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이 나를 결정한다
이정화 칼럼, “미소의 편지들 4” 동료-인간과의 정원 가꾸기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연휴의 끝자락에, 그것도 집이 아닌 자연휴양림이라는 여행지에서, 이론그룹 네 번째 강의를 들었다. 누군가는 유난스럽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숲속의 집에서, 밥상 위에 커피 한 잔과 컴퓨터를 앞에 놓고 강의를 듣는 이 시간은, 나만의 행복을 가꾸는 ‘사치’스런 시간이다. 강의를 듣는 동안 남편과 딸은 어쩔 수 없이 ‘귀동냥’으로 강남순 교수님의 명강의를 청강했다. 투덜거리지 않고 나의 시간을 인정해 주는 그들이 고맙다.
명절조차 쉬지도 못하고 일하시는 분들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어둡고 불행한 사건 사고들을 생각하면, 나의 이 시간이 이기적인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교수님 말씀대로 내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let go’하고, 나는 또 나의 길을 가야 한다. 미국에 계신 교수님은 ‘추석’의 개념이 없다고 하시면서도, 예전에 엄마가 해 주신 음식들, 잡채, 녹두전, 만두가 먹고 싶다고 하신다. ‘떠돌이’ 생활을 오래 하신 교수님과, 시애틀에서 첫 추석을 지내는 아들을 생각하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 모든 분을 위해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대신, 나의 네 번째 미소의 편지를 보낸다.
동료 인간, 수평적 평등 관계
오늘 강의 주제는 ‘동료-인간과의 정원 가꾸기’이다. 나는 처음에 동료 인간이란 말이 낯설었다. ‘동료’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잘 쓰지 않고, ‘인간’ 역시 학문적 단어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료’의 사전적 뜻은 같은 직장이나 동아리에서 함께 일하거나 활동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사전적 의미는 더 다양하고 복잡하다. 지난 시간에 ‘나’는 ‘너’라는 타자와 분리될 수 없고, ‘너’는 ‘나’와 상관없는 ‘구경꾼’이 아니라 내 자아를 드러나게 하는 ‘조건’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와 ‘함께’하는 동료 인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타자는 우리의 삶을 의미롭게 만들거나 황폐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게 중요한 동료 인간은 누구인가? 교수님은 ‘탈낭만화(de-romanticization), ’탈상투화(de-familiarization), ‘탈자연화(de-naturalization) 라는 어려운 말로 설명하신다. 결국 나에게 동료 인간이란, 그의 밝은 면만이 아닌 어두운 면(dark side)도 인정할 수 있는 존재, 그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견이라는 상투적인 시선을 벗은 존재,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자연화를 넘어서서, 그를 인간 그 자체로 보는 존재다. 그래서 교수님은 “동료 인간은 반드시 ‘수평적 평등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나라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대의 어르신’, ‘시대의 스승’이라는 단어 속에 숨어있는 ‘직업차별’, ‘계층차별’, ‘성차별’, ‘나이차별’을 지적하시면서, 이런 말들이 우리 생각의 가치관을 ‘위계적’으로 심어준다고 지적하셨다.
내 안의 인식론적 사각지대
교수님은 동료 인간은 ‘직업의 귀천’이 없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직업에 대한 ‘차별’이 너무 심하다고 하셨다. 당신이 속한 대학 내의 미술관 ‘경비원’의 글을 읽고, 그의 글이 ‘음악 같다’ 고 느끼셨단다. 글의 언어, 말의 언어, 몸의 언어가 다 다른 영역이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차별’에 대한 ‘예민성’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그럼 나는 ‘차별’에서 자유로운가? 질문해 본다. 나는 ‘노인인지 책놀이 강사’로서 주간보호센터에서 일하시는 요양보호사들을 동료 인간으로 차별 없이 대하는가? 나의 대상자인 노인들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가? 혹시 ‘노인’이라는 이유로, 인지가 온전치 않다는 이유로 ‘은밀하게’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는가? 수업에서 배제하지 않는가?
우리는 ‘유명한’ 철학자나 내게 영향을 끼친 소위 ‘존경’하는 사람들(강남순 교수님 포함)을 보면, 그들은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수님은 ‘착각’이라고 일침을 가하신다. 우리 안에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식론적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성소수자’에 대해 불편함을 가지고 있다. 2019년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성소수자의 삶을 담은 영화를 본 이후로, 그리고 교수님과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책을 읽은 이후로, 그들에 대한 나의 시선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말한다는 것이 늘 조심스럽다. 교수님 말씀대로 차별이나 혐오, 부인을 ‘공부’해야 할 이유다.
