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앞에 닻을 내리고

4월 9일 사순5주간 수요일 박진균 복음묵상 (요한복음 8,31-42)

2025-04-09     박진균
사진출처=pixabay.com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비신자들에게도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진리가 정말 있기는 한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깊은 갈등과 분열, 불신 속에서 혼란을 겪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주장하지만, 그 ‘진실’은 서로 다르게 말해집니다. “자유”, “정의”를 서로의 자리에서 외치지만 그 알맹이는 전혀 다릅니다. 자신의 입장과 이익, 이념에 따라 구속된 진리들은 더 이상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편향으로 얼룩진 나름의 진리로 상대에 대한 증오를 키워내며 자신들을 독방에 가둡니다.

“내 말 안에 머물러라. 그럼 너희는 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다시 오늘 복음을 살펴봅니다. 우리가 찾던 진리는 바로 앞 구절에서 그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의 말 안에 머뭄’으로 ‘그분을 따름’으로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있게된다고 복음은 말합니다. 세상의 논리나 효용, 분별에서 밝혀지는 진리가 아니라 단지 그분의 말씀에 머무르라 말합니다. 2025년 희년 로고를 살펴보면 돗단배 모양의 다채로운 사람들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나아가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십자가의 모양이 배의 ‘닻’입니다. 닻은 머무를 때 사용되는 물건입니다. ‘희망의 순례자’라는 역동적 희년의 선포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기억해야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그분 안에 머뭄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 삶의 닻은 어디에 내려져 있나요? 각자가 머무는 그 자리는 어디 입니까?

진리가 혼란스럽게 흩어져 있는 이 시대, 우리는 더욱 절실하게 ‘참된 진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진리 안에 머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곧 우리는 누구의 말에 머물러 살아가는가에 따라, 그 열매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머문다는 것은 단지 성경을 가까이 두는 삶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그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분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그분의 길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효율’보다 ‘연민’을 택하고, ‘승리’보다 ‘희생’을 존중하며, ‘내 편’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기준으로 삼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나를 이끌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이념과 분노, 경쟁과 두려움의 소리에 마음을 내어준 채, 그 속에 머물고 있는 가? 진리는 결코 소유하거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곧 예수님 삶 자체이며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물러 살아감을 선택할 때, 우리 안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나는 생명의 힘입니다. 그 진리만이 우리를 진실로 진실로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희년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여정의 출발점은 우리가 어디로 향해 나아가느냐보다, 먼저 어디에 닻을 내릴 것인가를 묻습니다. 십자가 앞에 닻을 내리고, 그분의 말씀 안에 머무는 일상이 쌓여 이 시대의 순례자들은 희망의 항로를 열어갑니다.

 

박진균
천주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