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더불어 숲, 그리고 민주주의
이정화 칼럼
가톨릭일꾼 미사가 끝나고, 새벽같이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먼 길을 달려오신 김유철 선생님의 강의가 이어졌다. 김유철 선생님은 창원에 위치한 ‘삶예술연구소’ 소장이시고, 시집<천개의 바람>(피플파워, 2015), <그대였나요>(리북, 2011)를 낸 시인이다. 나는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오늘 강의 주제가 “신영복의 더불어 숲,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님 ‘광팬’인 나는 김유철 시인이 풀어나가는 신영복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내가 신영복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게, 1988)을 읽게 되면서부터다. 깨알 같은 글씨, 4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을 두 번 이상 읽은 것 같다. ‘20년을 감옥에서 수감 생활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그의 글 어디에도 분노가 보이지 않았다. 체념이나 포기는 말할 것도 없다. 오직 감옥 밖에서는 죄인이요, 쓰레기라고 불릴 만한 죄수들을 자신과 똑같은 동료로 사람 대접했고, 그들의 처지를 이해했고, 받아들였다. 그 후 나는 신영복 선생의 책을 하나둘씩 사서 읽기 시작했고, 밑줄을 치지 않은 구절이 없을 정도로 집중했다.
맑고 바르게 닦여진 하얀 옥 같은 사람
그의 마지막 강의인 <담론>(돌베게, 2015)까지 읽으면서 ‘이분의 책만 다 읽고 이해하면 다른 책을 읽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의 글은 감옥에서 갈고 닦은 인간학이고, 역사학이며, 사회학이었다. 신영복 선생을 실제로 본 것은 대학로 지하 벙커에서 열린 <담론> 출판기념회 에서다. 그때 개그우먼 김미화 씨가 사회를 본 것으로 기억한다. 크지 않은 키에 곧은 걸음, 미소를 머금은 그분의 모습은 점잖고 지적이었다. 길지 않은 강의를 하셨는데, 목소리에 겸손과 단호함이 배어있었다. 민주화의 산증인이었던 김정남 선생은 신영복 선생을 선명(善鳴), ‘맑고 바르게 닦여진 하얀 옥 같은 사람’이라고 했단다.
김유철 시인은 선생님의 저서 <강의>(돌베게, 2015)를 읽고, 머리를 맞은 듯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신영복 선생은 ‘책을 내면서’에 이렇게 적고 있다. “고전을 읽는 이유가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짐이기 때문에 지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을 지혜로 만드는 방법이 대화 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고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리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이 말하는 ‘공부’는 일상인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이치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있다.
신영복 선생의 약력은 특이할 뿐 아니라, 충격적이다. 1941년 의령에서 부친 신학상과 모친 이미호 사이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보내고,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다. 선생은 1966년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다. 여러 번의 재판 끝에 무기징역을 받고 안양, 대전, 전주교도서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1988년 8.15 가석방으로 20년 20일 만에 석방된다. 김유철 시인은 통혁당 사건은 팩트와 소설이 ‘섞여 있는’ 사건이라 말한다. 신영복 선생은 ‘사형’이라는 단어를 6번이나 듣는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처음처럼, 희망의 언어
선생은 계수님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고 썼다. 그는 1988년 8월14일 48세의 나이로 특별가석방 된다. 그의 저서<처음처럼>(돌베게, 2016)을 보면 맨 앞의 글이 ‘처음처럼’이고 맨 뒤의 글이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처음처럼에는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마지막 글 석과불식에는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희망의 언어입니다.”라고 썼다. 결국 모든 것은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신영복 선생의 애창곡은 ‘시냇물’이다.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사람들에게 환송식을 해 줄 때 선생은 ‘시냇물’을 부르셨단다. 처음에는 투덜거리던 사람들이 이내 숙연해지는 이 노래는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바다는 ‘변화’와 ‘소통’의 최고 형태라고 적고 있다. 선생은 출소하는 이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하지 않고 “잘해 보라”고 한다.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야 이곳에 다시 안 들어오는 게 아니라, ‘처지’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구조적으로 바뀌어서 그들의 처지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민주주의의 보루, 더불어 숲이다
선생의 글씨, ‘신영복체’는 처음처럼 이라는 술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처음으로 쓴 글씨는 어느 분교에 있는 “꿈을 찾는 도서관” 현판이다. 김유철 시인은 선생의 ‘자유(自由)’라는 글씨에 “참된 자유는 자기의 이유를 찾는 것입니다.”라고 적혀있다면서, 내가 왜 가는지, 존재하는 곳이 어딘지 아는 것이 자유라고 강조한다. 선생님의 글씨로써 가장 유명한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 묘비’ 글이다. “민주주의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시인은 여기서 ‘조직된 힘’을 ‘더불어 숲’으로 바꾼다. 숲은 강요된 조직이 아니라,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기에 무너지지 않는다.
신영복 선생의 책 중에서 가장 쉽게 읽히는 에세이가 <처음처럼>이다. 선생은 그림(삽화)도 잘 그리신다. 시인은 최고의 에세이스트로 법정 스님과 신영복 선생을 꼽는다. 에세이스트는 자기가 느낀 것을 감동 있게 전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처음처럼>에서 말하는 영성의 핵심은 ‘성찰적 관계론’이다. 양심을 한가운데 두고 성찰할 때, 공부는 ‘실천’하는 공부여야 하고, 관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화동(和同)’ 이어야 한다.
