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문화영성강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처럼 사랑하는 것

동영상 강의 +현장강의, 평화의 전당, 5월 6일부터 6강,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2026-04-14     가톨릭일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처럼 사랑하는 것”
-관습적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건너가는 법

예전에 어느 본당에서 신앙강좌를 진행하면서 천당지옥설에 관한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런 천당과 지옥은 없다고 말입니다. 우주 공간 어디쯤 죽은 이들이 복락을 누리고 살만한 천당은 물론이고, 마그마가 들끓는 땅 깊은 곳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지옥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은 단테가 신곡에서 소개한 그럴듯한 상상세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가톨릭교회에서만 받아들이고 있는 연옥 역시 천당 가기에는 부족하고 지옥에 보내기는 과하다고 여겨지는 대부분 사람들을 위한 교회의 배려가 낳은 것이라 하였지요.

하느님이 정말 대자대비하신 분이라면, 어찌 한 인간을 영영세세 지옥불에 가두어 둘 수 있겠습니까? 이슬 같은 생애를 통해 지은 업보에 따라 영복(永福)과 영벌(永罰)이 주어진다면, 그보다 불공정한 처사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몇 개 따먹은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만큼 부당한 일이라 생각하였지요. 사람이란 고분고분하다가도 울컥하고, 착하디착한 이들도 때로 욕심을 부리고 싶은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벽돌처럼 단단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때 이런 이야기도 하였지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은, 그래야 영생(永生)을 얻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런데 영생을 얻기 위해 바치는 기도와 공덕이 오히려 그 사람의 구원을 심각하게 가로막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고요? 구원을 받으려면 마음이 가난해야 하는데, 영생을 바라는 것보다 더 큰 욕심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불교의 지장보살(地藏菩薩)은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면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했답니다. 만일 지옥불에서 고통받는 중생이 남아있다면 저도 지옥에 남아 그들을 보살피겠다는 서원하는 보살입니다. 이 정도 되어야 ‘영생’을 얻을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장보살은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보살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는 모든 자비행(慈悲行)이 결국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게 무슨 사랑이겠습니까?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하느님은 이 세상과 인간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스스로 하느님이심마저 버리시고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처럼 온전히 비울 줄 알아야 구원받을만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영생을 바라는 사람처럼 욕심 사나운 사람은 없다고 말입니다.

사랑은 그냥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해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문득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게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능동적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이들은 사실상 하느님 자비의 바다에 빠진 것입니다. 요한복음서에 따르면,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므로, 사랑에 빠진 이들은 하느님께 빠진 이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에 <공동선>에 써 보낸 원고의 일부입니다. 제목은 "천당과 지옥, 내세보다 중요한 이승"입니다. 나중에 원고 전체를 공개해 드릴 생각입니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를 공공연히 본당 공동체에서 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이승에서 무병장수 행복하게 살고, 죽어서 천당가고 싶어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적잖게 때문입니다. 지옥이 있어야 악인이 대가를 치르고, 천당이 있어야 선하게 고생스럽게 사는 이들에게도 보상이 따르는 게 아니냐는 것이지요. 보상이 없으면 희생하지 않을만한 신앙이라면, 그 정도 사랑이라면 복음서 말씀처럼 "이방인들도 하는것"이요, 여느 사람이라도 다 하는 공덕이겠지요. 하지만 천당지옥설에 관한 전통적인 해석에 어긋난 발언을 한다는 것은 신앙공동체에서 자칫 왕따 당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발언입니다.

그래도 "하지 않을 수 없어" 용기 내어 여러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나누려고 합니다. 마커스 보그가 쓴 책들이 영감을 주고, 내가 현실 교회 안에서 경험한 것이 바탕이 되어 이야기 하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하느님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주제로 내어놓은 이번 강의 신청자가 열 명도 채 되지 않아요. 이게 우리 교회 현실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너무 낯선 주제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그동안 지인들에게 큰 신뢰를 주지 못했나, 강의가 진부하고 형편 없나, 별의별 생각이 다 뒤따라 옵니다.

일단 4월 29일로 예정되었던 첫 강의를 한 주 미루어 5월 6일에 시작하기로 바꾸었어요. 좀 더 많은 분들을 강의에 초대하고 싶어서요. 암튼 여러분의 호응을 기다리면서 교회개혁을 위한 신앙의식 성장을 위해 간간하게 화살기도를 날려봅니다.

▼ 주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처럼 사랑하는 것”

-관습적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건너가는 법
▲ 강사: 한상봉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강의방식: 현장강의 + 동영상 강의
▲ 일정: 2026년 5월 6일~6월 17일(6강)
           매주 수요일 오후 2시~4시
           (강의 동영상은 편집해서 금요일에 제공합니다)

▲ 장소: 전주 치명자산 성지 평화의 전당 3층 세미나실 또는 동영상 강의
▲ 참고서적: <마커스 보그의 고백>, 마커스 보그, 비아, 2025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 마커스 보그, 2017
▲ 수강료: 10만원 (가톨릭일꾼 프랜즈 5만원)
★ 수강하시는 모든 분을 단톡방에 초대하고
    강의 동영상과 강의자료(PPT/PDF)를 보내드립니다.

▲ 수강신청:
1. 아래 링크 주소를 클릭하고 신청서 작성후 수강료 입금
https://docs.google.com/forms/수강신청

2. 이름/휴대폰번호/이메일 주소를 문자로 보내고 입금하시면 됩니다.
    010-8445-2736 (한상봉)

입금계좌: 농협 352-1189-4554-13 (예금주: 한상봉-가톨릭일꾼)

▲ 강의 내용
1강 5/6 “내 신앙을 의심하라”-지적, 정치적, 종교적 회심
2강 5/13 “천당과 지옥, 내세를 요청하는 종교”-신비체험과 내세에 관하여
3강 5/20 “성경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가”-성경, 거룩한 은유
4강 5/27 “성경이 저항적 문서인 까닭”-십자가 죽음과 성경의 정치
5강 6/10 “원수조차 사랑할 수 있다면”-예언자와 비폭력 저항
6강 6/17 “하느님 사랑은 조건부인가”-하느님처럼 사랑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