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래된 순례, 마돈나 하우스에서 만난 하느님
이정화 칼럼
얼마전 가톨릭 일꾼 월례 미사에 다녀왔다. 두 달 동안 미사 없이 강의로만 진행했었는데, 이번 달은 ‘가자지구 평화 회복을 위한 미사’와 함께 <나의 오래된 순례, 마돈나 하우스>(플로베르, 2025)라는 책을 출간한 시민교육활동가이자 작가인 주은경 선생의 북토크가 있어서, 좀 더 많은 분이 참석하길 기대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전날까지 다섯 분밖에 신청을 안 했다니, 비상 상황이다. 신부님과 작가님 볼 일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결국 한 선생님은 밤늦게 일꾼 단톡에 주은경 작가에 대한 소개를 한 번 더 하시면서, 면(面)을 세워달라고 부탁하셨고, 나는 작가님이 책을 가져오셔서 그 자리에서 사인을 받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실직고(以實直告)하자면, 나는 주은경 선생님이 책을 낸 줄 몰랐다. 가톨릭일꾼 사이트에 ‘주은경의 순례 여행-마돈나 하우스’라는 칼럼을 쓰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달에 강사로 오신다니, 예의상 2024년 1월 8일부터 2024년 11월30일까지 올린 23개의 칼럼을 모조리 찾아서 읽었다. 그런데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알 수 없는 힘에 압도되어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읽고 난 후 나는 “이걸 왜 책으로 내지 않지?”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이미 책은 나왔고, 심지어 이번에 오는 강사가 주은경인데.
주은경, 예민하지만 단순하고 자유로운 영혼
내가 마돈나 하우스를 알게 된 계기는, 몇 년 전 성당 부부 모임을 할 때, 한 부부가 딸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 그런데 지인의 소개로 캐나다 ‘마돈나 하우스’라는 곳을 다녀온 뒤, 딸이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뒤 그 부부는 아들도 그곳에 보냈다. 나는 우리 딸도 한 번 보내볼까? 하는 마음을 잠깐 가졌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 돈이 없어도 먹고 자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에 혹한 게 사실이다. 글을 읽고서야 그곳을 다녀온 후 ‘왜’ 그 아이들이 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솔직히 나는 책보다 주은경이라는 ‘사람’에게 더 매료되었다. 그녀가 너무 궁금했다.
다행히 월례 미사에 참석한 사람은, 나와 한 선생님을 포함해서 12명이었다. 소위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미사를 마치고 잠깐 쉬는 시간에 소년 같은 모자를 쓰고 배낭을 맨 깡마른 여자분이 들어오는데, 순간 주은경 작가인 줄 단박에 알아챘다. 일꾼 칼럼에서 사진을 봤기 때문이다. 젊진 않지만, 느낌은 ‘말괄량이 삐삐’나 ‘빨강 머리 앤’의 주인공같이 장난스럽고 유쾌하고 소녀다운 구석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느낀 이유는 아마, 그녀의 글 속에서 예민하지만 단순하고 밝고 자유로운 영혼을 엿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이 책을 쓰게 된 경위를 말하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마돈나 하우스에 가기 전의 그녀는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일에 파묻혀 사는, 잘 나가는 ‘방송작가’였다. 방송작가의 시간은 그녀를 갉아먹었다. ‘섬유근통증’이라는 병을 얻었고, 결국 “쉬어야 한다”는 선고를 받았다. 의사의 그 말을 듣고 그녀는 펑펑 울었단다. ‘나도 쉬어도 되는구나’라는 당연한 생각을 하면서. 그 후에 동생의 초대로 캐나다에 가게 되고, 2007년 10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마돈나 하우스에서 두 달간 머물게 된다.
오래된 순례를 시작하며
그녀는 15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왜 썼을까? 그래서 책 제목이 ‘오래된 순례’인가? 마돈나 하우스에서 지낸 시간이 그녀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준비해 온 마돈나 하우스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돈나 하우스는 ‘캐서린 도허티’가 설립했다. 도허티는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1917년 혁명이 일어난 후 러시아를 떠나 미국 뉴욕 할렘에서 ‘우정의 집’을 열고, 다시 캐나다로 이주하여 마돈나 하우스를 만들었다. 가톨릭 일꾼의 창립자인 ‘도로시 데이’와도 뜻을 함께했단다. 주은경 작가는 도허티가 특히 사회운동과 ‘영성의 통합’을 위해 실천했다는 점에 끌렸다고 한다.
주은경 작가는 종교가 없는 ‘무종교자’다. 그런 그녀가 남녀 평신도와 사제로 구성된 가톨릭 공동체에서 잘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영하 15도 이하로 춥고 눈이 많이 오는 곳, 핸드폰과 개인 노트북 사용이 금지된 곳, 예민한 그녀가 10명의 게스트와 한 공간에서 잠을 자야 하는 열악한 곳에서 견딜 수 있을까? 나는 칼럼을 읽는 내내, 내가 그녀가 된 듯 수많은 ‘걱정’과 ‘만약’을 되뇌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그녀는 너무나 유쾌하고 즐겁고 자유롭게, 그곳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뿌스띠니아에서 절대적 고요를 듣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뿌스띠니아’에서 시간을 보내고 받아들이는 그녀의 태도다. 뿌스띠니아는 ‘사막’이라는 뜻으로, 24시간 동안 기도하고 명상하며 오롯이 하느님을 만나는 작은 기도방이다. 두 평 남짓한 통나무집에 침대, 책상 위에 전기스탠드와 성경, 마리아상, 세숫대야와 물통, 전기포트, 요강이 전부다. 그런데도 그녀는 뿌스띠니아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완벽한 고요, 소리 없음이 얼마나 큰 소리를 내는지 들어봤는가? 귀 가득히 절대적인 고요함이 들린다.”라고.
