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보다 어려운 게 탈팡이다

김선주 칼럼

2025-12-22     김선주
사진출처=뉴스토마토

119에서 밤샘 근무를 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아들은 가끔 쿠팡이츠를 주문합니다. 밤새 현장에서 뛰다 보면 배가 고프고 먹고 싶은 것이 연상될 때 퇴근 시간에 맞추어 배달될 수 있도록 주문해 놓는 것입니다. 나는 아들과 쿠팡의 비도덕적 경영 방식과 노동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문제를 여러 번 이야기하며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편리함에 익숙해져 쿠팡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과 경영진이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를 보며 더 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이번엔 아들에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쁜 줄 알면서도 그것의 편리함 때문에 떠나지 못하면 스스로가 악이 되는 것이다.” 오늘 드디어 아들이 쿠팡 회원 탈퇴에 성공했다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탈북보다 어려운 게 탈팡이네.”라는 시니컬한 말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무는 착한 행위를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선행(善行)을 베푸는 나의 물리적 수단이 올바른 과정을 거쳐 나에게 왔는가가 선행보다 우선해야 할 가치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이미 부조리한 권력과 왜곡된 자본주의 구조 안에 편입됐기 때문입니다. 구조에 편입될 때 우리는 구조악을 보지 못합니다. 이때 중독이 일어납니다.

중독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술이나 마약 따위를 계속적으로 지나치게 복용하여 그것이 없이는 생활이나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알코올이나 마약에만 사람이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무엇이냐’가 아니라 절대 의존의 ‘상태’에 방점을 찍으면 우리는 수많은 중독에 빠져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태 말입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끝내 남편을 떠나지 못하고 평생을 얽매여 살아가는 여자의 상태가 중독입니다. 폭력 남편의 힘이 역으로 그를 보호하는 기재로 작동하는, 마조히즘이 중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중독에 빠지면 그것이 악인 줄 알면서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게 불안해집니다.

사회적 무질서를 낳는 중독 중에 가장 심각한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념 중독입니다. 하나의 이념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게 되면 그 이념을 통제하는 이들이 어떤 거짓말을 해도 그것을 믿고 신뢰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암살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가 칼, 총, 독극물 같은 것이라면, 누군가를 증오와 혐오의 광기로 짓밟기 위해 필요한 도구는 하나의 단어면 충분합니다. 마녀, 빨갱이, 이단자, 창녀, 무정부주의자 같은 몇 개의 단어 중 하나만 던져 주면 이념 중독자들은 증오와 혐오의 광기에 미쳐 날뛰며 그를 밟아 죽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종교 중독입니다. 이념 중독자가 고집 센 또라이라면 종교 중독자는 망상증 환자에 가깝습니다. 또라이는 두들겨 패면 힘에 굴복합니다. 하지만 망상증 환자는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합니다. 종교가 그것을 순교라는 이름으로 위장했기 때문입니다. 또라이는 두들겨 패서라도 나쁜 놈들과 떼어 놓을 수 있지만 망상증 환자는 죽음 이외에는 떼어 놓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가 속한 종교 집단은 동굴처럼 편안하고 교리는 아편처럼 구원의 환각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이 종교 중독으로부터 벗어나 닿아야 할 귀의처를 ‘하느님 나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중독된 인간들이 구축한 세계에서 혐오와 증오의 광기로 서로 저주하고 폭력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온 세계를 풍성하게 끌어안는 나라를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그 나라로 건너가기 위한 자기희생의 교량입니다.

나는 가끔 예수와 그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을 읊조립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羯諦羯諦 波羅羯諦 波羅僧羯諦)”
“가자, 가자, 저 언덕으로 가자, 저 언덕으로 완전히 건너가자”

원문으로 읊조려도 좋고 한글로 읊조려도 좋습니다. 특유의 율격 때문에 입안에 단맛이 가득한 느낌입니다. 종교 중독의 사슬을 끊고 참된 자유와 행복의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자, 라고 들립니다. 쿠팡 너머 저 언덕으로 가듯이 위선과 탐욕의 교회주의를 넘어 예수에게 가야 합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