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듣는 산상수훈

김선주 칼럼

2026-04-06     김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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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평안이 도착했습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평화의 강물이 흘러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멈추었습니다. 멈추어 서서 짐을 내려놓듯, 생각을 내려놓고 말을 내려놓았습니다. 오래 걷는 것처럼 말 없음의 시간을 될 수 있으면 오래 가져갔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먹는 것을 정지시킴으로 시작됐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체중 감량을 위해 많은 것들을 정지시켰습니다. 식사량을 최대한 줄이고 육식과 기름에 튀긴 음식, 면 종류의 음식을 끊었습니다. 외식의 위험이 있는 외부 활동과 모임을 차단했습니다. 그러잖아도 외부인과의 만남이 없는 나는 더욱 수도승처럼 이 세계와 단절하며 살았습니다. 집에서 내 손으로 직접 끓인 된장국과 김치 하나로 한 끼를 해결하며 하루를 지탱시켰습니다. 이젠 식당 음식이 거부감이 듭니다. 그 결과 체중은 청년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돌아보니 청년 시절 빈곤한 내 정신은 알 수도 없이 어려운 책의 행간을 헤매고 있었고, 제대로 먹지 못해 깡마른 몸은 최루탄 자욱한 길거리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세계와 존재의 문제에 날 선 긴장으로 살이 찔 새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과 사람이 아파서 맨정신으로 눈 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취해 있었다고 나는 변명을 합니다. 그때 앨범을 보면 키도 작은 데다 살집 하나 없이 깡마른 체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래도 청년 때의 정신이 가장 빛났습니다.

목사가 된 후로 아랫배에 지방살이 찌고 생각이 고루해지는 것 같아 불안감과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내 정신에 기름때가 끼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가 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재기 발랄하고 자유롭게 풍성한 바다를 헤엄치던 깡마른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이제 그 몸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몸이 예전으로 돌아가니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생각이 단순해지고 맑아졌습니다. 복잡했던 문제들이 단순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가 여유로워진 것입니다. 많은 시간 뜨겁게 기도하지 않아도 기도가 됩니다. 눈만 감아도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밥 먹을 때 잠시 눈만 감아도 그 음식에 담긴 생명의 아름다움과 거기에 얽혀 있는 수많은 관계가 온몸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눈을 감지 않아도 보는 것마다 기도가 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기도가 됩니다. 기도는 말로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아름답고 기쁨으로 풍성하며 사랑스럽습니다. 윤석열과 트럼프에 대해서도, 전광훈과 손현보 같은 류에 대해서도 분노의 감정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연민과 긍휼의 마음으로 인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요동시키지 않고, 거친 말을 사용하지 않고 화낼 수 있는 방법이 나도 모르게 생겨난 것 같습니다.

비로소 산상수훈이 새롭게 열렸습니다. 그래그래, 무슨 뜻인 줄 알겠어. 잘 알아, 했던 그 산상수훈이 머리가 아닌 몸으로 들어왔습니다. 전혀 새로운 맛입니다. 뜻이 달라진 게 아니라 그 느낌과 맛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을 통째로 외웠습니다. 아니 산상수훈을 온몸에 새겨 넣었습니다. 미음완보(微吟緩步-천천히 걸으며 나직하게 읊조림)하는 산상수훈이, 온몸에 연결된 신경회로를 통해 많은 물소리를 흘려보냅니다. 맑고 풍요로운 물소리,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감동이 온몸에 전율을 일으킵니다. 영혼이 살아야 몸이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몸이 살아야 영혼이 산다는 걸 온몸으로 압니다.

이제 다른 책은 쓰지 않기로 했는데, 이 느낌을 감당할 수 없어서 책을 한 권 더 쓰고 싶은 욕구가 나를 수면 위로 밀어 올립니다. <몸으로 듣는 산상수훈>이라는 가제를 정해놓고 원고를 쓰기 시작하려니 걱정부터 앞섭니다. 책이 팔리지 않는 이 시대에, 더욱이 기독교 출판계에 이단아로 찍힌 내가 책을 내서 출판사에 부담을 주게 될까 봐 주저합니다. 또 죄 없이 몇 그루의 나무가 나를 위해 쓰러져야 하는가, 생각하니 그 또한 부질없어 보입니다.

해 지는 저녁, 이제 꽃 피울 준비를 서두르는 나뭇가지 사이를 산상수훈을 읊조리며 천천히 걷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하느님으로 충만한지 온몸으로 느끼며 걷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지혜가 솔바람처럼 몸으로 들어옵니다. ‘영혼 구원‘이라는 교리적 허상이 걷히고 몸으로 들어오는 하느님 나라, 그 나라는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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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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