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생각하는 거룩한 갈망
한상봉 칼럼
예전에는 살 집을 찾아서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성장한 나는 지난 30년 동안 부천에서 서울로, 예천에서 상주로 무주까지, 경주에서 다시 서울로, 일산으로 파주로 이삿짐을 지고 달렸습니다. 생각해 보면, 3년이나 5년에 한번씩 옮겨살았던 모양입니다. 굳이 여운이 많이 남는 곳을 꼽으라면 수도권을 떠나 무주와 경주에 살았던 순간들이 동화처럼 아득하고, 혈액처럼 붉고 끈끈한 생명력으로 가슴에 저며옵니다. 그리고, 이제 한 주일에 한 번 꼴로 전주에 다녀옵니다. 치명자산 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강의를 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피정을 열고, 어쩌면 순례자들을 위한 길을 찾아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도 가톨릭일꾼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위키백과를 열어보니, “선교사(宣敎師, 영어: missionary)는 특정 종교(주로 기독교)의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 다른 지역, 특히 타문화권이나 해외로 파송된 종교인을 말한다. 단순히 교리 전파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사회 복지, 개발 구호 등 종교적 동기에 기반한 다양한 인도주의적 활동을 포괄하는 경우가 많다”고 되어 있더군요. 문득 이렇게 떠나는 내 모습이 ‘선교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느 교회도 저를 파송한 적이 없지만, 내 등을 떠밀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동무처럼 동지처럼 연인처럼 엮어서 그곳으로 함께 가라고 부추기신다고 ‘나 혼자’ 믿고 있습니다. 그래야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와 아모스와 미카와 예레미야처럼 예언자들은 세상이 주는 어떤 권위도 자격증도 없이 그분의 횃불같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를레앙의 잔 다르크는 오롯이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고 프랑스 인민을 전쟁의 참화에서 구했지만, 종교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화형을 당했습니다. 세상과 교회의 판단보다 복음에 따라 움직이기를 선택했던 하느님의 전사들처럼, 그리스도를 갑옷 삼아 영적 전투에 나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복된 일이다 생각합니다. 다만 적지 않은 나이에 낯선 땅에서 사람들을 만나려 하기에, 그이들에게 건넬 영적 선물을 잘 고르고, 성심껏 포장합니다. 최고의 선물은 내가 받고 싶은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가 친절하게 다가가면 그들은 햇살같이 환대할 것이라 믿습니다.
내 방 한편 벽에는 과달루페의 성모께서 계시고, 다른 벽에는 이사야 예언자의 소망이 적혀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서>를 루머를 쳐서 인쇄한 이 쪽지를 삼십 년째 간직하고 있습니다.
“야훼를 믿고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이 솟아 나리라.
날개쳐 솟아 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무리 뛰어도 고단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 하리라.”(이사 40,31)
이참에 전주로 나를 초대해 주신 김영수 신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새로 열린 길에서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또 만나게 될 것입니다. 로날도 롤하우저는 <거룩한 갈망>의 첫 머리를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시로 시작합니다.
그대가 태어났고, 지금도 태어나도록 해 주는
사랑의 밤 그 심연 속에서,
침묵의 촛불이 타오르는 것을 볼 때에
기묘한 느낌이 그대를 엄습한다.
이제 그대는 더 이상암흑의 그늘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더 고귀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그대를 높이 치닫게 하리니,
어떤 먼 거리도 그대를 주춤거리게 하지 못하니,
이제 마술에 걸린 것처럼 날아가 이른다.
그리하여 마침내 빛에 사로잡힌 그대는
나비가 되어 영원한 사랑으로 가버릴 것이니,
죽어서 충만함을 스스로 겪어보지 않는다면
그대는 암흑의 지상에 머무는
근심스러운 객에 불과할 뿐이니.
더 고귀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아직 남아있다면, 우리는 어쩌면 지상에서 천국을 슬쩍 맛보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조은 시인이 <온갖 기억을 다 놓고서>에서 갈망했던 그 나라에 닿을 것입니다.
삶이 편한 곳,
사람들이 넉넉한 곳,
생명이 애처롭지 않은 곳,
습한 내 방안까지 그곳의 햇빛 들고 부드러운 바람 분다.
사랑도 놓고,
연민도 놓고,
칼날처럼 닿는 온갖 기억들도 다 놓고서,
그곳으로 가고 싶다.
성탄절을 기쁨 안에서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성탄절 아침에 축하인사를 받으려면, 성모님처럼 내 몸으로 그분을 낳아드려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마리아를 ‘고요한 혁명’을 이루시는 복음화의 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전주에서도 고요한 혁명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주에 귀농해서 살았던 6년이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치명자(致命者)들이 산을 이룬 곳에 깃발을 세우고, 그분들의 통공(通功)을 믿으니 살만 합니다.
이런 글을 쓰다보면, 내가 나한테 주문을 걸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연장을 들고 하루 일을 시작하는 것은 나이지만,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따로 있으니 다행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루카 18,27)고 하니, 은총에 기대어 일을 해볼 생각입니다. 남아있는 것은 그분의 일을 내 일처럼 하고, 내 일을 그분의 일처럼 하는 것입니다. 백제 때에는 완산(完山)이라고 불렀다는 전주(全州)는 ‘온전하고 흠이 없는 땅’이라는 뜻이랍니다. 그곳에서 “칼날처럼 닿는 온갖 기억들을 다놓고서” 편안한 하루가 이어지길 희망합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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