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었다.

최태선 칼럼

2026-01-26     최태선
사진출처=pixabay.com

AI는 분명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사람들은 장밋빛 희망으로 AI를 바라본다. 그런데 정말 AI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AI는 희망이 아니라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나는 AI와 관련된 글을 읽는다. 논조와 상관없이 읽는다.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AI에 대해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AI에 관한 글에는 우려와 걱정이 섞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글과 달리 현실에서는 정 반대가 된다. AI는 단순한 희망 이야기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으로서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는 당면한 괴제가 되었다. AI가 초래할 미래의 문제를 제쳐놓고, 일단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호승심과 당위가 무조건적으로 AI를 향해 치닫게 만들고 있다.

며칠 전 읽은 이은탁님의 AI 관련 글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었다.

“만약 AI가 노동생산성을 급격히 높인다면 주당노동시간을 크게 줄이되 임금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린다면 그들은 어떻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나? 그러니 의료는 인간의 권리로서 모든 이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AI가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강력하게 연구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너무 어렵고 집중력은 약하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정서적 지지를 AI에서만 얻는 상황을 매우 우려한다. 우리는 이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만약 이 기술이 더 많은 고립, 외로움, 정신질환을 낳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우리는 분명히 ‘멈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내용의 현실성에 대해 생각해보라. 이은탁님의 우려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 내용은 거의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논의를 이어가기 전에 AI의 선두에 서있는 유명한 일론 머스크를 생각해보라. 과연 그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에 동참할 사람인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아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에 올인할 것이다. AI는 과연 그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가. 없다. 세상의 그 무엇도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은 파스칼이 예견한 바 있다.

“인간에게는 하느님 이외에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무한한 공간이 있다.”

정확한 파스칼의 워딩은 아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술의 총화로서 AI의 입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사람의 생명을 기꺼이 희생하게 만들 수 있는 인류에게 남은 유일한 우상은 국가였다. 그런데 바야흐로 AI는 국가의 운명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것으로 인류의 새로운 우상으로 등극하고 있다.

우상이라는 내 표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그것은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없다. 인간은 다만 우상을 만족시키기 위한 희생양이 될 수 있을 따름이다. 그 미래가 이미 영화의 상상력을 통해 알려져 있다. AI에 장악된 인간의 미래는 노예다. 생각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한 노예가 될 것이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인류 역사 속에서 재물(맘몬, 돈)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재물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지 못하고 다만 지능(知能)했다. 그런데 마침내 재물이 AI를 통해 온전할 전(全)자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 어마어마한 영적인 변화 앞에 무지하고 무감각하다. 이것이 바로 성서에서 이야기하는 마지막 전쟁인 “아마겟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것이 내 개인적인 호들갑 정도로 인식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AI는 맘몬에게 전지전능함을 제공하는 최고의 무기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 그 희끗희끗한 단편들을 보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들을 얽어매는 족쇄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낙관적이다. 누군가 해결할 것이라는, 지금까지 인류가 그래왔듯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내가 다른 글에서도 제시한 바와 같이 과거 산업혁명으로 야기되었던 인간말살의 경험이 반복될 것이다.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소설에서 보았던 인류의 비극이 재현될 것이지만 그 참상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통제와 억압이 일상이 될 것이다. 거기에 대항할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AI는 인간의 생각을 검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며칠 전 나는 구글 검색을 통해 내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것을 보고 나는 놀랐다. AI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었다. AI는 내 모든 것을 알고 내 중심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이런 AI는 초보에 불과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AI의 이런 능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정교해질 것이다. 지금은 AI가 보지 못하는 내 일부가 남아있지만 그 일부 역시 낱낱이 AI가 파악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다. 단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자 믿음이다. AI는 인류의 모든 지식과 능력을 망라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이 욕망의 존재인한 인류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

하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AI에게 단순히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 AI를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나는 그것이 AI를 통해 전지전능해진 맘몬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이라고 생각한다. AI는 인간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 거기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존재란 맘몬이 어찌할 수 없는 하느님의 강력한 무기다.

이런 내 생각이 유치한 상상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새사람으로서의 내 존재가 곧 바로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새삼 아브라함의 기사에 등장하는 열 사람의 의인이 생각난다. 어쩌면 AI에게도 그 최소한 열 명의 의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믿는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유튜브 강의/한상봉TV-가톨릭일꾼
https://www.youtube.com/@tv-110

종이신문<가톨릭일꾼>(무료)정기구독 신청하기
http://www.catholicworker.kr/com/kd.html

도로시데이영성센터-가톨릭일꾼후원하기
https://v3.ngocms.co.kr/system/member_signup/join_option_select_03.html?id=hva8204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