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여성의 목소리, 알면 무겁고 아파서

이정화 칼럼

2026-04-14     이정화

지난, 성금요일 밤. KBS TV에서 독립 영화 <목소리들>을 방영했다. 이 영화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로, 나는 작년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린 시사회에 초대되어 본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인터뷰에 응하신 할머니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떠올라서 가슴에 돌덩이를 올린듯 답답하고 무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를 예수님이 돌아가신 성금요일 밤에 다시 보게 되니, 4.3의 의미가 더 새롭게 다가왔다.

내가 제주 4.3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딸의 권유로 <지슬>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이다. ‘지슬’은 제주도 말로 '감자'라고 한다. 흑백으로 찍은 그 영화는 내게 충격이었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참혹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모르고 살았을까? 라는 질문과 함께, 나의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으로 시달렸다. 그 후 제주 4.3평화공원을 방문했고,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와 김석범 작가의 글을 읽고 강연도 들었다. 작년 청계 광장에서 열린 여자 남자 수도회 주최로 열린 77주기 추모 미사도 참석했다.

증언이자 기억인 목소리들

제주도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나는 4.3 사건을 알지 못할 때는 돌과 여자와 바람이 많은 아름다운 섬 ‘삼다도’, 바다 색깔이 아름다운 우리나라 최고의 신혼여행지 정도로 알고 있었다. 왜일까? 그토록 참혹했다는 6.25 전쟁, 뒤늦게 진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5.18 광주 항쟁과 달리, 4.3은 올해로 78년이 되었는데 무엇이 진실을 밝히길 꺼리는 걸까? 영화 <목소리들>은 죽음의 섬에서 살아남은 여성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은폐된 진실을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하는 귀중한 증언이자, 기억이다.

 

여성은 피해자가 아닌, 삶의 주역

영화 첫 장면은 제주 표선리 바닷가 파도에 씻기는 돌들의 자글거리는 소리와, 여러 사람이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배경에 깔린다. 감독 지혜원은 이 사운드는 영화를 위해 인터뷰에 응한 모든 할머니의 ‘목소리들’을 합친 것이라 했다. 이 영화가 다른 4.3 이야기와 다른 지점은 ‘여성’의 시각에서 4.3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아가 여성을 4.3의 ‘피해자’로만 보지 않고, 7년 7개월 동안 4.3이 끝난 후, 남자들이 없는 가정에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폐허가 된 중산간 마을에서 다시 공동체를 일으킨 주역으로서, 여성들이 이루어낸 삶의 이야기이다.

나는 제주에 가면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이, 까만 ‘돌담’이다. 왠지 정감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돌담은 4.3 당시에 주민들과 유격대와의 연계를 차단하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하는 용도로 주민들을 차출하여 ‘성담’으로 쌓았다고 한다. 4.3이 끝난 후 이 성담은 여성들이 ‘살기 위해서’ 그 무거운 돌을 이고 지고 또다시 밭담을 쌓는다. 이 기막힌 사연을 현지인도 잘 모른다고 한다. 우리가 제주 여행할 때 소위 ‘포토 존’이라고 하는 곳은, 거의 4,3 당시 ‘집단 학살지’이다.

