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주일, 가난한 민주주의가 권력을 압도하다

4월 13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한상봉 복음묵상

2025-04-13     한상봉

성지주일 아침입니다. 히브인 노예들을 에집트 제국에서 해방하신 하느님을 기억하기 위해 치르던 과월절을 한 주일 남겨두고 예수 일행은 올리브산을 거쳐 아마 분문(糞門)을 통해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있었을 겁니다. 배고프면 이삭을 훑어먹기도 했던 예수 일행은 남루한 행색으로 걷고 있었고, 그들처럼 가난한 백성들이 몇몇이 모여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사나흘 전에는 카이사리아에 머물던 빌라도 총독도 군병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햇을 것입니다. 과월절 즈음이 되면 예루살렘에는 군중들이 몰리고, 해방절을 기억하는 유다인의 소요가 예상되었으므로, 이 일대는 언제나 비상계엄 상태라 보아도 좋습니다. 8천 명의 성전경비대와 중갑보병 로마군대가 입성하는 장면은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서쪽에서 동족으로 진군하는 로마군대의 갑옷과 창검은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그들의 철컥이는 쇳소리에 아이들은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군대는 위용을 갖추고 군마를 타고 유다인들을 내리 깔보며 행진합니다. 유다인들에게 그들은 위압적으로 다가오지만, 정작 로마군대는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셔 앞을 분간하지 못한 채 걷습니다. 보기완 달리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는 뜻이겠지요.

12.3 비상계엄이 발표되고 잘 훈련된 특수전부대가 동원되었는데도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실패했습니다. 내란의 우두머리들보다 하급병사들이 더 현명했기 때문입니다. 군대의 힘보다 맨몸으로 막아서는 시민들의 마음이 더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내란세력은 민주주의를 얕보았고, 사실상 민주주의가 내란을 진압했다고 생각합니다. 내란세력은 검찰과 정보사와 수방사와 특전사라는 ‘힘’을 우상으로 섬기는 집단입니다. 히틀러처럼 열병식을 즐기는 윤석열은 그 짧은 대통령 재임 기간에 두 차례나 국군의 날 행사를 집행했습니다. 10년 만에 서울 도심 시가행진을 부활시키고 제국의 수괴처럼 행동했습니다. 얼마전 뉴스에 따르면, 김건희는 기갑차를 타고 관저 드라이브를 하는 걸 즐겼다고 합니다. 초록(草綠)은 동색입니다. 그들은 군마(軍馬) 타고 즐기는 대통령 놀이에 몰두한 모양입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참담한 운명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멍에를 메지 않은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합니다. 예수님이 말을 탔다는 기록은 복음서에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분은 나귀를 타고 군중들의 눈높이보다 낮은 자세로 겸손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으려는 것이고, 힘으로 사람들을 압도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그분이 압바, 아버지라고 불렀던 하느님조차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내일 적에, 가난한 나자렛 처녀 마리아에게 ‘네 자궁을 빌려도 좋은지’ 동의를 구한 분입니다. 섬김을 받지 않고 섬기려 오시는 분은 그렇게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는 마리아의 겸손한 응답 뒤에 세상에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드님이십니다.

윗도리를 벗고 수건을 들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던 예수님입니다. 자신을 밀고한 유다의 입맞춤마저 당신의 입술로 받아들이던 예수님입니다. 엎드려 눈물로 머리카락으로 당신을 발을 닦아준 여인을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며 두둔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짐승의 거처에서 짐승처럼 태어나신 분입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만 안심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샤를 드 푸코 성인은 그분처럼 ‘세상의 끄트머리’에 머물고 싶어했던 모양입니다. 아무도 강박하지 않으면서, 성체성사를 통해 살과 피마저 송두리째 내어주었던 분입니다. 나는 없고, 그래서 하느님으로 충만한 분입니다.

권력에 몰두하는 자는 무력한 의인 앞에서 당황합니다. 어린 나귀가 군마를 허위의식을 폭로하고, 가난한 인생이 부유한 중생을 고발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그분을 죽일 수밖에요. 권력과 부귀를 탐하는 내란세력들의 비열함을 낱낱이 보고 있는 요즘, 빈손으로 권력에 저항하던 응원봉 민주주의에 박수를 보냅니다. 빨마가지처럼 깃발을 흔들던 청춘들이 참 아름다운 사월입니다. 그들의 가난한 민주주의가 세상을 구할 것입니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 19,40)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