공부는 지금 여기에서
선생님은 ‘공부(工夫)’를 강조 하셨는데,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를 연결하는 것이 공부라고 했다. 공부는 우리의 ‘일상’에서 해야 한다. ‘삶’은 사람이 일상을 사는 것이다. 그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고마운지 아는 것이 공부다. 세계는 하나하나 독립된 존재로 보이지만 점이 선으로, 선이 면으로, 면이 장(場)을 이루면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는 경쟁과 속도로 우리를 좌절시킨다. 결국 자기 자신에게 쫓기는 꼴이 된다. 공부는 망치로 하는 거란다. 머리를 깨는 게 성찰과 공부의 시작이라고. 갇혀있는 생각의 틀을 깨라는 니체의 '망치의 철학"과 닿아있다.
선생은 세계는 관계지만 '나' 역시 관계다. 그런데 미셸 푸코의 지적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감옥, 군대, 병원, 학교, 공장, 이제는 교회까지 가세하여 모든 시스템을 통과하면 계량화되고 '규격화'된다. 감정 자체를 포획해 버린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성찰하며 사는가?
호모사케르, 죽어도 되는 존재.
신영복 선생은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사케르’,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뜻으로 주권 권력이 죽여도 죄가 안 되는 정치 외적 존재, 재물입니다.”라고 썼다. 나치는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을 죽어도 되는 존재라고 했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누가 죽어도 되는 존재인가? 사회적 약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시민을 죽어도 된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자지구도 우크라이나도 아니지만, 하루에 40명씩 죽어가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 더 놀랍다. 우리는 심각하게 성찰하고 회심해야만 한다.
선생은 과학의 발전이, 편리함이 우리의 욕망을 해방시키고 행복을 주는가를 묻는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 폐기까지, 모두 자본주의의 개념이며 결국 우리는 우리가 만든 물건 때문에 죽는다고 한다. '세월호'라는 글에서 "세월호의 참사는 하부의 평형수를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하부의 중심이 허약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부를 증축하는 감시 권력의 강화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하부는 '서민'들의 삶이며, 그것을 지키려는 민중운동입니다."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선생이 말하는 해결책은 Gear-off다. 되도록 천천히, 작게, 부드럽게 가는 것이다. 물처럼.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글에서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예로 든다. 거북이를 얕보고 잠을 잔 토끼도 나쁘지만, 잠든 토끼 앞을 살그머니 지나가서 이긴 거북이도 나쁘다며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는 친구가 되라고 제안한다. 또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며, 여기서 '발'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삶의 '현장'이고. 수많은 나무들이 공존하는 '숲'이라고 한다.
새해는 끝없는 작심 3일의 예식
선생이 계수님께 쓴 "또 새해”라는 글은 특이하다. '87년이 저물면 88년이 밝아오고 88년이 저물면 89년이 밝아오고...계속 옵니다. 새해 또 새해 또 새해' 이런 식이다. "새해"라는 글에는 세모에 지난 한 해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이며,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라고 한다. 겨울의 한복판 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하라고 초대한다. 강남순 교수님의 '작심 3일' 예식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김유철 시인은 '처음처럼'으로 돌아가서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대림이 끝나면 새로운 시작이니, 우리도 렘브란트의 ‘돌아온 아들’처럼 하느님께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 하자고 하신다. 2026년 새해에는 신영복 선생님의 영성을 살아보자며 이야기를 마무리하셨다. 우리는 함께 선생님의 애창곡 "시냇물"을 합창 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어떤 때는 한없는 따뜻함으로 위로를 받다가, 어떤 때는 칼날 같은 그 단호함에 베일 듯 섬뜩하다. 20년 수형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자신과 마주하는 고독의 시간을 가지며 성찰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포용과 자존감이 아닐까? 그래서 그는 ‘맑고 바르게 닦여진 하얀 옥 같은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강의를 듣고 글을 쓰면서 <처음처럼>과 선생님의 다른 글들을 다시 읽으니,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세월의 무게가 주는 변화일까? 아니면 내가 좀 더 성장한 걸까? 어떤 이유든 상관없이 신영복 읽기를 ‘다시’ 한 시간은 내게 또 다른 성찰의 시간이었다.
특별히 신영복 선생님 글 중에 좋아하는 글 몇 편을 소개하려 한다. [햇볕 두 시간] "추운 겨울 독방 무릎에 올려놓은 신문지 크기의 햇볕 한 장"이 선생을 살게 하는 "생명의 양지"라는 대목에서 울컥 목이 메었다. [여름 징역살이] "없는 사람이 살기는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징역살이는 여름이 더 괴롭습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36.5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라는 표현에서 감옥 안 더위가 주는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찬 벽 명상]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이다. "기상 시간 전에 옆 사람 깨우지 않도록 조용히 몸을 뽑아 벽에 기대어 앉으면, 싸늘한 벽의 냉기가 나를 깨우기 시작합니다."라는 대목에서 성찰적 인간의 모습을 만났다.
‘더불어 숲’으로 살아가자
김유철 시인이 들려주는 신영복 이야기와 내가 느끼는 신영복 이야기는 분명 다르다. 철학자 데리다의 말대로 모든 읽기는 ‘자서전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영복 선생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하는 것은, 20년 ‘감옥’이라는 학교에서 살인자부터 고위공직자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과 깊이 만나면서, 사람은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하게 성찰한 고백록이자 자서전이고, 철학책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자고로 인간이라함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존재, 각각의 낙락장송이 아니라, 수많은 나무가 ‘숲’을 이루는 존재라고 한다. 우리도 이번 기회에 ‘신영복 읽기’를 재도전해서 함께 “더불어 숲”를 만들어보지 않으시렵니까?”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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