이 영화는 인터뷰 형식을 넘어 4.3 연구자 조정희씨를 따라가면서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네 명의 할머니 모두, 처음에는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김은순 할머니는 결국 인터뷰에 응하지 못하고, 연신 취재진에게 “미안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인다. 김은순 할머니는 78년 전, 그날 그때에서 한 발 짝도 나오지 못하고, 환자가 되어 살고 있다. 4.3 이야기만 나오면 발작하며, 이빨이 부디 칠 정도로 턱을 덜덜 떠는 김은순 할머니.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언이 있을까? 그녀는 언니와 함께 파출소에 있었는데, 자기는 남고 언니만 끌려가서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토산리 달빛 사건,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김은순 할머니의 입을 굳게 닫게 만든 사건의 배경에는 “토산리 달빛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토벌대와 경찰들이 여자들을 잡아갈 때, 얼굴을 달빛에 비춰보고 ‘’예쁜 여자‘들만 잡아갔다고 한다. 잡아간 여자들을 강간하고 사실이 탄로 날까 봐, 바닷가에서 죽인 것이다. 아마 김은순 할머니는 그것을 목격한 것 같다. 그 후에도 그런 식으로 젊은 여성들을 끌고 가서 욕을 보이고 집단으로 죽였다고 한다. 그것이 두려워 원하지도 않은 결혼을 하는 여성, 그들에게 당한 것을 말하지 못하고 살아온 여성들의 숨막히는 삶은 차라리 ‘죽음’이었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할머니들의 물건에 삐뚤빼뚤하게 자필로 쓴 ‘이름’이다. 모두 할머니들의 노동의 흔적이 묻어있는 물건에 적혀있다. 이들에게 이름이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 4,3 위령비에 희생된 여자들의 이름은 거의 없다. ‘아무개의 처’, ‘아무개의 둘째 부인’, ‘아무개의 1녀, 2녀‘라고 새겨져 있을 뿐이다. 4.3 특별법이 제정되고 피해자 조사가 진행되어도, 여성 피해는 ’0‘건으로 기록되어 있고, 할머니들의 피해는 고려 대상이 아니란다. 앞으로 갈 길이 너무나 멀다. 이 영화가 그 귀중한 계기를 마련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1948년부터 7년 7개월 동안, 제주도는 죽음의 섬이었다. 대한민국 군대와 경찰이 공산 빨치산 소탕 작전이라는 명목으로 제주 주민 3만여 명을 학살하고 집을 불태웠다. 제주 4.3 피해자의 상당 부분은 여성들이었지만, 그들이 입은 피해는 오래도록 알려지지 못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당한 성폭력을 발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할머니들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4.3의 여성 피해자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김용자 할머니는 "공부를 해서 판사가 되어, 어떻게 아버지가 끌려갔는지, 왜 4.3이 일어났는지 밝히고 싶었다"고 울분을 토하신다.

치유는 기억을 넘어 증언으로

지혜원 감독은 인터뷰를 하면서, “할머니들이 말씀을 하시니 치유가 되는구나”를 느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부하던 할머니들이 서서히 묻지도 않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나중에는 “말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했단다. 그리고 말문을 닫은 김은순 할머니의 아드님은 “우리 엄마가 4.3 피해자인 줄 이제야 알았다.”고 했단다. 고통에 대한 치유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증언‘이 필요하다.

이 글 속에 할머니들이 겪으셨던 죽을 만큼 힘들었던 삶과, 오랫동안 봉인되어 온, 제주 여성들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한 고통을 쓰는 것은 불가능 하다. 하지만 그 세월을 굳건히 살아오신 할머니들이 4.3의 ’증인'이고, ’목소리들‘이다. 이 영화는 침묵 속에 잠겨있던 그 목소리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이다.

 

침묵으로, 눈물로, 한숨으로 말한 상처

이 영화의 마지막에 연구자 조정희는 말한다. “4.3에서는 공식적으로 여성의 피해가 밝혀진 것이 별로 없다. 저는 여자들의 희생이 사실상, 국가가 인정하는 희생자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는 사실이 정말 가슴 아프다. 국가가 인정한 희생자의 범주는 사망자, 행불자, 수형인, 후유 장애인으로 국한되어 있다. 여성이 성희롱을 당했든, 성폭력을 당했든, 원치 않는 결혼을 해서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든, 4.3 희생자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다. 심지어 여성들은 위령비에 제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공식 역사로 기록되지 않은 것들은 시간과 함께 모두 사라진다. 나는 그게 두렵다. 처음에는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할머니들은 침묵으로, 눈물로, 한숨으로 그들의 상처를 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외면한 것은 아닌가? 역사는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그분들의 ’목소리‘는 제주의 파도와 돌과 바람과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는다.”

이 영화는 4,3사건이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알면 무겁고 아파서, 양심에 찔려서, 부끄러워서, 나와는 상관없다 며 깊숙이 넣어 덮어둔 상처를 꺼내어,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 용기있는 도전이다. 숨긴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그러니 이 부활 시기에 <목소리들>을 꼭 한 번 보시고, 의미있는 부활 보내시길 바란다.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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