은 은빛 물길을 자기 안에 가두지 않습니다. 바람은 자기 지나간 자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빛은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지만, 닿는 모든 것을 밝게 합니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도 그러 할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하느님의 생명을 흘려보내고. 상처를 더 크게 만들기보다 조용히 싸매 줄것입니다. 어둠을 탓하기보다 작은 등불 하나를 켭니다. 세상을 이기려 하기보다 세상을 살리는 사랑의 기운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시 기도합니다.
성령이시여, 우리 안에 오소서.
우리의 거친 숨을 고르게 하소서.
메마른 마음에 생기를 주소서.
차가워진 말에 온기를 주소서.
상처 입은 기억에 평화를 주소서.
지친 하루에 다시 기쁨을 주소서.
우리로 하여금 향기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만나는 사람에게 생명의 기운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사랑의 숨결을 나누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세상이 지치고 어두울수록 더 부드럽고 더 맑은 빛을 품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5. 주님을 마음 안에 모실 때 열매는 맺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거창한 이름을 얻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숨결로 오늘 하루를 사는 일입니다. 성령의 바람에 마음을 열고, 내 안에 맺힌 작은 열매 하나를 이웃에게 건네는 일입니다.
오늘 이 성령강림주일 아침, 동검도 채플의 고요 속에 홀로 서서, 주님의 숨결과 함께 숨을 쉬어봅니다. 하느님은 바람처럼 오시고, 향기처럼 머무르시며, 빛처럼 우리를 살리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숨을 고릅니다. 내 숨이 아니라 하느님의 숨을 들이마십니다.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생기에 나를 맡깁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조용히 세상 속으로 걸어 가야 합니다.
사랑의 향기를 지닌 사람으로.
기쁨의 빛을 품은 사람으로.
평화의 숨결을 나누는 사람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향기로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갈 수만. 있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 한 가지, 주님을 내 마음 안에 모시고 그분과 함께 살아갈 때만 가능 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내 숨 속에, 내 들숨과 날숨 속에 그분의 숨을 느끼며 살아 갈 수 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겸손되이 간절한 마음으로 은혜를 구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도, 기쁨도, 평화도, 인내도, 온유도, 절제도 결코 내 의지만으로 맺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닙니다. 절은시절 나는 한 때 내 노력으로내 힘으로 될 것이라 은근히 기대 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나의 착각이고 나의 무지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뿌리를 내린 영혼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결실입니다.
나무가 스스로 태양을 만들 수 없듯이, 우리도 스스로 생명의 빛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나무는 다만 태양을 향해 가지를 열고, 빛을 받아 꽃을 피우며, 때가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그러합니다. 주님을 향해 마음을 열 때, 그분의 빛이 우리 안에 스며들고, 그 빛 안에서 사랑의 꽃이 피며, 성령의 열매가 조용히 익어 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주님과 함께 머무는 일입니다. 그분을 마음 안에 모시고, 그분의 숨결로 하루를 살며, 그분의 빛을 향해 내 삶의 가지를 조용히 펼치는 일입니다. 오늘도 동검도 채플의 고요한 아침처럼, 우리 마음 안에 주님께서 머무르시기를 빕니다.
그분의 빛을 향해 우리의 영혼이 꽃피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삶이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머문 자리마다 주님 사랑의 향기가, 우리가 지나간 자리마다 언제나 그윽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향기가 늘 남을 수 있도록 더 온유한 따스함으로, 우리가 지나는 자리마다 하느님의 향기가 오래 오래 남기를 빕니다.
조광호 신부
1967년 천주교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하여 서울 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신부가 된 다음 독일 뉘른베르크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천주교 주교위원회 출판국장으로 천주교 200주년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독일유학 후 한국현대미술 50년전, 일본 국제 현대미술전 및 국내외(독일, 미국, 오스트리아) 10여 차례 개인전과 여러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월간 영성문화교양지 <들숨날숨>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현재 강화 동검도 채플과 갤러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대표적인 미술 작품으로는 부산 남천 성당 유리화와 서울 2호선 당산철교 외벽의 벽화, 서소문 현양탑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그대 문의 안과 밖에서>, <꽃과 별과 바람과 시 - 조광호 신부 그림 에세이>, <얼굴 - 조광호의 그림과 글>, <Angel - 조광호 신부 명상 Drawing>, <조광호의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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