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 기뻐할 것인가, 울며 땅을 칠 것인가

성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 한상봉 복음묵상 (루카 4,16-21)

2025-04-16     한상봉
얀

성유축성미사로 봉헌하는 오늘 미사 본기도에서 사제는 “하느님, 성령의 도유로 성자를 주님이신 그리스도로 세우셨으니 저희도 함께 축성하시어 현세에서 구원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이는 사제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전갈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나자렛 회당에 가셔서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납니다. 이날은 하필이면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고, 예수님은 굳이 이런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아 읽었다고 루카는 전합니다. 루카복음서는 본문을 약간 수정을 했지만, 본래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이 더 힘찹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이사 6,1-2)

예수님의 공생활 벽두에 이뤄진 일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사명선언문처럼 들립니다. 출정하는 장수의 출사표 같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이 문장만으로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습니다. 그이가 결국 기득권 계급인 성전세력에게 십자가에서 살해당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분이 전한 복음은 먼저 ‘가난한 이들에게’ 전달되어야 했습니다. 세상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많이 있겠으나, 예수님이 전한 행복, 예수님이 선포한 복음은 ‘가난한 이들이 행복한 세상’입니다. 마음이 부서지고 연행당하고 갇히고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이 해방되고 위로받는 나라가 ‘하느님 나라’입니다.

부자도 기뻐하고 가난한 이도 기뻐하는 전갈은 복음입니다.
부자도 슬퍼하고 가난한 이도 슬퍼하는 전갈은 복음이 아닙니다.
부자는 기뻐하지만 가난한 자는 슬퍼하는 전갈은 복음이 아닙니다.
부자는 슬프지만 가난한 자는 기뻐하는 전갈은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선포한 복음의 기준은 ‘가난한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그들이 기뻐하면 온 세상이 평화롭습니다. 그들이 슬퍼하면 온 세상이 고통받습니다. 가난한 이에게 복음(福音)인 것이 부자들에게는 흉음(凶音)이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부자들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구원을 받고, 가난한 이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도 하느님의 시선이 그들 머리 위에 머뭅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울부짖음에 하느님께서 응답하셨듯이, 하느님은 당신 형상대로 지은 인간 누구라도 고통받는 걸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지금 살만하다면 복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주교와 사제들이 지금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면 그들에게서 복음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처럼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가난한 이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이미 예수님과 작별을 고했기 때문입니다. 매일 같이 영성체를 하고, 매일 같이 미사를 드리고, 매일 같이 기도하고 하느님을 부르더라도, 우리 마음이 가난한 이들 안에 머물지 않으면 우리는 사실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돌아시던 순간에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 장막이 두 폭으로 찢어진 것처럼, 이미 하느님은 성당이든 교회든 특정 공간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분께서 정작 사랑하시던 그 사람들을 찾아 변방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시고,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십니다.

예언서는 “주님의 은혜의 해,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였다고 전합니다. 누군가에겐 은혜를 베푸시고, 누군가에겐 죄값을 치르게 하신다는 말이니, 기쁘고도 아픈 말입니다. 가난한 백성은 손뼉치며 맞이하고, 악행을 저지른 자는 이를 갈며 슬퍼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리라 장담합니다.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될 때도 그랬고,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을 파면할 때도 그랬습니다. 누구는 기뻐하고 누구는 이를 갈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개표가 마감되는 순간에도 환성을 지르는 사람이 따로 있고, 울며 땅을 칠 사람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 나는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해야 합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