나는 부끄러웠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침묵 피정’에 가면 단 몇 시간의 침묵이 힘들어 얼마나 주리를 틀었던가. 소리 없음이 내는 큰 소리를 듣기는커녕, 얼마나 많은 분심에 시달렸던가. 그녀는 말한다. “내가 이 고요의 소리를 언제 들었지?”, “이 소리를 계속 들으며 살 수 없나?”라고. 그녀는 대학 시절 ‘광주 항쟁’이 자기의 인생을 바꾼 만큼, 뿌스띠니아의 ‘절대 고요’의 체험이 일생일대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고요의 소리를 가슴에 품는다는 것이 그녀에게, 또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녀는 마돈나 하우스도 ‘고령화’되어 노인이 많은데, 그들이 얼마나 아이처럼 천진하게 잘 놀고, 친근하고, 친절한지 놀랐다고 한다. 그들을 보면서 젊은 ‘척’ 할 필요도 없고, 젊은이들과 어울리려고 억지로 애쓸 필요도 없다는 것, 내가 행복하게 살면 그걸 보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잘 늙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너무 심각하다. 큰 걸음의 시도는 필요하지만, 작은 걸음의 ‘유쾌함’도 필요하다는 말이 가슴에 닿았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연대하면서 ‘즐겁게’ 만들어 나가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나이가 들수록 얼마나 위계적이고 삭막하고 무겁고 완고한가!
단순함의 일상, 기도가 되다
그녀는 ‘단순노동’을 하면서 그 단순함이 사람을 얼마나 깊게 만들어 주는가를 경험했단다. 단순노동을 하시(下視) 한다는 것은, 근사한 일을 해야 한다는 내 안의 알량한 ‘엘리트 의식’이 있다는 증거라고 고백했다. 그녀는 마돈나 하우스에서 ‘일상이 기도’임을 경험했다고 한다. 식탁 봉사, 바느질 모두가 기도였다고. 그것은 혼자가 아닌 ‘공동체의 힘’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서 그리스도를 본다고 했다. 사실 ‘이곳의 삶이 가난한 삶인가?’라는 질문도 했지만, 절대적으로는 가난이 아닐지 모르지만, 캐나다의 시선으로 보면 ‘상대적’으로는 분명히 가난한 삶이라고 했다.
그녀가 마돈나 하우스에서 배움을 얻은 것은 ‘고요함’, 그리고 ‘고독과 공동체’의 공존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동체는 개인의 삶이 보장되지 않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곳은 그 둘이 공존할 수 있게 프로그램이 잘 짜여있다고 한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그 삶을 실현할 것인가? 우리 모두의 과제다. 그녀는 무종교자이지만 늘 ‘영성’을 갈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가난과 단순함’의 일상을 살면서 영성이 자연스럽게 몸에 와닿는 경험을 했단다. 부러웠다. 그리고 질문했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영성’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걸까? 혹시 종교를 가지면, 교회를 다니면 저절로 영성적인 사람이 되는 걸로 착각한 건 아닐까?
Being
그녀의 마지막 배움이 뇌리를 때린다. “Being is more important than doing.” 마돈나 하우스에서는 Doing보다 Being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 아니라 삶으로 경험하고 깨닫게 된단다. 어떻게 하면 ‘Being’의 상태를 좀 더 확장하고 간직하고 살 수 있을까? 그녀는 이곳의 시간을 통해서 doing에 매달리던 자신의 삶을 달라지게 할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갖게 된 질문은 “고독과 영성, 단순한 삶과 공동체를 나의 삶에 어떻게 초대할 것인가?” 낭만적 삶으로서의 마돈나 하우스가 아니라, 매일 복합적인 문제들이 널려있는 치열한 삶 속에서 의미로운 삶은 무엇일까? 그녀는 이 질문이 우리 모두의 ‘인생 질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들의 순례, 한 권의 책이 되다
강의를 마치고 주은경 작가는 책에서 발췌한 글과 그림 카드를 바닥에 깔고, 각자 하나씩 가져가서 좋은 구절을 카드에 적으라고 한다. 그리고 서로 카드를 바꾸어서 글귀를 읽고 나눔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열두 명의 각기 다른 나눔이, 새로운 글로 재창조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내가 고른 구절은 “복잡한 것은 단순하게, 단순한 것은 깊게, 깊은 것은 아름답게, 춤을 추자, 기도하자”이다. 주은경 작가의 칼럼을 읽을 때보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고 목소리를 직접 듣는 마돈나 하우스 이야기는 단순하고, 깊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나는 그녀가 좋아졌다. 오래된 친구 같았다. 함께 한 참석자들과 소박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고 미소 짓는 그녀가, 소탈해서 더 좋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걸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렇게 작고 마른 몸 어디에서 그런 호기심과 열정이 나오느냐고. “저는 제가 잘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해요. 그래서 다양한 것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어떤가. 겁도 많고, 도전 정신도 없고. 나 같으면 '감히' 마돈나 하우스에 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근데 주은경 작가의 글을 읽고 강의를 들으니,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주은경 작가는 그렇게 나를 행복하게 했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비록 그곳에 가지 못할지라도.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