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연분을 맺는 너, 아닌 숱한 얼굴들
매일아침 복음묵상 요한 14,21-26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요한 14,21)
예수님께서는 세상 그 무엇보다 우리 먼저 사랑하자고 말합니다. 짝사랑 말고 온전한 사랑을 해보자고 꼬드깁니다. 나를 사랑하면 나도 너를 당연히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맺은 사랑 때문에 너는 나를 알게 되리라 말합니다. 묻지 않아도 내가 네게 내 모든 걸 다 드러내 보일 거라고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고,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모름지기 신앙인이라면 예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 란 말만 들어도 얼굴이 뜨거워지고 손끝이 간지럽고 입술에 침이 고여야 합니다.
얼마 전에 대학 동창들이 열댓 명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본래 학연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라 동문회 등엔 기웃거리지도 않는데, 나이 탓인지 그리운 얼굴이 늘어나고, 한 번은 보고 싶은 얼굴이 많아집니다. 1982년에 대학에 들어가 사실상 1~2년 동안 보았던 얼굴입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부여로 갔고, 우리는 40년이 훌쩍 넘어선 그때를 기억하며 ‘학생’이 되어, 마침 공주대학교 역사 교수로 있는 동기의 안내를 받으며 공주로, 부여로 고적답사를 다녔습니다.
40여년 전 부여를 가는 버스 안에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과 선배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유치환 이야기를 했지요. <깃발>이라는 시로 유명한 청마 유치환은 남성적 기개와 여성적 섬세함이 돋보이는 시인이었습니다. 나중에 김지하가 ‘시(詩)와 혁명의 통일’이라고 말할 때, 이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지 않은 까닭은 유치환 때문일 겁니다. 관상과 실천, 영성과 정의가 다른 말이 아님을 헨리 나웬을 통해 배웠고,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시집을 놓치지 않았던 이유일 겁니다.
유치환은 사랑하는 애틋한 연분을 ‘진홍빛 양귀비꽃’이라 했습니다. 지금 그 양귀비가 한창인 시절인데, 그런 사랑이라야 고달픈 생애를 버티게 해줄 거라 시인은 믿고 있습니다.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유치환, <행복>, 부분)
그러니 그럴 수밖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도 그런 사랑 하나 품속에 키웠겠지, 생각합니다. 예수님처럼 고달픈 인생이 없었을 테고, 여전히 의로운 몇몇은 그분처럼 외로울 테니까요. 봄꽃이 환할수록 더욱 외로워지는 사람들에게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 운명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는 사람일수록 대지의 깊은 늪에 빠진 듯 힘겨운 세상이니까요. 그래서 유치환이 우체국에서 경험했던 야릇한 절망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진정 외로운 날은
여기나 와서 기다리자
너 아닌 숱한 얼굴들이 드나드는 유리문 밖으로
연보랏빛 갯바람이 할 일 없이 지나가고
노상 파아란 하늘만이 열려 있는데”
(유치환, <우편국에서>, 부분)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이들의 사랑이 지극한 나머지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과 어머니 마리아까지 한몫으로 사랑한다 고백합니다. 이건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테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나 예배당에 나가는 사람은 많지만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밥 먹고 사는 이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환영받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만 형제요 자매라 부르는 이들입니다. 그 이들은 예수님에게 “너 아닌 숱한 얼굴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서운하게 만들면 즉시 흩어질 사람들입니다.
노상 파아란 하늘은 열려 있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하늘입니다. 그분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그분 음성을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연인’이 아닙니다. 그분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노래방에서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르지만, 정작 사랑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이들은 그분을 모릅니다. 그분이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사랑하고, 그렇게 그분을 알아가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생각하는 오늘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