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큰 애기 현지

장진희의 시와 산문

2026-02-02     장진희
사진=장진희

화엄사성보박물관 옆길에 8인승 SUV 차가 섰다. 뒷좌석에서 덩치 큰 ‘사부님’이 내리더니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내려 조수석 옆에 댄다. 오른쪽 팔과 다리를 쓸 수 없는 현지가 가까스로 차에서 내려선다. 차에서 내린 다른 사람들 셋이서 현지를 부축하거나 지켜보며 현지를 휠체어에 앉힌다. 운전자는 주차장에 차를 대러 가고 계단 하나를 올라 성보박물관 뒷마당으로 휠체어를 내려놓기 위해 네 사람이 휠체어를 들어올린다. 겨울 한복판인데 날은 봄날처럼 따숩고 화창하다.

성보박물관에서는 ‘화엄사전통사경원 회원전’이 열리고 있다. 범이의 작품도 걸려 있는데 범이가 오늘 전시회를 지키는 당번이다. ‘곡성군 죽곡면에서’라고 맨 위에 쓴 방명록 페이지에 여섯 사람이 차례로 이름을 쓴다. 현지는 왼손으로 제 이름을 이쁘게 써넣는다. 이 일곱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불교공부모임’을 같이하는 이웃이다. 그 중 한 사람인 열이의 외양간 자리에 새로 지은 가건물에서 몇 년 동안 모임을 했는데, 현지가 쓰러지고 열 달쯤 뒤에 요양병원에서 이 동네로 데려온 뒤로는 현지 집에서 모임을 갖는다.

‘불교공부모임’은 말이 공부모임이지 따로 책을 읽고 공부하지 않는다. 술도 안 마시는 열이가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내놓는 ‘붓다주’를 한 잔씩 따라놓고 유튜브의 법문 영상을 틀어놓거나 그도 그만두고 재잘대고 웃고 떠든다. 현지의 귀가 가장 따가운 날이다. 많은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린 현지가 얘기를 하기 위해 단어를 생각해내느라 머리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날이기도 하다. 가장 많이 웃는 날이기도 하고, 신통하게 노래 가사는 안 잊어버린 현지가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날이다.

현지는 참으로 열심히 감동적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40대 중반에, 차가 접근할 수 없는 오래된 마을 집을 사서 귀농한 뒤 일일이 물건을 져 나르며 농사를 지었다. 토종 콩 수십 가지를 약 한 번 안 치고 손으로 풀 매주며 가꾸고 거두고 골라내어 토종 콩 종자를 나누어주었다. 마을 부녀회장을 맡아 늙어가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행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장만했다. 농민회, 풍물패, 태극권 등 지역에서 일꾼이 필요한 모임에도 기꺼이 직책을 맡아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했다.

현지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든든했다. 모임을 준비하고 야무지고 따뜻한 말솜씨로 진행을 맡고 끝난 뒤에는 설거지에 뒷정리까지 늘 웃으면서 즐겁게 했다. 불의에는 분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몸 아픈 사람이 있으면 손수 농사지은 녹두로 죽을 쑤어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현지 덕을 많이 보고 살았다.

그런 현지가 2년 전 봄날 쓰러졌다. 이른 낮 더위 끝에 저녁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같이 모임에 가기 위해 기다리던 범이, 모임 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란다. 봄날치고는 덥다 싶을 만큼 따뜻한 날이어서 농사 준비하는 밭에서 땀깨나 흘렸을 것이다. 저녁 모임에 가기 위해 세면장에서 씻고 나오다 뇌출혈로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응급실로 실려가고, 온갖 호스를 꽂고, 의식도 없고...... 우리는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현지는 물속에 잠겨 있는 것 같은 시간을 오래 지냈다. 순천의 큰 병원에서 가족들이 있는 대구의 재활병원으로 옮겨졌다. 사람을 알아보고 우리가 얘기하면 웃기도 했다. 말도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조선팔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동안 현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동안 범이와 ‘사부님’과 마을 사람들은 사람 없는 현지 집에 가서 마당에 풀을 베 주기도 하고 눅눅한 구들방에 불을 넣어 놓기도 했다.

간병비가 엄청나게 나왔다. 밥 떠먹는 것부터 대소변을 해결하는 것까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가족들 사이에서는 ‘요양원’ 얘기가 나왔다. 그 뒤 현지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우리는 조바심이 났다.

‘사부님’은 현지가 쓰러진 직후부터 “현지 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했다. 울컥 눈물이 났었다. ‘사부님’의 현지에 대한 사랑의 색깔을 우리는 짐작할 수 없다. ‘태극권’을 하겠다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가 두세 시간씩 지도하는 ‘태극권 사부님’. 그래서 우리는 ‘사부님’이라 부른다. 부처가, 보살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사람들이 부처다 하더니 결국 거처를 우리 동네로 옮겨와 고된 하루 일을 끝낸 사람들과 태극권을 했다. 차를 따서 덖어 말리고 일손이 부족한 감자밭, 토란밭에서 같이 일했다. 무겁게 진흙이 붙어 있는 토란에서 흙을 털어내고 무거운 감자, 토란 자루를 져 나르고 하며 같이 살았다.

농민회 사람들이며 마을 사람들이며 모두 현지가 우리 동네로 오기를 바랐다. 뇌출혈로 쓰러진 환자의 재활치료 경험이 있는 ‘사부님’의 뜻을 가족들에게 조심스럽게 밝혔다. 사람들은 거동이 불편한 현지가 생활할 수 있을 만한 집을 알아보았다. 더욱 꼼꼼하게 집을 손봤다.

쓰러진 지 열 달 만에 드디어 현지가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살림을 들이고 반찬을 해다 놓고, ‘사부님’이 태극권 수업 때문에 집을 비워야 하는 날에는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현지를 돌봤다. 그리고 비록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식탁에서 같이 밥을 먹는 날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라도 같이 밥 먹을 수 있고 같이 웃을 수 있고 같이 떠들 수 있어서 고맙고 고마웠다.

다행히 의료보험공단에서 장애인 돌보미 지원을 받아 이제 일주일에 닷새는 맘씨 착하고 솜씨 좋고 야물기까지 한 중국인 동포 각시가 와서 현지를 도와준다. 주말에는 가까운 겸면의 귀농 청년들이 와서 노래도 불러주고 책도 읽어주고 산책도 같이 해준다.

현지는 더듬더듬 동화책을 읽고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 글씨가 많이 반듯하고 이뻐졌다. 또 ‘사부님’이 데리고 나가는 날에는 오른발의 보행보조기도 떼고 한 걸음 한 걸음 애써 걸음을 떼 걷기연습을 한다. 혹시라도 넘어지면 큰일이니 아차 했을 때 든든하게 받쳐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동네에 애기가 하나 생겼다. 온 동네 사람이 애기 하나를 돌보는 셈이다. 아무도 성가셔라 하지 않는다. 석가모니가 부잣집, 가난한 집 가리지 않고 탁발을 다닌 것은, 중생들에게 고루 ‘보살심’을 일으키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그 마음이 축복임을 알기에.

화엄사성보박물관에서 사경 작품 전시회를 본 날, 가까운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정원이 넓고 연못도 있고 나무가 많은 근사한 카페에 가서 차도 마셨다. 차에서 내리고 오를 때 현지는 수행원을 여섯 사람 데리고 다니는 거물급 인사 같았다. 현지의 휠체어를 밀고 다니며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우리는 기쁘고 좋았다. 현지가 우리 곁에 있어 주어서 참말로 고맙다.

 

[출처] 월간 전라도닷컴 26년 2월호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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