이론그룹, 갈망과 연민과 사랑의 목마름의 존재들
“동료 인간이 있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와 ‘공동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교수님 말씀에 <사유하는 시민 아카데미 이론그룹> 동료 인간들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2021년 이론그룹 1학기,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을 시작으로 2025년 이론그룹 14학기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 줌으로, 대면으로, 강남순 교수님과 함께하는 동료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나이, 학력, 사는 곳, 직업, 성별이 모두 다른, 나에게는 ‘특이하고 특별하고, 소중한’ 동료 인간이다. 나는 그들의 ‘사적 자아’는 잘 모른다. 하지만 ‘공적 자아’는 한편으로는 알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알지 못함’의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을 동료 인간으로 인식하는 것은, 강남순 교수님을 매개로 이론그룹에서 만났다는 그 사실만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싶은 갈망, 타자를 향한 연민, 그리고 동료 인간과 세계를 향한 사랑을 지향하는 이들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아모르 문디(Love of the world)”라고 했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바로 동료 인간과의 정원을 가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렌트는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와의 정원 가꾸기, 즉 나 자신과 고독(solitude)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게 음악이든, 책 읽기든, 걷기든 상관없다. 교수님은 또 “Training for the your mind”를 주문하신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아렌트의 말과 함께.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라, 치열하게
강의가 끝나고 교수님의 ‘유익한 잔소리’ 시간이다. 교수님은 “자기 자신과 약속 시간을 정하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이 자신과의 약속을 빼곡히 적은 포스트잇을 ‘비밀’이라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여러 장의 작은 포스트잇이 겹쳐 있는 종이를 보면서, 교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진정성’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과 인내에서 나옴을 깨달았다. 거기에 적힌 문구는 “Fighting with pen!”, “Small changes make a big difference” 등이다. 자신이 무너지지 않게 다잡고 또 잡으려고 얼마나 애쓰셨는지 느껴져서, 크게만 보였던 그녀가 돌연히 동료 인간으로 다가온다.
오늘 교수님 강의 중에서 나를 ‘아하!’ 하게 만든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로 나를 평가하지만, 사실은 내가 무슨 ‘선택’을 했느냐가 나를 결정한다”는 말씀이다. 결국 그 사람을 지탱하는 것은 외부 세계가 나를 파괴하지 않도록 내가 나를 지켜낸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나를 좌절시키지 못하게 하겠다(Let nothing, Keep me down)"고 주문을 외우면서.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이 아닌, ‘용기의 부재’라고 한다. 그 용기는 ‘결단’할 수 있는 용기다.
질문도 해답도 ‘나’ 가꾸기
네 번째 편지를 쓰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질문도 답도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와 정원을 가꾸는 것, 너와 정원을 가꾸는 것, 그리고 동료 인간과 정원을 가꾸는 그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나’다. 니체가, 한나 아렌트가, 데리다가, 레비나스가 수많은 명언으로 조언을 해 주지만, 그것은 나의 ‘도구’일 뿐이다. 잘 사용하면 도구요, 잘못 사용하면 무기가 되는, 그리고 사용하지 않으면 쓸모없이 녹슬어 버리는. 그래서 교수님은 늘, 끊임없이, 배운 이론을 녹슬지 않게 갈고 닦으라고 엄마가 잔소리하듯 말씀하신다.
가랑비를 맞으며 딸과 휴양림 둘레길을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은 나보다 더 책을 좋아하고, 나보다 더 철학자들의 이론들을 잘 알고, 나보다 더 용기 있는 아이다. 이야기 중에 자기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와 일에 대해 고민한다면서, 귀동냥으로 들은 ”내가 어떤 결단을 했느냐가 나를 결정한다“는 교수님 말씀이 위로와 용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휴가 중에도 공부하는 엄마가 대단하다는 칭찬도 들었다. 편지 마무리가 ‘내 자랑’이 되었지만, 이 편지가 동료 인간들을 환하게 미소 짓게 했으면 좋겠다. 교수님과 동료 인간들 모두 감사합니다.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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